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mark99 ( ) 날 짜 (Date): 2000년 10월 13일 금요일 오후 11시 23분 56초 제 목(Title): Re: 죄이야기가 나와서. 마침내 어느날 모든 도시의 개들이 모여 '성직자 개'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단 하루만이라도 달을 보고 짖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그리하여 그 날이 되어 결국 개들의 '초견적인' 인내심의 결과로 도시가 여느때와 달리 정적에 빠져들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성직자 개'는 극도의 불안감에 빠져듭니다. 자신이 개들을 너무 밀어붙인 나머지 개들이 정말로 이제 더 이상 달을 보고 짖지 않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 마찬가지로, 어느날 '성직자 개'가 하루만이라도 꾸짖지 않는다면 나머지 개들 역시 불안감에 빠지지 않을까요? 이 양쪽은 서로가 다른쪽을 필요로 하는 공생 관계에 있으니까 그 성직자 개가 없어진다 해도 나머지 개들 중에서 다시 성직자 개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약간 더 바꿔보면, 이 보드에서 비기독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어느 한쪽이 짖지 않거나 꾸짖지 않으면 다른 한쪽이 불안감에 빠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맞춤법 관계자 여러분께: '짖다'와 '꾸짖다'는 언어학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는지 설명 바랍니다. 이 정도 설명 못하면 더 이상 짖지 않는 편이 좋을 듯...) 제가 하려는 얘기는,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거나 겪어야 하는 싫어하는 사람, 괴로운 상황... 이런 것들이 뭔가 우리의 내면적인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가 초대한 것이라는 사실. 예를 들어서 기독교인들이 왜 교회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느냐 하면, 이 교회 울타리가 분명히 구속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것이 주는 편안함, 안전 또한 존재합니다. 이 때 이 안전 의식을 영구화 하기위해서는 가상의 적을 계속 창조해야 합니다. 따라서 죄의식, 사탄, 지옥 등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을 끊임없이 창조화하고 사건화 합니다. 즉 가상의 위협으로 부터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을 구원해주는 가상의 수호자의 힘은 더 강력해지고 구속과 맞 바꾼 안전감 역시 공고해집니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대부분의 경우에 볼 수 있는 사실이지만 비기독교인들이 찐따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공격을 하는 경우도 같은 이유입니다. 가상의 찐따들과 논쟁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획득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일전에 mask00이나 rosebud같은 찐따 좀도둑 게스트들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응용했을 때, 만약 우리가 현재 교회 시스템 보다 더 매력적인 안정감을 쉽게 제공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고안할 수 있다면 초대박 터졌다 혹은 심봤다 이렇게 말해도 좋겠습니다. 교회 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순수익을 낸 최고의 수익 모델이었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 노벨 경제학 수상자 후보로 조용기씨를 적극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