Christia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LemonShamp) <165.246.74.95>
날 짜 (Date): 2002년 11월  4일 월요일 오후 01시 05분 38초
제 목(Title):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안티에게


 제  목: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안티에게                 관련자료:없음  
[32043]
 보낸이:강병송  (sergius )  2002-11-04 09:21  조회:6



우리는 족보책을 보면서 자기 성씨의 시조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 시조는 
통상족보라는 가계를 세워야 할 만큼 그 성씨가 사회적 지위를 갖추게 되었을 
때기록하게 됩니다.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있었을 사람들인 시조의 
아버지나할아버지등에 관하여는 기록에 나타나지 아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대단한위치에 있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물론 문자가 있는 
시대에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에 관한 기록이 없다고 하여 그들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이상한 
이론을전개한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습니까? 실재를 문자속에 가두어 버리는 
결과가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엉터리 논리로 예수그리스도의 실재를 부정하는 이론들이 
등장하고있습니다. 성모마리아께서 안식(돌아가심을 정교회에서는 그렇게 
표현함)하셨을 때베드로, 야고보, 도마, 마태오 바르톨로메오, 요한, 안드레아, 
마르코, 루가, 시몬,필립보, 사도 바울로, 그리고 주님의 형제라고 불린 야고보 
주교, 아테네의 성이예로테오 주교가 참석하였고 많은 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테네의 이예로테오주교가 있기에 이분이 시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예로테오 
주교의 존재는 인정하되12사도와 성모마리아 및 주님의 형제라고 불린 야고보는 
부정한다? 그 얼마나우스운 이야기이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 
존경을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 조심하시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자기를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니,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소. 그러나그가 죽임을 당하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소. 그뒤에 인구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서, 자기를뒤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한 일이 있소. 그가 죽으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다흩어지고 말았소.[사도행전 5장]

상기의 내용중에서 가말리엘, 드다, 갈릴리 사람 유다가 등장합니다. 이들에 
관하여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터툴리아누스이 존재를 부정하지는 못하겠죠? 터툴리아누스에 대한 
로마제국이나역사가들의 기록이 없다고 해서 터툴리안의 실재를 부정하지 
못하겠죠? 이터툴리안과 논쟁으 벌였던 마르치온 이단, 아펠레 이단 등은 
존재하지 않았단말입니까? 그 이단들은 기독교를 내부와 외부에서 흔들었던 
이단들이고 그로 인해기독교 자체가 상당히 흔들렸었는데 그들에 관한 기록이 
없다고 해서 마르치온이나아펠레 이단이 존재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이 이단들이 활동하던시기 바로 전에 교회에 들어와서 활동하던 이단이 
영지주의아니었습니까? 그 마르치온이나 아펠레 이단이 예수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있습니까? 아펠레 이단이 예수X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 
있습니까?(유대교와의 변론은추후에 쓰겠음)

그 바로 동시대바로 전을 살았던 분이 이그나티오스였습니다. 그 분의 글은 
그대로남아있습니다. 그 분은 순교하였습니다. 당시로마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독교의우두머리가 잡혀 죽는데 로마의 기록에는 그 사형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지요?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이그나티우스의 죽음과 실재를 부정할 수 
있습니까? 동시대사람으로서 이그나티우스와 친분니 깊었던 분이 폴리캅입니다. 
이 폴리캅에 관한순교의 기록이 로마제국의 문서나 유대인들의 기록에 없다고 
해서 폴리캅의 존재를부정할 수 있습니까?

이 폴리캅과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바울로와 사도 요한을 직접적으로 
언급합니다.그리고 그들로부터 주교들을 임명할 권한을 임명 받은 분들입니다. 
바로 전시대의사람으로서 로마의 클레멘트가 있습니다. 클레멘트의 글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유대 역사가들의 글이나 로마제국의 문헌에 클레멘트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않습니다. 클레멘트의 실재를 부정해야할까요? 클레멘트 주교의 
직책은 누가주었을까요? 클레멘트 스스로 주교가 되었나요?

사도들의 활동에 관하여 로마의 기록이나 유대 역사가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예수 당시보다 더 많은 인구가 모여 있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안티오키아 교회는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교세였고 안티오키아 근처의 
에뎃사교회에서는 AD100년대초기에 그리스도교를 국교처럼 받아들이는 반면에 
그러한 그리스도교회에 관한기록은 로마의 기록에나 유대의 기록에 나오지를 
않거든요. 안티오키아 교회의실재를 부정해야 할까요?

