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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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의 계보에서 그리스도의 계보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창세기 5장에 있는 말씀을 같이 나눌려고  합니다. 

창세기 5장을 보면, 1절에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면서 창세기 5장은 

아담 자손의 계보,  즉 아담의 족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담 

족보를 읽어 보면  4절에,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나며 자녀를 낳았으

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후 팔백  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이세를  향수하

고 죽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담자손의 계보를 살펴보면,  매 

사람들의 이름이 나올 때  마다 마지막이 죽음으로 끝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담

의 족보는 죽음의  족보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고 하신 말씀대로 아담의  족보는 

죽음만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

보는 다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은  이

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하면서 계속해서 낳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낳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죽음이 없고 반대로 아담의 족보에는 죽

음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그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그려  놓

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속에 죽음을 빼 버렸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인  마태복음 1장 그 어디에서도 죽음이란 단어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가리키냐 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되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말하기를 '선한 선생이여 우리가 무엇을  하여

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영생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하지 않음에 달려 있는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얼하고, 하지 않음에 

영생을 얻거나 멸망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왔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멸망이냐가 결정되어진다고 하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 안에 참된 생명이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이겼

습니다. 마치 빛이 어두움을 이겼기 때문에 빛 가운데 어두움이 존재할수 없는  것

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사

망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

미암아 그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나게 되었을 때, 아담의 족보에서  그리스

도의 족보로 옮겨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영적

인 비밀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한 하늘나라에 갈려고 하면 죄를 짓지 아니

하고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고 무얼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것은 율법시대에 우리가 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어떤 관념에 매여있는  사람들

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그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는 방법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갈 때는 우리가 무얼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그 의를 얻을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

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로다'(딤전 1:15)  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고 그 다음에 말하기를  내가 

은혜를 얻는 것은, 다시 말하면 자기의 심장이 튼튼한 사람은 남의 심장을  기증받

을 수가 없고 자기 눈이 좋은 사람은 남의 눈을 기증받을 수 없는 것처럼,  디모데

후서 1장 16절에서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이라고 해서 죄인 중에  괴수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아무리 잘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에, 긍휼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었다고 사도바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말씀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발견

되려 함이니' 하고 9절에 말했는데 9절 그 다음부분에 보면 '내가 가진 의는 율법

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

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도 바울은 자기가 잘해서 의롭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

았습니다. 자기가 정직하거나 율법대로 잘 살아서 의롭게 됐다고 사도바울은  말하

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

수 그리스도의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눈이 썩어서 쓸 수없을 때, 눈알을 빼 

버리고 다른 눈을  기증받듯이 우리의 마음의 있는  죄의 보따리는 썩어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본 받아 예수님의 의로 하나

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천국에 갈려면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정

말 거룩하고 참 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의 어떤 선행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은혜로 값없이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세기 5장에 아담의 

족보에는 죽음만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는 생명만 있습니다. 

우리가 아담의 족보에서  그리스도의 족보로 옮기기 위하여 우리의 이름이  그리스

도의 족보에 기록 되기 위하여 우린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신 예수 그리

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들여서 그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족보에 속하면 거기엔 죽음이  없고, 

멸망이 있을 수 없고, 거긴  다시 죄의 종 노릇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예

수 그리스도가 죄를 이겼고,  사망을 이겼고, 어둠을 이겼기 때문에, 사단을  이겼

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참된 평안과 기쁨속에 삶을 누리게 된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더 나아가 마태복음에 나타나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보면,'아브라함과  다윗

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

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하면서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 때까지의  족

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3절을 살펴보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말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입니다. 이  여

자는 유다의 며느리였는데  자식을 낳지 못하고 남편이  죽자 자식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 시아버지와 동침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족보에는 보통 남자의 이름은  나오지만 여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이 예수 그

리스도의 족보에는 네 명의 여자가 나오는데 이 네 명의 여자들은 모두 다 비운의 

여자요, 추한  여자였습니다. 3절에는 다말이 자식을  낳지 못해 시아버지와  정을 

통하고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 5절에는 '살몬은 

라합에게서..'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라합은 기생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이  멸망을 

당할 때 라합은 여리고성에  사는 기생이었는데, 그 여리고 성에 살다가  정탐꾼인 

살몬을 만나서 기생생활 하던 여자가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오는 놀라운 복을 얻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좀  더 내려가 보면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습니다. 이 룻은  원래 이방 모압 여자였는데, 자기의 남편이 죽고 시아

