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6월24일(화) 10시48분16초 KDT 제 목(Title): 불교의 유일신관 어느 도반이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을 한 것인데 유일신과 다신교 그리고 불교는 왜 신을 부정하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입니다. 불교의 창조신관에 대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선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지칭하는 "신"이라는 통상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겠습니다. "신"이라는 말을 할 때에 보통 사람의 마음은 불멸하는 어떤 존재 혹은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혹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속에서 볼 때에 불교는 "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유일신이든 다신이든 모두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과 다신적인 의미를 모두 함께 관통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부정하는 것은 "신"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신"이라는 존재를 바라보고 있는 "소유적인 관점"속에서의 인간의 신입니다. 이와같은 관점의 신은 그것이 유일신이 되었던 아니면 다신이 되었던 부정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호칭하는 "신"이나 기독교의 "유일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부처님"이 대상적 관점에서 나를 구속하는 특별한 인간의 소유적 대상속에서의 "신"이 아닐 뿐입니다. 예불문에 보면 "부처님은 사생(네가지 생명 형태)의 자애로운 아버지이며 삼계(욕계,색계,무색계)의 큰 스승"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버지란 생명을 잉태하는 원천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그 이름은 다르게 표현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관"이나 기독교의 유일신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존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부처님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어서 구원의 실상을 밝힌다는 의미로 본다면 다신적 요소로 변화가 되지만 그래도 역시 부처님은 여러분이 아닌 한분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한분이고 유일한 존재라면 나와 별도 존재일 수가 없어야 만이 유일존재일 수가 있는 것이지 나와 별도로 있으면서 나를 만들었다면 유일존재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빠진 공간이 있으므로 그 공간에 나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창조하기도 전에 부처님은 자신의 공간과 남은 공간속에 있으므로 유일존재가 아니게 됩니다. 이 차이만 극명하게 불교의 유일신인 부처님과 기독교의 유일신인 여호와의 차이입니다. 즉 절대존재로서의 부처님과 기독교의 이름인 여호와는 절대유일 존재라는 입장에서는 동일하지만 절대유일에 대한 관점에 대한 완전성 속에서 차이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가 부정하는 것은 유일신이 아니라 유일하지 못한 소유적인 관점속에서의 유일신입니다. 즉 유일하지 못한 불완전한 유일신을 유일신이라고 하는 비상식적인 유일신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간의 입장에서는 존재자인 부처님은 나와 별도 존재로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별도 존재로서 느끼고 있는 한에 있어서 부처님은 별도 존재가 아니면서 별도 존재로서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게 됩니다. 별도 존재로서 느끼고 있는 인간의 삶속에서 별도 존재가 아닌 존재자 부처님은 그 가운데에서도 별도 존재가 아니므로, 이러한 이유로 부처님의 모습은 인간을 끝없이 구원하는 힘으로 나오게 됩니다. 유일적 존재와 별도로 느끼고 별도로 대상화하는 것은 착각속의 인간이지 유일의 입장에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절대이며 유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직 존재자인 부처님을 나와 하나인 유일한 존재로서 느끼고 있지 못한 가운데에서도 그것을 믿고 의지하여 인생의 어려움을 마주하는 종교적 수행인 기도의 삶이 있게 됩니다. 즉 분명히 나와 하나인 유일신이지만 내가 그것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유일적인 존재인 절대생명인 부처님의 힘으로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나의 힘이란 곧 부처님과 나를 별도의 분리된 사고속에서 나오는 힘에 불과하나 유일적 존재이며 절대존재인 부처님의 힘은 한번도 나와 분리된 적이 없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신적인 요소로 오해가 되기 쉬운 수 많은 부처님의 이름과 보살의 이름은 또한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한탑스님은 전기의 비유로 이야기하십니다. 전기가 하나이지만 그 전기가 쓰임은 역할에 따라 다르듯이 부처님은 한분이지만 생명이 가지고 있는 하나 하나의 개별적인 고통을 해결하려는 유일적 존재로서의 모습이 같다는 것이 벌써 비상식적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불교는 신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신을 긍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 된 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적 관점의 신이 부정되는 것입니다. 인간적 관점의 대상으로서의 신이나 진리를 논의한다는 그 자체가 인간의 실존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신에 대한 논의는 불교에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