교회는 감사의 성사(유카리스티아,성만찬)공동체입니다. 사도시대부터 이 
성만찬이끊어지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가장 오래된것으로는 
예루살렘교회의성만찬예배서(리뚜르기아)가 있는데 이는 주님의 형제라고 불린 
야고보의예배서입니다. 또한 동시대의 것으로서 이집트교회의 예배서가 있는데 
이는 마르코복음서의 마르코 예배서입니다. 또하나는 인도의 사도도마 
예배서입니다. 이들은재현의 형태이기 때문에 변개되지 않으며, 사도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내려옵니다. 로마와 유대 역사가들의 기록에 없다고 해서 
이들의 실재를 부정해야할까요?

이 예배는 피흘림이 없는 감사의 제사(thysis)입니다. 실존하지도 않은 
사람에근거하여 제사(thysis)를 올립니까? 에수를 부정하려면 가말리엘의 
존재를 먼저부정해야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메시아의 죽음이란 큰 의혹이었습니다. 
·유대나라를 로마의 지배하에서 구원하기는커녕 로마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십자가 처형을 유대의 제사장 가문이 주도하고 상류층이 가담한 일
·구원의 길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이 아니라, 메시아의 십자가의 
죽음과부활을 믿는 일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로마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내우외란죄로 십자가에 달려 사형당한 
국사범을 구세주로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빌라도나 아그립바나 유대 제사장들이 이를 글로 
남겨놓았겠습니까? 당시 로마법은 상당히 발달된 법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정의사건이 존재하고 그 사건에 벌률을 적용시키는 체제는 이미 갖추어져 
있었습니다.예수의 사건이 내우외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었는가? 에수가 
내우외란죄의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었다면 유대 제사장들이 먼저 고발을 하기 
전에 빌라도가예수를 체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우외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도 않았는데예수를 사형집행했다? 그렇다면 빌라도가 그 사실을 
보고하며, 기록에 남겼을까요?

자, 또 봅시다. 
유대 제사장들은 이미 세레요한의 증거가 있었던 예수에 관한 건입니다. 
세례요한역시 유대의 기록과 로마의 기록이 없다고 해서 부정하려 하겠지요? 
18세기 초에까지 인도에서 세레요한의 후예라는 사람들이 발견되었답니다. 
세례요한으로부터유대인이 기다려온 메시아가 예수라는 증언을 받은 
사건입니다. 세례요한을부정하려면 세례가 어디에서 출발하였는가를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제사장의가문인 그들은 세례요한의 증언을 받은 예수를 
죽였습니다. 그 제사장의 가문은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사두가이파 사람들 
아닙니까? 사두가이파 사람들은육신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터툴리안도 이를 언급함)

그런대 대다수 유대인들은 육신의 부활을 주장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성향에기울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자기들이 죽인 예수가 자기들보다 더 수적 
세력을 가진바리사이파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미죽은 예수라는 자의 사건을 사두가이파 사람들 스스로 
확대시킬 필요가 있었을까요?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집권층이었으며 기록을 
남길 위치에 있었나요? 그들의기록은 탈무드로 집대성되지 않았나요?

그 바빌론 탈무드에 예수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까?

자 이제 에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글을 봅시다. 이는 프로테스탄트에 물을 
먹은자들의 왜곡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 *나사렛 예수 생존 당시 또는 직후에 활동하던 모든 역사학자는 예수에 
대해침묵했다.
=> 예수에 관하여만 침묵했나? 세례 요한에 관한여는? 가말리엘에 관하여는? 

>(필로를 거론하면서)비록 이집트에서 부유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필로"는 
자신이유태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모든 저술이 유대인의 경전 "토라"에 
근간을 두고있다. 희생번제를 >드리기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었다고 스스로 
적고 있다. 

>철학자, 역사학자로서 그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현재 대략 40여 
저술이보관되어 >있는데, 초대교부들의 인용을 보면 그외에도 대략 20여 저술이 
더있다고사료된다. 

>이상한 것은, 그 당시 결코 주류를 이룰 수 없었던 미미한 종교 분파인 
"떼라퓻"또는 "에쎄네"파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한바 있는데, 그의 온 저서를 
통하여예수가 언급된 곳은 없다는 것이다. 

=> 필로의 기록에 성경에서 언급한 가말리엘과 드다와 유다가 나오는가? 
헤롯이동생의 아내를 취한 사건이 나오는가? 세례요한이 나오는가? 이러한 
것들을 필로가기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는가?

>그의 기록중 예수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있다. 그는 그곳에서 유태인들의 
흔한이름들이었던, "예수" (Jesus) 와 "호세아" (Josea)의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다.그는 생존시 예루살렘을 방문했었다. 만약 예수가 알려진 대로 당시에 
세간의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필로와 같은 인물이 예수를 간과했을 리가 
없었다. 바로이 이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사렛 예수에 대해 언급하였을 
것이다. 

