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Nevido (열심히살자) 날 짜 (Date): 2000년 9월 3일 일요일 오전 01시 42분 25초 제 목(Title): [펌] 종교의 본질 종교라는 말의 어원과 본질에 대한 짤막한 글입니다. 가만히 보면 기독교가 차용하는 바람에 원래 뜻이 왜곡된 말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기독교관련 토론때마다 자꾸 이야기가 겉도는 원인 중에 하나겠죠.(당연히 배타적 유일신사상이 주원인입니다) ------------- 종교의 본질우리는 흔히 종교라 하면 신과 같은 어떤 절대한 존재를 연상하고 그와의 관계, 즉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 이해는 서구 편향적인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신과 인간의 관계로 나타나는 종교의 한 양태에 불과할뿐, 그것이 종교의 본질이거나 기준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신을 전제로 종교를 이해하는 것은 전형적인 서양적 이해이다. 서양의 종교들은 한결같이 절대한 신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적 종교 이해는 동양의 종교들과 만나면서 편협된 것임이 확인되었고, 따라서 현대 종교학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개념이다. 그 까닭은 동양의 많은 종교들은 신을 전제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러한 정의는 모든 종교를 포괄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동서가 하난 되고 종교의 다양성이 상식인 지금 그러한 편협한 종교 이해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 '종교'라는 말은 서양의 종교가 소개되기 훨씬 이전부터 쓰여왔던 말이다. 즉, '종교'란 중국에서 "능가경"이 번역될 때 처음으로 쓰였던 말로 '종(宗,Siddhanta) 의 가르침(敎, desana)',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궁극적 진리의 가르침'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서양의 '릴리전(Religion)'이라는 말을 불교의 '종교'라는 말로 번역하면서 혼동이 생겼다. 그런 번역 이후 '종교'라 하면 본래의 의미는 잊은 채 무분별하게 서양적 의미의 종교를 연상케 되었던 것이다. 이는 완전한 의미의 전도현상이다. 이처럼 다원화된 현대의 종교적 상황이나 종교학의 입장, 그리고 본래의 읨로 보아 종교를 신을 전제해서만 이해하 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그러면 종교의 본질은 어떠한 것인가? 종교란 문자 그대로 으뜸가는(宗) 가르침(敎)이다. '으뜸가는 가르침'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궁극적인 가르침이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다. 학문의 다양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종교는 다른 가르침과 달리 삶의 가장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삶의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것, 즉 나고 죽는 것을 문제 삼으며, 그러한 문제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이상으로 한다. 그러한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을 통해 종교는 삶의 근본에 관한 기본적인 자세와 방향을 제시해 준다. 실로 종교는 올바른 삶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주는 가르침이다.둘째, 으뜸가는 가르침인 종교는 궁극적인 체험을 본질로 한다. '으뜸'을 가린키는 '종(宗, Siddhanta)이란 말은 본래 '성취된 것의 끝' 이란 불교에서 깨침과 열반을 가리킨다. 따라서, '으뜸'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한 체험을 가리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일체의 분별과 상대적인 것이 끊어진 '하나'의 체험이기 때문이다. 생사의 매듭이 풀어지고 바른 삶이 확림되는 것도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이다. 이처럼 종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체험을 본질로 하며 그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현대의 종교학자들은 종교를 '거룩한 것의 현상'이라 보기도 한다. 그들은 거룩한 것의 속성으로 초월성, 절대성, 궁극성을 듣고 그것 의 표현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성취된 것의 끝'은 이들이 말하는 거룩한 것의 본질을 잘 나타낸다. 왜냐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된 것의 끝'은 시간과 공간이 초월된 대가 끊어진 하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 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가르침'은 각기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길은 여럿'이라는 종교의 다양 성의 근거도 여기에 있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 이 자기 또래와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그들과는 다른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꿔 야 한단 말인가? -} 패티.. 너에게 이 끝없이 펼쳐진 저녁놀을 보여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