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RNB (RideNBoom)
날 짜 (Date): 2002년 5월  1일 수요일 오전 10시 24분 25초
제 목(Title): 예수의 십자가와 기독교의 십자가 


이 곳 캔사스 주의 위치타에는 유대인들 공원 묘지가 따로 있다. 인구가 30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도시이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지만, 회당이 
두 개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들의 
공원 묘지를 따로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역시 그들은 다르기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공원 묘지에서 나는 십자가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대인들의 묘지에 십자가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마치 새로운 발견이나 한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십자가는 하나의 상징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내려오신 예수(부활의 주님)를 믿는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인류애의 상징이며 희생정신의 표본이다. 
교회는 나오지 않더라도, 그리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는 않아도, 
적어도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다는 것에는 
누구나 다 동의한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는 단순한 인류애나 희생의 상징이 아니다. 우리에게 
십자가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며 용서의 
상징이다. 우리에게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상징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하나 그들은 가장 혐오하는 것이 이 십자가이다. 그것은 그들이 
단순히 예수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실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십자가를 
증오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십자가를 가장 
경멸하며 싫어한다. 그것은 이 십자가가 그들에게는 다른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듯이 본래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사형틀이었다. 
로마인들이 그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정치범이나 반란자들을 처형할 때 주로 이 
십자가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던 로마인들은 어떤 
특별한 이유 없이도 유대인들을 십자가형에 처할 수 있었다. 예수가 바로 
그러한 한 예이다. 

1세기의 역사가 요셉푸스는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에 의해 한꺼번에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에 살던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었다. 그리고 그들의 참혹한 모습을 진열해 
놓았다.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와 종교의 이유 때문에 십자가 처형을 당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 십자가는 결코 흠모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용서나 구원, 또는 
생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유대인에 대한 이방인들의 
박해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슬픔과 고난의 상징이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오늘 우리들과는 전혀 다르게 이 말씀을 이해했다. 
그 때까지 예수는 아직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이었다. 다시 말해 십자가는 아직 
사랑이나, 희생, 용서, 구원의 의미가 없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의 말씀을 제자들은 사랑하라, 희생하라, 용서하라, 화해하라, 구원의 
십자가를 지라. . . 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가 었던 것이다. 이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제자들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어떠한 박해도, 그리고 죽음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였을 것이다. 십자가가 로마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박해의 상징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십자가에 대한 유대인들의 혐오심은 역사를 통해 더욱 더 깊어 간다. 
처음에는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으나, 그러나 한두 세기가 
지나고 로마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되고 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한 예로, 십자군 전쟁(1906년부터 시작)에서 원정에 나선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도중에 세례 받기를 거절했다고 해서 십자군들에 의해 
길에서 살해되었다. 기독교 역사 초기로부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Christ-killer)라는 이유로 수많은 비난과 박해와 핍박과 모욕을 받아야 
했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는 자기는 예수의 무죄한 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물로 손을 씻었다. 그때 유대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손에게 돌리라"고 했다(마 27:24-25).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게 된 것도, 이스라엘이 함락되게 된 것도, 유대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살면서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게 된 것도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피를 
흘린 대가라고 기독교인들은 생각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이라는 영화는 제정 러시아 말기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보면 아나테브카에 모여 살던 유대인들이 
하루 아침에 그곳을 떠나라는 당국의 추방 명령을 받고는 모두 떠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고 있다. 사실 아나테브카에서 그들의 삶은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가처럼 위태위태한 것이었다. 그들은 떠나는데 익숙해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항상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기 위해서라고 
주인공 테브에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고 있다. 그들이 그 땅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Christ-killer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가져다 붙인 이유이다. 이처럼 언제나 그들은 
Christ-Killer라는 낙인이 붙어 다녔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쫓겨다니며 
Christ- killer"로서 그 대가를 치러야했다는 것이다. 

금세기에 있었던, 인류 최대의 비극은 나찌 독일에 의한 6백만 유대인 학살 
사건이다. 이 학살 사건을 그리고 있는 영화 "홀로코스트"를 보면, 나찌 
독인군이 유대인을 죽이면서 하는 말이, "너희들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이니까, 이런 대가를 받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섬뜻한 장면이 나온다. 
나찌 독일은 인류를 "정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포로 수용소와 가스실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이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대가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끔찍스러운 일을 방지하거나 
저지하지 않고 바라만보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이유로 600만 명씩 가스실로 보낼 하나님이시겠는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긴 했지만, 하나님은 아직도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직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그들이 
Christ-killer 이긴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보복하시느라 "피 값" 같은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예수를 못박은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었으며, 예수는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를 정작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Christ-killer"라고 정죄한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누구를 정죄해왔는가?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역사를 통해 그많은 수난과 고통을 받은 것이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이유때문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남긴 7마디 말씀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었는가? 그분의 마지막 기도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들을 
용서해주시옵소서." 

마지막 운명하시면서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용서를 비는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는데도, 그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하시면서 드린 기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무시하시고, 
그들을 용서하시지 않고, 그들에게 진노하시면서 2천년동안 피의 복수를 
하셨다고 믿을 수 있는가?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하나님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독교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이유를 
들어 "십자가"의 이름으로 그들을 2천여년 동안 박해해 왔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십자가를 경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2천 여년 동안 교회에 
세워진 기독교의 십자가는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는 경멸과 저주와 공포와 죽음의 
십자가였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예수의 십자가는 사랑이고, 
용서이고, 화해이고, 구원이 아니었는가? 그 십자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