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RNB (RideNBoom) 날 짜 (Date): 2002년 4월 30일 화요일 오전 11시 21분 05초 제 목(Title): Re: 존엄 to Nevido: 나찌당의 건설에는 독일 개신교 고위층이 깊이 관여했는데 마치 반기독교도들의 음모 내지는 묵인이라는 늬앙스를 풍기시는군요. (딴지 걸까봐 출처를 밝히면 유시민씨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 나옵니다. 나찌당의 뒤에는 독일의 재벌들과 산업자본가 개신교고위층들이 있었습니다) __________________ 역사를 보시려면 신중하게 보시죠. 다음은 구학서의 이야기 세계사 나찌 독일 편입니다. pp.441-442. ... 교회와 나찌의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천여년간 서양인의 영혼을 책임지던 기독교가 세속화의 물결로 점차로 그 영향력을 빼앗겼으나 생활속의 기독교는 여전히 정신세계의 지주였다. 나찌와 기독교회는 원리상 서로 충돌을 면하기 어려웠다. 먼저 교회는 세상을 창조하고 역사한 오직 한분의 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세속권력은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하였고, 이와 달리 나찌는 기독교가 인간의 의지와 본능을 노예의 근성으로 바꾸어 참된 인간의 능력을 덮어 가리웠다고 지적하며 인간의 의지, 인간의 분투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기독교의 뿌리인 예수가 유대인이었으므로 나찌는 기독교를 원칙상 배재 하였다. 이즈음 예수는 유대인이 아니라 북구의 영웅으로 그 출생이 조작되기도 하였다. 성직자들은 이러한 나찌의 허무맹랑한 거짓 놀음에 대항하여 강제수용소로 보내져 처형당하거나 추방당하였다. 남아있는 성직자들은 나찌의 주목을 받지 않으려는 노력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국내 정치 사범을 담당한 국가 비밀 경찰 (Gestapo)의 집요한 추적을 면할 수 없었다. 따라서 독일 교회는 이러한 특성으로 국가 권력에 예속 되었고 성직자의 일부는 반유대주의, 반자유주의를 내건 나찌에 자진 협력하였다. 교회가 독일인의 정신을 채우지 못하게 되자 나찌의 정신이 그 틈새에 끼어들게 되었다. 나찌는 이분야에 뛰어난 전문가가 있었다. 괘벨스는 인문학의 전문가로서..... 학교교육에서 기독교를 공부하는 수업은 나찌 이념공부로 대체 되었고 ... ______ 책 내용에 따르면 기독교는 나찌의 가장큰 사상적 걸림돌 중의 하나였군요. 나찌가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가 어째 반기독교자들의 그것과 어쩜 그리 유사할까요. 기독교가 인간을 노예로 바꿔 참된 인간 능력을 가린다...는 부분말이죠. 반기독교자들이 나찌 독일 시대 있었다면 나찌에 동조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기독교 탄압에 앞장 섰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