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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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aram (서인선)
날 짜 (Date): 2000년 10월  2일 월요일 오전 06시 44분 50초
제 목(Title):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


오랫만에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을 다시 손에 쥐다.

누구나 아는대로 야스퍼스는 20세기초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 = 무신론적 실존주의 ; 야스퍼스 = 유신론적 실존주의'
공식은 아직도 암기하는 이들이 많을 터. :)

나만 해도 전에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들은 풍월만 가지고 하이데거가
더 나은 철학자라고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나찌 시대에 그의 행적을 
알게 된 이후로는 그에 대해 좀 정이 떨어져서 그가 하는 철학에도 
관심이 멀어졌고 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야스퍼스에 관심을 좀더 
가지게 된다. 사실 20세기 초 험한 시기에 야스퍼스의 행적을 살피면
나름대로 매력적인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마음씨 좋은 사람
이 학문적 업적도 많이 남긴다는 멍청한 생각은 전혀 없다. ^^) 

어찌되었건 이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당대의 대지성이 종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누구나 한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이 글 중에 일반인이 말하는 종교에 대한 비난 및 그에 대한 작가자신
의 반론을 한번 여기 퍼와 본다.

내 생각에 앞에 나오는 문장(비난)은 이 키즈의 기독교 보드를 비롯,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주제라서 비교적 익숙한 반면 그 반론으로 
내세우는 야스퍼스 자신의 논리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미리 말하지만 야스퍼스가 말하는 종교가 반드시 기독교라고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개신교적 입장에서 보면 그는 이단취급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는 중국 및 인도의 문화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고 
그가 종교라고 말하는 것에 동양종교의 의미도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가 살던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겠다. 역시 그가 말하는 종교가 
거의 기독교를 말한다는 점은 분명하지 않을까?

========================================= (여기부터 ) ===========

고대로부터 종교는 되풀이되어 철학자들로부터 저버림을 당해 왔다. 
우리는 일련의 전형적인 비난들을 열거하고, 그 각각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종교가 많다는 것은 그 어느것도 참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왜냐
하면 진리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 이 비난은 신앙의 언표가 지식의 내용처럼 취급될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 자체에 대해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종교적 신앙은 
그것의 역사적 현상을 지니며 그것의 표현이 그것에 있어서 말을 하게 되는 
바 신앙 생활의 내용과 바꿔치기할 수는 없다. 쿠사누스는, '제의의 다양성 
안에 있는 하나의 종교'라고 말했다.

2) 종교들은 지금까지 모든 해악을 허락해 왔고 가장 두렵고 무서운 일을 
저지르고는 정당화할 수 있었으며 포악한 행위와 거짓말, 인간 희생, 
십자군, 여러 종교 전쟁을 자행했다. 

-> 종교들로부터의 영향의 건전성과 해약에 대해 결산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에 속한다. 역사적 사실의 탐구가 모든 가치 판단의 기초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비난은 종교들의 유익한 결과들, 곧 영의 심화와 
인간적인 사물들의 질서 부여, 그리고 위대한 양식의 배려, 활동과 예술과 
사유의 내용 부여의 확인에 의하여 보완되지 않으면 안된다. 곧 인간 상호
간의 사이의 좋은 관계와 평화와 법 질서는 종교를 통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성에 의하여 실현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과, 신앙보다도 국법이 더 효과가 
있고, 실천적인 윤리라 종교적인 신앙고백보다 더 작용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인류에게 있어서 좋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과학과 이성의 업적이지 종교의 
업적이 아니라는 바로 그러한 명제가 제기된다면 종교는 실로 이성을 배제
하지 않으며,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 종교는 가장 많은 안정되고 내실이 
풍부한 질서를 실로 이성의 도움을 얻어, 직접적 지시에 의하지 않고 신앙
하는 사람의 성실과 미더움을 통하여 실현한 것이라고 하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에 대하여 이성 - 사람들은 오성이라고 생각한다. - 에만 기초를 세우려는 
시도에는,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경험에 의한다면, 허무의 혼돈이 급속히 
뒤따른다.

3) 종교는 거짓 불안들을 조성한다. 환상들이 영혼을 괴롭힌다. 지옥의 고문,
신의 분노, 그리고 무자비한 의지의 불가해한 현실 등과 같은 것이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특히 임종의 현실에서 그러하다. 종교로부터의 해방은 그것이
기만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에 안정을 의미한다.

