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unknown (rosette) 날 짜 (Date): 2002년 1월 21일 월요일 오전 08시 32분 25초 제 목(Title):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 사람으로서 악인이 된다는 것,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좋을 리 만무하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우매자가 된다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한편 인간으로 살면서 바람직한 것은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귀한 게 또 하나 있다. 지혜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 3:15-18). 성경의 가르침이 이러하고 우리들이 지닌 상식 또한 그렇게 완전히 일치되는 만큼 사람마다 의인이 되고 지혜로운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요, 행여 악인이 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선 안 될게 분명하다. 그렇다. 의와 지혜는 다다익선이요, 악과 우매는 무화되면 될수록 좋다는 것은 세상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통념이다. 이런 건전한 상식을 송두리째 뒤엎어 놓은 성경 말씀이 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전 7:16)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악과 어리석음이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의와 지혜도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말씀의 뜻과 그 성구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묵상하다가 문득 악과 어리석음 그리고 의와 지혜가 적당히 조화된 평범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성경이 신앙의 조상들로 제시하는 사람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보라. 이들은 한결같이 지나치게 악하거나 우매하지 않고 지나치게 의롭거나 지혜롭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마찬가지다. 거의 전부가 평범한 사람들이다. 유독 지나치게 잘났다고 자부하던 가룟 유다는 결국 주님을 팔아먹지 않았던가. 불교는 인간의 해탈을 요구하고 유교는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를 본받아 완벽한 도덕군자로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지향하는 크리스천의 삶은 부처로서의 삶이나 완벽한 성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다. 예수님은 친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라고 하지 않았던가. 싫어서 버리려고 애써도 지독하게 따라붙는 악함과 어리석음을 숙명적으로 붙안고, 좀더 가져 보려고 발버둥쳐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의와 지혜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 평범한 사람들, 저 못난 줄 알기에 하나님을 더욱 붙들 수밖에 없고, 스스로 미련함을 알기에 그를 의지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바로 이것이 크리스천의 실제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만사를 버리고 입산수도하는 사람이 될 이유가 없고 완벽한 인격자가 되기 위하여 대단한 철리를 깨우치는 특별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 오직 하루하루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에 자기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성령님 인도 따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인이면 족한 것이다. 성경은 "크리스천들이여 이렇게 살아다오"라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전하기 위하여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던져 주신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