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ca (----용----) 날 짜 (Date): 2001년 2월 4일 일요일 오후 11시 13분 41초 제 목(Title): [한백설교] 호모 네크로필리우스 2001년 2월 4일 한백의 소리 호모 네크로필리우스 황 용 연 때 : 통일염원 57년 팔백 한 번째 예배에서(2001.2.4) 본문 : 마르코복음서 10장 13-16절/ 곳 : 한백교회당 마르코복음서 10장 ○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려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랬는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 그러나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표준새번역) 방글라데시에서 온 한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수도권 공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 공장에 몸을 담았다가 월급을 받지 못해 싸우고 쫓겨나고 저 공장에 취직했다가 월급을 받지 못해 싸우고 또 쫓겨나는 일을 계속 겪었습니다. '불법' 노동자이니 월급을 못 받았다고 해서 호소할 수 있는 곳도 없었지요. 그렇게 공단을 떠돌아다니면서 그는 그의 고국에서 온 다른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중의 마음 맞는 사람과 같이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정류장에서, 그는 그의 앞에 있던 한 취객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지하철 선로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그 취객을 구하러 선로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취객을 그것도 지하철 선로 밖으로 끌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애쓰고 있는 그와 취객의 몸을 무정한 전동차는 덮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 때문에 매스컴이 갑자기 떠들썩해졌습니다. 돈 벌어 보겠다고 타국까지 날아온 젊은 생명이 꺾인 데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생명을 잃을 위협까지 무릅쓰고 그것도 외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을 구하려 했던 그 의로움. '이기주의로 가득 뭉친 요즘 우리 사람들/우리 젊은이들'에게서는 도통 볼 수 없는 살신성인의 표본이라는 칭송과 함께 그의 죽음은 온 나라에 추도열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신문과 방송들이 그의 죽음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의 룸메이트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터뷰가 우연히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의 한 직원 눈에 띄었습니다. 순간 그 직원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인터뷰를 한 룸메이트는 바로 '불법체류노동자'로 출입국관리소에 잡혔다가 탈출한 사람이었거든요. 언론 보도를 통해 룸메이트의 소재를 파악한 그 직원은 즉시 그가 사는 지역의 경찰서에 연락을 했습니다. 결국, 온 나라의 애도 속에 그 노동자의 장례식이 치루어지던 날, 그의 룸메이트는 김포공항을 통해 방글라데시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만든 가상의 우화입니다. 그럴 듯한가요? 지난 한 주간 한국의 언론과 일본의 언론은 온통 '의인'에 대한 추모 기사로 뒤덮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총리가 조문을 오고,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조전을 치고 국민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그 '의인'을 '본받아서' 지하철에서 사람을 구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하더군요.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 한다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수현씨는 분명히 '의인'입니다. 특히나 '네 입으로 말 하는 거 반만 몸이 따라가 봐라'는 말을 종종 듣고 사는 저 같은 사람은 더더욱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수현씨는 물론 '의인'이겠지만, 이수현씨를 '의인'이라고 칭송하는 그 목소리는, 웬일인지 수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군요. 저는 처음 이수현씨 사건을 접했을 때 그 사건에서 취객을 구하러 뛰어든 사람이 이수현씨 혼자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인이 한 사람 더 뛰어들었고, 그 역시 죽었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언론과 일본의 언론은 모두 이수현씨만을 크게 다루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 중의 하나가 '한일우호'였습니다. 며칠 전까지 '한일 월드컵'이냐 '일한 월드컵'이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한국과 일본 사람들 입에서 말입니다. 며칠 전까지 '일본'이라는 말만 나오면 마치 일종의 '악마'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던, 그러면서도 그 '일본'의 군대 장교를 지낸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경제발전의 영웅'으로 숭배받으며, 그 딸까지도 대통령을 은근슬쩍 노린다는 그 한국 사람들 입에서 말입니다. 며칠 전까지 2차 대전 때 한국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만들었던 그 죄를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갖은 수단을 다 써서 방해를 놓았던 정부를 갖고 있는 일본 사람들 입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수현씨의 죽음이 한국과 일본 언론들을 떠들썩하게 한 이후에도, 여전히 '한일/일한' 신경전은 계속 중입니다. 여전히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은 '악마'이고, 여전히 박정희는 '위대한 대통령'입니다. 여전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를 만든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편, 한국의 언론이 자기 나라 사람인 이수현씨만을 크게 다룬 것은 이해가 간다고 쳐도, 일본의 언론이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이수현씨만을 크게 다뤘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이렇다고 하네요. '이기주의로 가득 뭉친 요즘 일본 사람들/일본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크게 다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훌륭한 청년을 키워 낸 한국에 경의를 표한다' 뭐 이런 말까지 들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렇다면 같이 죽었다는 일본인은 '일본 젊은이'였던 적이 없는 별종이란 말인가요? 