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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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3월03일(일) 20시44분50초 KST
제 목(Title): 반야심경 15



15. 무고집멸도

부처님의 절대광명속에
괴로움과 괴로움을 발생시키는 원인과
괴로움이 사라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도 없으니

1) 사성제법

부처님의 설법의 근본체계는 사성제를 떠나지 않습니다.
사성제라는 것은 고(괴로움), 집(괴로움의 원인),
멸(괴로움이 사라짐), 도(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입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법을 말씀하실 때에
괴로움을 말씀하시고, 괴로움의 원인을 말씀하시고,
괴로움이 없어짐을 말씀하시고, 그 괴로움이 없어지는
길을 말씀하십니다.

2) 괴로움

많은 괴로움이 있지만 대표적인 괴로움은 생사의 괴로움,
즉 죽음에 대한 괴로움입니다. 즉 불교는 여러가지 괴로움도
문제가 되겠지만 곧 죽음에 대한 괴로움을 해결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괴로움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분류합니다.
태어남, 늙음, 병, 죽음,
싫은 것과의 만남, 좋은 것과의 이별,
구하려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오온(육신과 정신작용)에
의한 괴로움입니다.

3) 괴로움의 원인

이러한 괴로움은 괴로움의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이 곧
무명이라고 말해지고 있음은 앞서 십이연기법을 말하면서
살펴보았습니다. 무명 곧 실제하지 않는 것을 실제한다고
착각하여 착각한 상태에서의 생명현상만을 자기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즉 색수상행식의 오온을 자신이라고 착각하고서 자신을
중생이라고 우기는 것이 이 무명입니다.

앞 부분에서 나오는 오온법의 부정에서 말하는
색수상행식을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다른말이 무명입니다.
그러므로 무명이나 색수상행식의 오온을 자기로 착각하는 것이나
사성제법에서 말하는 괴로움의 원인인 집(集)이나 모두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괴로움의 멸함

괴로움의 멸함이란 곧 무명을 없애는 것입니다.
즉 무명이란 실제가 아닌 것을 실다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기에
무명만 없애면 괴로움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을
괴로움이 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5) 괴로움을 멸하는 방법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시키면 괴로움도 자연히 없어지기에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여 집니다.

6) 사성제를 부정함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 사성제 마저도 부정하십니다.
괴로움이 있고 원인이 있고 괴로움이 사라진 것이 있고
그리고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이 있다는 근본적인 불교의
체계를 모두 부정하십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의 원인인 오온이나 무명이라는 그 현상이
실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절대무한의
광명을 비추어볼 때에 오온은 부처님의 절대생명이
드러난 모습이지 그 자체로 실제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명이라는 착각현상도 실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성제라는 체계도 역시 실제하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즉 오온법에서 시작하여 십이연기법을 거쳐서 사성제법으로
전개된 모든 근본설법이 부처님 당신에 의하여
모두 다 부정됩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이
생명은 모두 절대적이고 무한한 생명만이 존재하지
무명이나 색수상행식이란 것에 의하여 규정되는
그런 생명은 존재치 않으며 모두 생명현상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자들을 이야기하셨는데 색수상행식을 실제한다고 여기고
무명도 실제한다고 여기면서 무명을 없애는 길이 특별하게 있다고
생각하고서 끝없이 무명에 걸려 있는 상태를 가지고
우열을 따지고 있기에 
반야바라밀다인 부처님 깨달음의 정수를 설하십니다.

비유하건데
우리가 꿈을 꿀때에 꿈속에서 뱀을 만나거나 흉악한
악한을 만나서 슛길 때에 꿈속에서의 악한을 실제로 인정하고서
그 악한을 없앤다고 생각하면 악몽은 점점 깊어만 가게 됩니다.
그러할 때에 단지
꿈에서 깨어만 나면 뱀도 악한도 꿈속의 일일 뿐이었지
실제가 아닌 것입니다. 뱀도 악한도 꿈속의 일인데
뱀을 물리치거나 악한이 목숨을 노리고 슛아오는 상황을
피하는 방법도 그저 꿈속의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즉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일러서 "자기"라고 하는 것인데
"자기"가 무슨 무명을 없애고 색수상행식의 오온을 파괴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 되냐 하면
무명으로 무명을 없애겠다는 이야기가 되고
색수상행식의 오온으로 색수상행식에서 자유롭겠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7)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이란 곧 꿈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하면
색수상행식이 실제한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즉 육신과 정신작용이 실제하는 생명이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무명이라는 어떤 특별한 것에 의하여
유지되어서 괴로움을 만들고 있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꿈을 꾸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원래 꿈에 깊이
들어가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과 동일하게
지금 우리는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꿈을 꾸는 것 조차도 모릅니다.

이러한 꿈을
줄여서 다시 말하면 곧 나는
중생생명이다라고 생각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개별생명이다라고 생각하는 특별한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남과 구분되는 특별한 상대적인 존재라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꿈속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치면서 세상없는 고행을 하고
어떤 누가 제시하는 방법을 가져다가 천하에 없는 단계로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어내어도 그저 꿈속의 일이기에
악몽은 더욱 깊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꿈에서 깨어나라는 자비의 소리가 끝없이
들려옵니다. 우리를 악몽에서 일어나서 원래의 밝은 광명으로
끌어내려는 자비로운 소리가 들여옵니다.
이때에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서
바로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나는 "김 아무개"로서 이런 육신 생명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방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꿈에서 깨어나는데 한 사분의 일 정도 꿈에서 깨어났다
한 반 정도 꿈에서 깨어났다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꿈꾸고 있는 우리를 이제 그만 잠에서 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소리가 곧
"너의 이름은 아미타"란다 너는 개체생명, 상대생명인
"김 아무개"가 아니라 절대무한 생명인 "아미타"이니라..

"아미타"야 일어나라... 그렇게 끝없이 일러주는 소리를 듣고서
뻔쩍 일어나서 "아미타불"로 사는 것입니다.
즉 절대무한 생명으로 원래의 생명가치로 사는 것입니다.

꿈속에서의 상대적인 중생생명을 부정하면
바로 부처님의 절대생명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아미타"의 절대적인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래가 우리는 아미타의 무한하고 절대인 생명이기 때문에
바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한절대 생명력에 의지하여 그 힘으로
꿈꾸고 있는 꿈속에서의
상대적이고 유한적인 가짜 생명을 부정하게 되고
가짜의 생명이 부정되기에 원래 있을 수 밖에 없는
가짜가 없어져서 남은 진짜의 생명이 드러나는 것이
곧 반야바라밀다입니다.

구름이 끼어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늘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구름이 실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하늘의 실제함을 믿고 알면
구름이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구름을 의지하고서
구름이 언제 없어질까 그렇게 불안하게 살고 있는데..
구름이 하늘이 아니라 본래 하늘이 그대로 인 것처럼
우리의 생명은 육신생명이나 대상적인 생명이 아니라
절대무한인 부처님 생명임을 믿고 원래의 우리의 생명인
부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바로 "아이쿠.. 그렇지..!!"
깨어나서 절대무한 생명을 실현하면서 사는 것이
반야바라밀다고
곧 "나무아미타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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