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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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redblock) <137.187.170.52>
날 짜 (Date): 2002년 5월  1일 수요일 오전 05시 58분 33초
제 목(Title): 인간배아연구와 인간존엄의 문제 


인간 존엄성에 대한 논의가 다분히 탁상공론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아서,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이 글을 올려봅니다. 

작금의 인간 배아연구 기술은 실로 엄청난 단계에 접어들고 있어서,  
멀지 않은 장래에 인간 존엄성 문제에 대한 전세계적인  혼란을 야기 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어느 누구도 이 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모든 사람이 그 
혼란을 직면해야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본인은  동물 발생학이나, 기타 인간 배아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야의 
전공자는 
아니기 때문에, 지금 그쪽  분야의 기술 수준이 정확하게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지만, 
생물 공학을 오랜 세월 전공한 한 연구원으로서 이 글을 써 봅니다. 

만일 법적으로  인간 배아에 대한 모든 연구가 허용되기만 한다면 ,   
대부분의 분자생물학, 생화학, 유전학, 발생학, 등등의 많은 연구 역량들이   
그쪽으로 결집될 것이 분명합니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엄청나게 많은 연구 결과 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술 수준은, 이전과는 달리 매우 정밀한 인간의 정의 (definition)을 
요구합니다. 
그래야지만, 인간사회에서 극한적으로 존중되는 인간이 아닌, 
연구대상이 될 수 있고, 물질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적절한 생물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현대의 분자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어떤 
생물 개체를 인간으로 정의하고, 
어디까지는 인간이 아닌 것으로 정의하는가, 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 개인적은 생각으로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분자 생물학 또는 분자 유전학 적으로 "인간 (Homo sapiens)" 을 
정의하든지 간에, 그 정의는 일반인들의 눈으로 볼때, 사실상, 대단히 모호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고, 어떤 기준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만한 개연성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어떻게 만들더라도, 그 구분점은 연구 
수행중에는 언제나 쉽게 지나가 버릴 수 있는  정말로 연약한 모호한 구분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고전적인  관찰 내지 정의(definition)였던,  "사고하는 동물", 
"유희적인 동물" 같은 것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못합니다.

기존에는 고등생물에서 같은 종인가, 다른 종인가를 구별해내는 방법이 
단순하게, 유성생식(sex)이 가능한가 
아닌가로  판단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생명공학적 기술 수준은  
여러종의 유전자가 복합된 
새로운 생명체를 시험관적인 방법으로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기술은 SF 공상영화에서 자주보던 반인반수 괴물쯤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인공 배양기 내에서 인간이 재배될 수도 있습니다. 실수로 태어난 많은 
반인반수의 괴물들이 자기들의 권리와 이익을 주장하는 사태를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상상만으로도 끔찍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연구목적으로서 그러한 
특수한 생명체나 기술들은 엄청난 귀중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인류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의료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낙태문제는 낙태에 대한 죄의식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허용될 
수 있는 것이고, 
사형수 문제, 뇌사 문제, 안락사 문제 등은 사실 우리 일상 현실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특수한 문제로만 취급되어서, 아직까지도 계속 토론만 반복되고 있을 뿐, 
현실적으로 국가적인 또는 세계적인 합의점이 도출되지 못한 것이 현 
실정이지요? 

하지만, 그와같은 case-by-case 적인 제도 와 정책은 현대 생명 공학 기술 앞에 
우스운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술 상황은 우리에게 엄청난 
그러면서도 시급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 해야 합니다. 생각하기 귀찮고 어렵더라도, 선택을 
해야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체에 대한 연구가 귀중하고 귀중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생체 실험"이 
여태까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살아있는 
인명을 존중하는 의지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인명 존중의 의지가 윈래부터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사회생활과 교육을 
통해 주입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인간사회에 제도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현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대의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것처럼, 그 엣날 허준의 
선생이 허준에게 자기 시신을 해부하게 하여 가르침을 주려고 했던것이 
가능했던 것은, 죽어있는 인간시체는 극도로 존중되어야할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전쟁중과 같은 특수한, 인간가치를 정상적으로 취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시이 
부대가 포로들을 마루타로 취급하면서  했던, 생체 실험은, 아무리 그 연구들이 
귀중한 결과들을 창출하든지 간에,  
정상적인 사회에서, 정상적인 환경하에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생체실험에서 그 실험자들은 엄청난 죄의식에 시달리게 될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인간 생체 실험이 지금까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은 그 실험자와 일반 사람들의 그러한 연구에 대한 "죄의식" 때문입니다. 
단순히 "돈" 에 관한, 즉 "연구비"나 "경제성" 에 대한 문제라면, 오히려 그런 
일이 자행되는 쪽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 배아및, 기타, 인간적 생명체에 대한 생명공학적 연구중에는 그 
"죄의식"이 그리 크게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나" 와 비슷한 것을 인간으로 
느끼게 되는 바, 매우 작은 인간이나, 동물과 섞인 인간은 인간으로 인식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죄의식 때문에 자발적으로 
실험을 중지할 만한 넘지못할 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 배아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느낄 죄의식은, 그저 일반적인 생물실험에서 
쥐나 토끼등을 죽일 때에 그 실험자들이 갖는 죄의식 정도가 전부일 것입니다. 
개연성있는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점이 존재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그 죄의식 
없는 실험자의 연구를 방해할 수 없습니다. 

인명존중 내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실제적으로 앞으로의 인간의 
사회적 제도 장치들과 연관되어 진행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화두로 던져봅니다. 


ps) 
인생이란 덧없는 것이고, 모든 것이 덧없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모르면서도, 살기는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언제나 겸손하게 길을 찾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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