그리고, '한국의 젊은이'도, 사실 '이기주의로 가득 뭉친 요즘 한국 젊은이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수현씨 같은 청년을 키워 낸 한국 사회에 경의를 표한다' 어쩌고 하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왜곡된 '이상화', 즉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닐까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봅시다. 이수현씨를 '의인'으로 만드는 것 같은 그런 모습들은 사실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도 '이기주의로 가득찬 요즘 사람들' 혹은 '요즘 젊은이들' 운운하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합니다. 이수현씨 사건 같은 것이 터지면 그런 이야기는 단순히 '어른들'의 이야기를 넘어서서 '우리들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털어 놓고 반성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이수현씨뿐만 아니라 지금껏 수없이 많은 '의인'들이 있었고, 수없이 많은 '미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이기주의로 가득찬 요즘 사람들' 소리가 많이 나왔고,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흘러 넘쳤습니다. 그런데 왜, 또다시 '이기주의' 운운하는 말이 나와야 하고, 또다시 부끄러워해야 하고, 또다시 반성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말만 많지 행동으로 옮기지를 못해서 그렇다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어쩌면, '말만 많지 행동으로 옮기지를 못해서 그렇다'라는 그 사고방식 자체에 문제는 없는 걸까요? '말만 많다'는 이야기는 뒤집어 말하면 이미 '지켜야 할 말'이 무언지는 다 나와 있고 다 알고 있단 소립니다. 문제는 그 '지켜야 할 말'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뿐이지, '지켜야 할 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요. 과연 그럴까요? 이수현씨의 죽음을 통해 새삼스레 '한일우호' 운운하면서도, 여전히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은 악마고, 일본 정부는 '일본군 성노예'를 만든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한일우호'라는 그 말 자체에 문제는 없는 걸까요? 그 '한일우호'라는 말이 과연 우리의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짚어 내기나 한 걸까요? 사람들이 '이기주의'로 가득차서 '말은 많은데 행동으로 옮기진 못한다'면, 대체 그렇게 '이기주의'가 가득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분명히 그 중요한 대답은 '자본주의' 아니면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대표되는 '집단주의'일 텐데, 그렇다면 그 '자본주의'나 '집단주의'에 대해서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는 움직임이 나올 때마다-그게 노동자들의 파업이든, 청소녀/청소년들의 머리 규제 반대든 간에-'건전한 사회 질서'를 해치려는 '나쁜 놈들'로, 또다른 '이기주의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수현씨를 추모하는, 그리고 수많은 '의인'과 '미담'에 감격해하는 그 집단적인 마음 속에는, 우리 사회의 온갖 '지켜야 할 말'들은 정당한 것이고,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할 여지가 없다는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는 건 아닐까요. 모든 문제는 그 '지켜야 할 말'을 지키지 않는 '이기주의' 때문에 생긴 거라는, 이런 사고방식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요.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이기주의자'이기만 하고, '말만 많지 행동하는 것은 없는 사람'이기만 하고, 그래서 이수현씨 같은 '의인'과 '미담' 앞에 서면 언제나 칭송하고 부끄러워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사람이라고 은연중에 우리 스스로를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으로써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라고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켜야 할 말'은 완벽하고,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기주의자'라서 못 지키고, 그러니 오직 남은 것은 이수현씨의 시신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것일뿐인, '네크로필리아', 시체 애호뿐인건가요? 여기에서 새삼스럽게 박정희의 시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겹쳐 본다면, 너무 지나친 걸까요? 예수에게로 많은 어린아이들이 몰려 오자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본 예수가 오히려 노하면서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라'고 말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지켜야 할 말'을 수없이 많이 만들어 내고 아마도 그것을 지키는 데에도 탁월할 그런 '제자들'과 같이 하느님 나라를 받들지 못하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린이들', '지켜야 할 말'을 만들 수도 없고, 오히려 그런 말들을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맨날 야단이나 맞을 그런 '어린이들'처럼 하느님 나라를 받들지 못하면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오늘 어쩌면 이수현씨를 추모하는 목소리들 속에서, 우리들 스스로는 또다른 의미에서의 '어린이'가 되고 있을 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어린이'들에게, 예수는 '손을 얹어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어린이'들이야말로, '제자들'이 아닌 그 '어린이'들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SCA!----http://www.hanbaik.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