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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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oliton (김 찬주)
날 짜 (Date): 1994년07월30일(토) 21시21분27초 KDT
제 목(Title): staire님의 질문: 족보문제


예수 가설(메쏘리 지음, 성바오로 출판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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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7
   .....사회주의적 이성론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는 엥겔스의 경우만이 길을 

잘못 든 유일한 수재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부르조아 이성론의 완벽한 실레가

되는 볼테르의 착오점글을 살펴보기로 하자.

  볼테르는 `논리학의 거장, 그리스도교의 모든 허위를 폭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탐정, 성서의 반계몽주의와의 전투에 있어 이성의 기수'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러면 그의 `철학 사전'에서 `예수를 낳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족보'에 대해 그가 전개하고 있는 논리를 고찰해보자. 마태오는 42명의 

명단만을, 반면 루가는 56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오복음에 열거된 

이름들은 루가가 제시한 것과 정확히 부합되지도 않는다. 설사 그것이 제대로 

맞는다 하더라도, 루가가 아담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데 비해 마태오는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를 훨씬 고약하게 

만들고 있다. 볼테르는 이 이상 꼴사나운 모조품을 어떻게 생각해낼 수 있느냐며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런식으로 시작하는 원전들을 어떻게 해서 역사적으로 

약간이나마 믿을 만한 것이라고 간주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 자리에서 명백히 해 두기로 하자. 그리스도교 학자로서, 심지어는 

가장 완고한 전통주의 학자라 할 지라도, 이러한 `족보'를 역사적 의미에서 

`참되게' 여길 수 있는 것이라고 증명하려 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족보들이 

전혀 목적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문어적이며 상징적이고 

특히 신학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볼테르와 그의 동류들은 예수에 대해 

전해오는 전통이 깡그리 그리스도인들 손에서 마음대로 조종되거나 

고안해낸 것임을 입증하려고 그것들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들은 마찬가지로 

복음서 사이에 드러나 있는 여타의 상위점들도 쉽사리 꼬집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눈에 띄는 수많은 상위점들이 예수의 생애를 주석하는데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그래도 교회는 볼테르보다 훨씬 

이전에 그런 점들을 개운찮게 의식하고 있었다. 벌써 150년경에 신원미상의 

한 시리아인이 그런 점들을 제거할 생각으로 소의 `베드로의 복음서'라는 

것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을 위경으로 간주해버렸다. 170년경에 

이르러 타티아누스라는 저술가도 `네 복음서의 통합'으로 알려져 있는 저서 

속에서 같은 일을 시도했었다. 마르치온이 교회는 복음서 하나만을 인정해야 

하며 그것은 루가복음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을 때, 교회는 논리적으로

그것을 그럴 듯하다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와 

그의 주장을 교회 분립죄로 다스렸다....  (중략)

   ...교회가 복음 내용의 상위점들에 대한 반론을 편 2세기의 그 저술가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는 교회가 바로 그즈음에 선정한 것들로

지금 우리 손에 있는 네 복음서가 마지막 형태로 고정되기 전에 여러 단계를 

거쳤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 자신이 아무 글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고 볼 

때) 그들이 최후로 편집 과정을 거침으로써 모든 상위점들을 해결짓고 서로간에

마찰을 빚지 않도록 네 복음서를 간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녕 논리적이었을 테고, 교회의 선교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도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 점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믿음의 공동체가, 비록 놀라울이만큼 엇갈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네가지 원본을 그리고 이 네가지 원본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무'로 여겼기 때문이었다는 대 있는 것 같다. 그 의무에는 이들 원본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증인들의 기억을 담고 있다는 합리적인 확신이 뿌리박혀 있었음에 

틀림없다.  사람들의 기억이 간혹 어떤 점에서 일치하지 않았고, 혼선을 빚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은 신들린 두사람이 가다라 부근에서 

치유되었다고 진술하는데 비해 루가와 마르코는 게사라 근처였다고 하는데, 

어느쪽이 맞는가?) 그렇지만 그것들은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신빙성 있는 증언 

가운데서도 가장 믿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음에 틀림없다.

  엄밀히 말해서 바로 이 네가지 `공식적인' 진술 속에 나타나 있는 

상위점들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애당초에 예수가 영위한 순수한 역사적 삶이

존제하였다는 것과, 그같은 사실의 증거를 주워모으자면 그에 과한 가장 믿을 만한

증언 몇 사건과 가장 밀접하게 부합하는 증언들을 찾아내서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케 해준다. 그리고 이 특정한 증언들은 분명히 흠잡을 수 

없다고 간주한 것들이었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는 논리와 편의가 별로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효과있는 설교라는 목적면에서 볼 때 복음서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말해주는 동시에 너무나도 말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초대 교회가 즉시 

반발을 받을 만한 그런 원전을 팔에 안고 세상을 대할 만큼 어리석었다면, 

그같은 어리석음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은 ---비판론자들과 

신화론자들이 이에 거슬러 무슨 말을 하더라도---애초에 믿음의 공동체가 

제멋대로 조종할 수 없었던 어떤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면 다시 볼테르가 복음서들이 역사적으로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된다는 

증거로 생각했던 그 족보를 살펴보자. 이 철학자의 빛나는 지성도 그의 

동료가운데 한 사람인 브루크베르거가 오늘날 지적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태오는 나무랄 데없이 예수의 선조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가운데 

마리아 이외에 네 명의 여자 이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 

엉터리이다. 유다인의 전통에서 여자란 결코 족보에 끼이지 못했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이 족보는 애초부터 효력이 없었다. 여자란 상당히 의혹시되고, 

곧잘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던 존재였다. 따라서 그들의 이름 자체가 암영을 

던져주고 있으며, 비중있는 족보에서는 그런 이름들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더우기 예수는 사제혈통에서 출생케 되어 있지 않다. 그가 레위지파에서 난다는

말은 없다. 만일 사도들이 근거없는 고안만을 일삼고 있었다면, 그들은 왜 

예수에게 제 1급 신임장이 되기에 합당한 족보를 부여하지 않았던가? 이와 

비슷한 질문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왜 신화 창조론자들은 

자기네 주인공에게 전설적인 영웅으로 걸맞는 독특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흔하디 흔한 이름을 붙였던가?

  복음서들 속에서 그같은 각색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곧 이 메시아에

관해 설교하던 이들이 마음대로 기발한 착상은 해낼 수 없었다는 논증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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