버지도 죽고 시동생이 죽어서  이제 세 과부만 남게 되었는데 룻은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까지 와서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이  여자도 

정말 불행의 한 여자요 비운의 여자였습니다. 그 다음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

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아내가 아닌 자기 부하 

우리야의 아내를 취해서 솔로몬이란 왕을 낳았습니다. 이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 족보에 나타난 네  사람의 여자는 전부다 추한 비운의 여자였습니다.  그

런데 이 여자들이 어떻게  이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등장되어 생명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이제  우리는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깊은 사랑을  알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마태복음 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않고 인간의 계시로 글을 썼다

면 이 부끄러운  네 명의 여자들의 이름은  반드시 지워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네 명의  여자들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귀한  족보 위에 등장시키셨습니다. 이것은  무얼 가르켜 주고  있습니

까? 사람들은 참 위선적인 삶을 많이 삽니다. 우리 모두가 이 비운의  여자들처럼, 

겉으로 볼 때는 잘 살고 똑똑하고 깨끗한 것 같지만, 우리 속은 정말 더럽고  추하

고 악하며 우리들 모두가 다 죄악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될 

수 있는대로 자기의 죄악을  가리고 깨끗한 부분들만 나타내게 되는데, 그러다  보

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는 정말 착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스스로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남의 추하고 더럽고  연약한 

부분을 보면 멸시하고 천대하고  정죄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위치에 쉽게 들어가

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 가운데 가장 깨끗한 자라 할 지라도, 사람들이 그의 허

물을 다 모르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것같이 허물이 없는 것처럼 위선적인 삶을 살지

만, 하나님 보실 때는 우리 모두가 이 네 명의 여자처럼 추하고 더럽고 가증된  인

간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깨끗하고  착한 사람들을 원하신다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추하고 더러운 자를  찾으

시며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신다면, 자기 자신을 깨닫고 추하고 더러운  사

람인 것을 고백하는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입

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세상에 와 계실 때, 그 당시에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 대제사장들과 가까이 하지 아니하시고  오

히려 간음한 여자나 세리와  같은 추하고 더럽고 죄 많은 인간들을 주님이 가까이 

하시고 그들을  영접했다고 하는 사실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착하고 

정직하고 진실해서 죄를  안짓고 깨끗하게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

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추하고  더럽고 정말 죄 많은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러운 죄인이 되기 위하여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들은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  양심

의 죄를 깨닫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는 더러운 죄인인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는  우리는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속아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거룩한 예수님의 족보에 추하고 더럽고 가증된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

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지 못해서가 하니라 너무 잘 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

님의 은혜와 멀어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귀한 은혜를  베풀기 

원하셨습니다. 잘하고 잘사는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죄가 많고  추하고 더러워서 도저히 구원을  받을만한 하지 못한 구제불능의 

사람들이라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를 입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추하고 더러운 자는 다  주님 앞에 나와 은혜를 입었지만 

정말 잘 믿는다고 소리치는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주님 앞에 버림을 받고 주님을 

대적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하여 자기가 잘할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한다면 하나님이 우릴  위하여 하실 아무런 일이 없습니다. 기도를  여러

분이 잘 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도와 줄 수가 없고, 여러분 스스로  술

을 끊고 담배를 끊는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도와 줄 필요가 없으며,  여러분

이 정말 건강하기만 하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 줄 필요가 없으며,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산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씻어 줘야 할 하등의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추하고 더럽기 때문에, 마치 강도 

만난 자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어가고 있을때, 누군가가 그를 도와주지 않으면  그

는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위치에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가 그를 도와주신  것처

럼 정말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비록 좋은 직장에서 돈을 벌어 잘 먹고 잘 살지만 우리  심령의 

죄를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

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도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

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인하여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이제

는 정말 아무런 소망이 없이  절망 가운데 멸망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들어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사람이 되었을  때, 그러한 위치 속에 우리가 있게 될 때, 사랑

하는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도와 주신다는 것입니

다. 여러분, 세상  방법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며  도움을 구해야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조차도 무익한 것을 

깨닫고 전적으로 그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예수  그리스도 

족보에 나오는 네 사람의  여자는 추한 과거를 가졌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떳떳하게 실려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는데  공

헌한 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들이 얼마나 감사해 했겠습니

까? 이 다말 이라는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 족보에 들 줄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룻

이 알았겠습니까?  아니면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가 그걸 알았겠습니까? 그들은 

몰랐지만 주님은  그들 위해 축복하고  계십니다여러분께서는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축복을 주님께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앞에 이 귀한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계속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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