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5월20일(화) 01시15분35초 KDT 제 목(Title): re}re) 문사수 홈 페이지 어떤 형태로 나타나면 되겠습니까? 이전에 말한 '존재'라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구분되어 있는 관념속에서 그러니까 남이 있기 때문에 그 남 때문에 나를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존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있다'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 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령 눈앞에 있는 컴퓨터라는 것을 두고서 이야기할 때에 컴퓨터라는 물체를 변화하는 것으로 볼 때에 그 컴퓨터는 존재한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말하는 그 즉시 컴퓨터는 이미 물질적 형태의 변화를 했기에 이전과 달라졌고 그리고 변화하려는 그것을 억지로 멈추게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라는 이치성은 컴퓨터라는 물질이 있기 전에도 그냥 있었고 물질로 나타나도 그 이치성을 그대로입니다. "나"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가 "나"라고 하고 있는 그것이 물질화된 형태성을 가진다면 그리고 그러한 형태성 속에서 규정되는 "나"라면 그런 나는 있지도 않은 나이기에 "존재로서의 나"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부처님"이나 "하나님"도 컴퓨터나 나와 마찬가지로 형태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존재"로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은 모양이나 형태로 부처님을 찾지 말라고 합니다. 불법의 근본은 착한사람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곱부처님이 인정한 불교의 정의를 잘 살펴보십시요. 칠불통계라는 것을 보면 "모든 악이란 악은 전부 끊어버리고 모든 선이란 선은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면 이것이 불교이니라." 여기서 잘 못 보면 "착함"만 보게 되어서 착한 사람되라는 이야기로 알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그냥 착한 것이 아니라 모든 악함을 다 끊어버리고 선이란 선은 몽창 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부처님의 말씀을 빼더라도 한번 생각을 해봅시다. 과연 모든 악을 다 끊어버리는 것이 형태적인 생명관속에서 가능한 일인지를요. 걸어다니는 순간 발 밑에서는 생명들이 죽어자빠집니다. 밥을 먹으면 밥을 먹기위하여 무수한 생명을 죽입니다. 숨을 쉬면 숨 쉬는 가운데 역시 많은 생명들이 죽습니다. 단 한 생명도 죽이지 않는 완전한 선이라는 것이 가능한지를요. 그렇게 사람이 사람 마음을 내어서 완전히 악을 끊어내고 선만을 할 수가 있다면 종교도 필요가 없을 터이고 석가모니 부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불필요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그것이 되지를 않습니다. 자! 그럼 이러한 어쩔 수 없이 나쁜짓을 할 수 밖에 없어서 (더구나 부처님왈... 모르고 하는 나쁜 짓이 죄악이 더 크다하니) 어떻게 하여야 이 진퇴양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종교란 바로 이러한 인간적이고 사람적인 형태적인 삶속에서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곳에서 그 절망속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불교적인 믿음의 사람이란 착한 사람되는 것이 아니라.... 착해야 하는 순간에 남김없이 착하나 악해야 하는 순간에 무자비하게 악할 수 있는 존재(불멸성)적인 삶으로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악한 사람이 없으면 착한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유위법이란 사람의 법이란 말입니다. 인간법이란 말입니다. 무위법이란 사람법 이전의 법입니다. 그것을 믿고 공부하고 사는 것을 일러서 불교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라는 특별한 이데올로기를 불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