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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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Yucatan (Dr부리부리)
날 짜 (Date): 2002년 5월  6일 월요일 오후 01시 07분 48초
제 목(Title): [펌]공의에 무관심한 교회의 세상관에 대하


앞에 어떤 분이 쓰신 글에 의하면 교회는 영혼구원을 주목적으로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가 세상에 주장되는 것에 소홀한 것이 교회의 
큰 잘못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영혼구원을 주목적으로 한다면 세상에는 
소홀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네비게이토는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솔직하고 충실합니다. 세상에서 여러 일을 할 만큼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가지 일에 집중해야한다. 그것은 바로 
"영혼구원"이다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모임을 교회보다 
중시하므로 교회로부터 이단 비슷하게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지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은 그들의 신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진 충성된 일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과연 영혼구원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은 
성경적일까요? 아래 퍼 온 글을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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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에 무관심한 교회의 세상관에 대하여 
전강수 교수와 대천덕 신부간의 서신


 
▲대천덕 신부(예수원자료실에서) 
대천덕 신부님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신부님, 퇴원하신 줄 알았다가 아직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지금은 어떠신지요? 하나님께서 능하신 
손으로 만져 주심으로 속히 회복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오늘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은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한국 교회의 신학적 
경향에 관한 문제입니다. 저는 얼마 전 어느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이 세상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그림자 내지는 가짜이고, 영원한 진짜는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갖고 계시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도 뜨겁고 기독교세계관에 관한 관심도 갖고 
계시며 신학적 성찰도 깊으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그와 같은 세상관을 
피력하시는 것을 들을 때 저는 심한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생각을 
다시 해 보니 그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가 전도를 굉장히 강조하고 모든 
신자들을 전도 훈련으로 양육하고 있는 반면, 현실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이 목사님의 세상관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이하 성토모라 칭함)의 회장을 
맡아 일하면서 저는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법과 
공의를 선포하는 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로 
고민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는 가운데, 한국 교회에는 이 목사님처럼 생각하는 
목사님들이 다수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신부님, 이런 세상관을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것은 성경적 근거를 
가진 것인가요? 또 이런 분들의 전도의 열정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세상과 
현실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며 하나님의 법을 알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런 세상관을 가진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옳을까요? 

이 목사님과 토론을 하는 중에 성경 가운데는 죽어서 영혼이 가는 천국과 
마지막 때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하는 천국, 두 가지가 다 있고, 또 
심판도 죽어서 영혼이 받는 심판과 마지막 때에 부활하여 받는 심판 두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신부님께서도 오래 전부터 한국 교회의 이와 같은 경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생각과 조언을 기다리겠습니다. 

전강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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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교수 
전강수 형제님,

형제님의 편지를 받고 기뻤습니다만, 회신이 너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형제님이 저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형제님은 현재의 이 세상은 가짜이고 내세가 진짜라고 주장하는 목사님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지만, 공교롭게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이 세상에서 일해야 하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은 
이 세상으로 오실 것이며 천년왕국을 세우실 때에는 이 세상에 세우실 
것입니다. 

정의를 추구해야 할 책임의 토대를 허무는 이런 교리는 5 세기의 신학자인 
히포의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에게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정의의 추구와 그에 따르는 모든 문제들을 모면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교리로 여겨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신학적 관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어거스틴과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태도 때문에 북 아프리카의 교회는 
분열되었습니다. 토지가 없고 가난에 시달리던 토착민들이 
도나투스파(Donatist) 교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모하메드가 등장했을 때, 
도나투스파는 그에 합류하면서 권력을 가진 지주들의 교회를 바다 속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 이래 북 아프리카의 전 지역은 이슬람화하였습니다. 교회가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 사회 정의를 지지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결국 
이슬람은 중동 지방 전역에 걸쳐 파급되었습니다. 교회는 회개하지 않았으며 
이슬람의 등장이 자신의 잘못 때문임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시나리오는 교회사를 통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그 절정은 공산주의의 
등장입니다.

다시 말해 이 교리(성경적인 기독교라기보다는 불교에 더 가까운)는 이슬람과 
공산주의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을 포함하는 많은 
나라들에서 이 교리는 책임감이 넘치는 젊은이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문제를 보고 해결하기 위해 나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토모가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라는 사실에 깊이 감사합니다. 성토모는 
이런 잘못된 교리에 맞설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서 조지스트들은 성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권세와 능력을 결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Land and Liberty 최근 호에는 
‘희년(Jubilee)’이라는 이름 하에서 채무국들을 식민지화하고 그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IMF와 세계은행(the World Bank)의 계교를 폭로한 마이클 
허드슨(Michael Hudson)의 훌륭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허드슨은 그들의 
‘희년’은 성경적 희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형제님도 분명히 아시다시피 세계은행과 IMF의 목적은 모든 저개발국 혹은 
재정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을 미국의 식민지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독립의 
외관은 유지되지만, 사실 이 국가들은 재정적 상황 때문에 그 독립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독립은 정치적 독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독립의 
배후에서 그 국가들은 다른 국가에 경제적으로 종속됩니다. 

사회적 활동을 반대하는 교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그 열정은 영적 
제국주의의 발로입니다. 그들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세력 가운데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복지에는 관심이 없으며, 사람들의 
숫자를 증가시키는 것 외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교회로 끌어들인 다음에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둘 다 합니다. 우리는 지붕 위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계속해서 외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올 때 우리는 그들에게 예수님과 
성령과 코이노니아에 관해 말해 줍니다. 만일 어떤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갖고 있다면, 그 교회는 가난의 문제도 실제적인 수준에서 
해결합니다. 우리는 불의를 두 가지 수준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코이노니아를 통해 지금 여기서 가난을 해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 질서와 
토지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입각한 사회정의를 실현함으로써 가난을 
종식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에 대한 주의를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야 합니다.

미가서 6장 8절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정의, 둘째는 자비(정의가 실행되는데도 가난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치는 것), 셋째는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walking humbly 
with your God)입니다. 어거스틴 류의 교리는 이 순서를 뒤바꿔 버립니다. 세 
번째 것을 처음에 두고, 자비는 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정의는 결코 
실행하지도 설교하지도 않습니다. 킹 제임스 버전 성경에서 ‘정의’에 
해당하는 단어를 잘못 번역했는데, 이 추악한 관습은 제가 아는 모든 성경 
번역에서 지속되어 왔습니다. 성경 번역자들은 잘 교육받은 사람들로서 지배 
계층(그들의 작업에 돈을 대기도 하는)과 일체가 됩니다. 그들은 성경이 
맹렬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행복해 합니다. 

심판의 문제에 관해서는 성경은 두 가지 심판, 즉 ‘베마(bema)’ 심판과 
백보좌 심판을 구분하는 듯 합니다. ‘베마’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경주를 잘 마친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을 주실 때 행해집니다. 백보좌 심판은 그 
때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받고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불과 유황 못에 떨어지는 역사의 종말에 행해집니다. 
호기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성경은 많은 상세한 일들을 
누락시키고 있습니다.

대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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