-> 이 비난은 구체적인 미신적인 내용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한에서는
정당하다. 만약 불안 자체의 내용이 마땅히 상관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거짓이 된다. 만약 무수한 영혼들에 있어 지옥의 두려움이 악을
거스르는 선의 선택의 근거가 되어 왔다면, 아마도 이 두려움은 억측적인
실재 앞에서 갖는 두려움에 불과한 것이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지옥 표상의 암호에 있어서 그 자신의 존재의 선택의 실존적 동기로 
이해될 수가 있다. 본래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각성한 인간의 근본 특색
이다. 지옥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오는 안정은 그리 충분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적극적인 신뢰로부터, 되풀이해서 불안을 극복하는 선의에 뒤따르는 
영혼의 근본상태로부터 생겨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불안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다만 피상적이 된다.

4) 종교는 인간 전체에 파고 드는 불성실성을 조장한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 무사상성, 불합리한 것으로부터 비롯되며, 회의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는 근본 기분을 형성한다. 얼핏 회의가 
일어나더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오성을 강압하고, 그리고 이 불성실성을 
하나의 공로로 생각한다. 더 이상 묻지 않는다는 습성은,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도 사람을 손쉽게 불성실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사유와 또 자신의 태도 
속에 있는 모순들을 간과한다.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참된 것의 전도를 그들이 
이것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종교적인 신앙과 
불성실성은 친화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 이 비난에 대해서는 다만 종교의 발전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종교의 
근원 속에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지적되어야겠다.부르크하르트에 따르면
비록 종교적인 천재들에게서 보여지는 무비판성의 정도가 우리에게는 거의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무비판성에는 반드시 불성실이 있기 마련이
다. 오성이 숨겨 놓기 쉬운 한계들과 수수께끼들은 종교적인 인간에게는 비록
종교가 위의 미신적인 내용으로 될 경향을 띠고 있는 신비적인 형태에 있어서
이긴 하나 직접적으로 현전한다.

5) 종교는 사실 세속적인 것,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 것들을
세계 안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선별한다. 그리고 이 신비의 정도가 높여지는 
결과, 종교 밖의 세계의 가치는 평가절하된다. 깊은 외경은 그것이 종교적으로
결합될 때, 종교가 개입하지 않는 어느 곳에서도 세속적인 외경의 가치는 
손상된다. 특수한 것에 고착된 종교적 경건은 이미 포괄적으로 모든 것을 
정초하는 외경이 아니다. 외경을 종교에서 이같이 한정하는 작용은 동시에 
다른 종교를 서로 배척하고 부정하는 작용을 포함한다.

-> 이 비난은 결코 모든 종교인에게 통용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종교는 모든
세계를 남김없이 그것의 빛 속에 가져오며, 그것 특유의 것으로부터 모든 
실재에 반사의 빛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비난은 종교의 실재화,
비록 이것이 아마도 종교적인 것 자체로부터는 떨어져 나간 것으로서 팽개쳐
버릴 수 있는 것이 된다 할지라도, 그 실재화에 들어맞는다.

종교에 관한 이 모든 논의는 무언가 문제의 결정적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있다.
이 비난들은 종교 내부에 있는 왜곡 현상들에 관한 것이지 종교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닌 것이다.
다시 그 위에 종교와 종교들에 관한 이야기만이 있었을 뿐, 단 하나의 비할 데 
없는 계시의 진리로서 나타나고, 고지되며, 주장을 하고, 다른 종교들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포괄적인 성서적 종교로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발단하는 교회와 신앙고백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니와, 그 종교에 우리 모두가, 즉 유대인인이건 기독교인이건,
그리스 정통 교회 신자이든, 카톨릭교도이든, 신교도이든, 아마도 이슬람교도
까지도 속해 있는 것이다.

========================================= (여기까지 ) ===========
캄캄한공기를마시면폐에해롭다폐벽에그을음이앉는다밤새도록나는몸살을앓는다밤은참
많기도하더라실어들여오기도하고실어내가기도하다가잊어버리고새벽이다폐에도아침이
켜진다초췌한결론위에아침햇살이자세히적힌다영원히그코없는밤은오지않을듯이이이이
환자는모두죽었다환자는모두죽었다환자는모두죽었다환자는모두죽었다이상책임의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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