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8월19일(월) 10시07분19초 KDT 제 목(Title): 높아지는 법, 낮아지는 법.. 불법은 삶의 지향을 말합니다. 불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참다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고 하여도 출발선에서의 입장정리의 오류는 자신을 "혼자만의 깨달음"이라는 새로운 울타리에 삶을 가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은 불법을 통하여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출발하는 입장정리가 잘못된데서 비롯되는 또하나의 업장입니다. 불법은 높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생명에는 높고 낮음이 없지만 본질이 현상적인 육체와 마음으로 피어날 때에는 높은 것 보다는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곳으로 낮아지는 쪽으로 지향하게 됩니다. "혼자만의 깨달음"이란 단순히 깨달음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가 아닙니다. 즉 "혼자만의 깨달음"이 깨달음의 성격이 아니다라는 말로만 치부될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깨달음"이란 깨달음이라는 본질적인 생명의 약동이 현상으로 나타날 때에 보이는 삶의 모습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깨달았는데 깨달은 사람이 외형적으로 깨달음을 말할 때에 거기에 깨달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거나 부처가 중생보다 더 훌륭하다는 그와같은 분위기의 언행을 보인다면 그 사람이 깨달음의 이치를 알고 있다고 하여도 불법에서는 깨달은 사람으로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깨달음이란 문제가 항상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문제로 다시 등장하는 윤회가 계속되는 것은 많은 수행인들이 잘못된 기준으로 수행을 하여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불법을 수행한다고 하는 것은 깨달아서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가 아닙니다. 깨달은 사람은 깨닫지 못한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출발한 수행은 그리고 부처님이 중생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출발하는 수행은 "혼자만의 깨달음"이라는 모습을 외형적인 언행속에서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들 혹은 수행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마음을 높이게 되는 근본적인 출발선에서의 입장정리를 지양하여야 합니다. 부처님이란 중생을 받들고 섬기는 힘입니다. 부처님이란 부처님이기 때문에 위대하지만 중생은 그와같이 위대한 부처님이 섬기는 자이기 때문에 또한 부처님만큼이나 위대합니다. 깨달음이란 깨닫지 못한 뭇 생명보다 자신이 조금도 낳은 것이 없음을 깨닫기에 깨달음입니다. 이와같은 부처님과 중생, 그리고 깨달음의 특성이 불법에서 말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으로 다가 섭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있어서 그 분이 깨달았다고 말하여 지더라도 그 분의 분위기가 깨달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 사람보다 더 높다거나 부처님과 중생사이에 털끝만큼이라도 가치적인 차이를 두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불법을 말하는 것 같다면 다음과 같이 단정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저 사람은 높아지는 수행을 하였으니 불법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 혹은 경제적인 수행을 하는 사람이다. 저 분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욕망에 필요한 것이 부처님과 깨달음이구나...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갈 수록 높아지는 수행인 것 처럼 오해되고 있는 오늘날의 불교라는 종교의 이념성과 체계성을 보면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바라문들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