=> 추측을 사실인 것처럼 기록하는 전형적인 형태 아닌가?
다음 사실을 보라.

여자들이 가는데, 경비병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서, 일어난 
일을모두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하였다.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집어 
주고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하여라. 
이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에게 아무 
해가미치지 않게 해주겠다." 
그들은 돈을 받고서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리고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 
사람들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태오에 의한 복음 28장) 

또 저스투스 (Justus of Tiberia), 노인 플리니 (Pliny the Elder), 
타시투스(Tacitus) 등의 글에도 예수가 언급되지 않고 십자가 처형시의 
자연현상이 관측되지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에수의 실존을 
부정합니다. 그들의 이론적 근거는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존하지 
않았다입니다. 이들의 글 타키투스의 글을 더읽어 보십시다.

>로마의 역사가로서 그의 저서 "Annals"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AD 64년의 로마의 대화재 발생시,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에게 책임을 
돌린 것,기독교인(Christian)이라는 단어가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시 
"빌라도"에게처형당한 "크리스투스"(Christus)라는 인물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진술하고있다. 

"타시투스"의 진술, Annals 15.44 (AD 112): - 

"네로"는 본인이 로마 대화재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종식시키고자 희생양을 
물색했고그 희생양으로 가증할 범죄를 저지르는 "크리스쳔"이라 불리는 
무리들을 택했다. 그무리의 이름은 "그리스도" 라는 자에게서 유래되었는데 
그는 "티베리우스"황제통치시 "빌라도"에게 처형되었다. 잠시 제압은 되었으나 
이 황당한 미신 분파는다시 성행되었다. 원래 이 분파가 발생했던 유대지방과 
온세계의 황당하고수치스러운 문화가 모여들어 성행하는 "로마"에서도. 

이 문헌이 증거가 되기에는 너무도 미비하다. 

그의 저서의 발행연도는 AD 112년경이다. 이미 예수신화가 로마에도 널리 
보급된후의 일이므로, 그가 시중의 기독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었을 
확률이 매우크다. 

=> 이들의 추정은 얼마나 아전인수인가를 보십시오. 예수라는 사람이 
내우외란죄로처형된적이 없다면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을 기록하여야 하는데 
처형한 적이 없다는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처형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동일한논리로? 

그당시에는 폴리캅 이그나티우스 로마으 클레멘트등이 활동할 대인데 이들의 
직책은주교였다. 이들을 누가 주교로 임명하였는가? 이미 그당시 크리스찬의 
존재를인정하였다는 것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인정하는 반증인데 이 부분은 
건너뛰는가? 후술하는 내용을 봅시다. 

>예수처형당시 그는 세상에 출생조차 안했으므로 이 기록은 그의 목격담이 
아님은분명하다.또한 로마정부는 무수한 처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었으므로"타시투스"의 언급이 객관적 기록이나 정부문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도분명하다. 

=> 결국은 정부의 기록문서이어야만 예수의 실존을 인정하겠다는 
주장아닙니까?반대해석을 하자면 정부의 기록이 없는 한 실재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잇는 것아닙니까? 이것도 이론이라고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주장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청년 플리니 (Pliny the Younger), 탈루스 (Thallus), 요세푸스 
등의글을 인용하면서 이들의 글중에 예수의 내용이 없거나 크리스챤이라는 
단어가나오는 것은 예수가 존재한 것이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증인도 필요 없고, 증언도 필요 없으며, 세례 요한도 성모마리아도 
주님의형제라고 불린 야고보도,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도 12사도도 가말리엘도 
드다도유다도 이그나티우스도 폴리캅도 로마의 틀레멘트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주장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글이 있고 성찬예배(리뚜르기아)가 있고, 제사(thysis)가 
있으며,느닷없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네로의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네로의 기독교 탄압 이전에 기독교는 허상이었단 말인가?
크리스챤들이 허상을 믿고 있었단말인가? 당시 기독교는 주교,사제,부제라는 
세직분으로 구성되었는데 잡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직책인 그 직분을 그 
많은사람들이 속아서 임명 받았단 말인가? 모르고 임명 받았단 말인가? 그 
때는신약성경 27권이 선포되기 전인데?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을 주교로 
임명하였던사람들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교회를 조직하고 스스로 로마에 
대적을 하면서그들을 주교와 사제와 부제로 임명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동족인 유대인을 배반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예수의 실존이 없었다면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들 즉 영분별의 은사, 
방언통역의은사가 예수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시점 이후에만 나타나는가? 
타종교에도방언통역의 은사와 영분별의 은사가 있는가?

http://www.orthodoxchurch.pe.kr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