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loneman (자유의지) 날 짜 (Date): 2001년 7월 6일 금요일 오후 11시 15분 46초 제 목(Title): Action or Reaction (번역글--꼭 읽어 보세 행동 마빈 제이 애쉬턴 장로 수년 전에 현명한 친구와 길을 걷다가, 집 앞마당에 나와 있던 친구의 이웃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빌, 잘 지내는가? 자넬 보니 반갑네." 인사를 해도 빌은 쳐다보지도 않고, 더욱이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습니다. "참 퉁명한 친구로군, 안 그래?" 기분이 상해 한 마디 했습니다. "항상 그런걸,"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도대체 자넨 그 친구에게 왜 그렇게 친절한건가?" 저는 물었습니다. "왜, 안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사려 깊은 친구가 되물었습니다. "왜 내가 그 친구 때문에 행할 바를 결정해야 한단 말인가?" 그 날 저녁의 교훈은 결코 잊지 않고자 합니다. 중요한 단어는 "행하다"였습니다. 친구는 사람들에게 행했던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반응합니다. 우리는 유년 시절부터 "말을 걸어도 아는 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상관하지 말라," 혹은 "누가 때리거든, 너도 맞지 말고 때려라."와 같은 말들을 들어 왔기 때문에, 그 당시 친구의 그런 태도가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한 이후 많은 생각을 통해 우리들 대부분이 고질적인 반응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하고 맙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무례하거나 예의 바르기도 하고, 낙담하거나 우쭐해 하거나, 비판적이거나 충성스럽기도 하고, 수동적이거나 헌신적이기도 한 태도를 갖기로 결정하고 맙니다. 지난 번 만났을 때 따뜻하게 인사하지 않았으니 냉담하게 대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이 생각하기에) 지난 달 혹은 지난 해에 드린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으니 주님께 기도 드리기를 멈추지 않습니까? 자신의 생각대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를 포기하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 같은 행동 양식을 따른다 함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한결 같은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고질적인 반응자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 같은 사람은 개인적인 행동의 중심을, 진정 그 중심이 되는, 자신에게 뿌리내리지 않고, 자신의 주변 세계에 둡니다. 때로 우리들 가운데에는 방관하고 비켜서서 누가 자신을 아프게 하는지, 무시하는지, 화를 돋구는지 기다리는 듯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고질적인 반응자들입니다. 성급한 반응을 인내와 뜻깊은 행위로 대체할 날이 온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날이겠습니까!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동생을 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수감된 동생을 함께 만나러 가자고 청했습니다. 근자에 그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아니, 가지 않을거야. 소용없는 일이야. 말하기는커녕 듣지도 않을거야. 몹쓸 인간이야. 결코 바뀌지 않을거야."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결코 바뀌지 않을거야"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분명 당신도 결코 바뀌지 않겠군"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수감된 동생이 자신의 행위를 지배하도록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와 같은 부정적인 태도는 실제로 그가 창출했던 것입니다. 자유인인 이 친구는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것을 행하게 하는 긍정적인 동인(動因)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동생이 그들 모두의 행동 방식, 곧 대화도 없고, 왕래도 없고, 변화도 없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결정짓게 했던 것입니다. 수감자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 그 곳에서부터 나아가도록 돕는 것을 가능하게 한, 훌륭한 교회 활동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어 참여하는 것이 참으로 큰 기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밝은 내일이 있으며, 그 날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 그 날이 주어진다는 진실을 일깨워 주는 일입니다. 용서와 회개는 행동 원리입니다. 바로 이 시간 자신을 어느 곳에서 발견하든, 앞으로 올 미래에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도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이야 말로 우리 삶에서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달 전에 아폴로 13호에서 짐 로벨이 우주 공간에서, 25마일이나 떨어진 텍사스, 휴스턴으로 그들이 탑승한 우주선에 뭔가 이상이 생겼다고 무선 연락을 해왔는데, 당시 그가 한 말, "문제가 생겼습니다."는 세계에 지극히 중요한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용감한 세 사람이 달을 향해 가던 중에 다시는 지구로 귀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행동? 아니면 반응?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하고 따지는 대신, "문제가 생겼다" 하는 그 말에 모든 사람이 그들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습니다. 무사 귀환한 짐 로벨 일행은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직 자신들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분명 생사의 기로에 선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한 번에 하나씩 풀어가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이 성공하기를 희망하며 간구하였습니다. 행동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했고, 행동과 팀워크를 통해 결국 승리했습니다. 당시의 일은 역사가 되었지만, 행동의 교훈은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역작인 햄릿의 다음 구절에서 인간의 개인 행위의 중요성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명심할 것은 네 자신에게 참되라. 밤이 낮을 뒤따르듯, 명심하여 따를지니. 그럴진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될 수 없으리라."(햄릿, 2막 3장 3.) 자신에게 참되다는 것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그 길로 가는지를 알고 자신의 친구가 자신과 함께 올바른 길로 가도록 돕는다는 의미를 또한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응이 아니라 행동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너희가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야고보서 1:22) 혹은 "그러나 나의 제자들은 거룩한 곳에 서 있어 움직이지 아니하려니와…"(교리와 성약 45:32) 같은 경전 구절이 새롭게 그 중요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괴롭힘이나 멸시, 순교자로서의 죽음을 포함한 잔혹한 역경들도 의미 있는 행동으로 가득한 그의 삶을 멈추거나 조금도 늦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는 말씀에 완전히 전념하여 활동했습니다. 그저 복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 복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중히 여긴 원리들에 참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뜻깊은 행위로 가득합니다. "간구하라", "구하라", "두드리라", "판단하지 말라", "사랑하라"는 단어들은 모두 반응이 아닌 행동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예수님은 훌륭한 스승으로 따르는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과 같지 아니[하셨습니다]"(마태복음 7:29)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께 참되셨습니다. 더욱이,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그분이 우리에게도 참되셨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반응 철학이란 참으로 나약하기 짝이 없는 것들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그가 여러분을 사랑하는지 먼저 살펴라." "우정을 보이기에 앞서 지인(知人)이 우정을 보이는지 살펴라." 그에 반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행동 계명은 얼마나 강력한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의 인간이 되며 어느 누구도 우리를 그분의 길에서 이끌어 내도록 허락하지 않게 되기를 겸손하게 간구합니다. 우리의 능력을 다하여 이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의 행위를 통해, 우리에 대해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는 말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2:52)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포기한다면 우리는 가정에서 실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용없는 일이야, 오지 않을거야" 혹은 "소용없는 일이야, 아무런 응답도 없을거야." 하고 반응한다면 우리는 선도해야 할 지위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각자 일하도록 부름 받은 밭에서 온 힘을 다해 낫질하도록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생에서 행동의 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참되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사업에 활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도와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