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5월 9일 수요일 오후 01시 37분 36초 제 목(Title): Re: 오직 모를뿐 쏘울맨님, 보고싶은 대로 보이는 법입니다. :) 이제 눈꼽 하나 떨어졌네요. 의식에는 어떤 종류의 분별/한계도 없습니다. 양무제가 달마에게 그대는 대체 누군가 물었었지요. 不識이라 달마는 짧게 답했습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지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달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그런 사람이 되기를 의도적으로 선택하거나, 무의식적으로 굳게 동일시하는 한 그것은 진실입니다만, 달마는 이미 초월해 있었기에 가장 깊은 차원에서의 자기 자신을 <드러낸> 것입니다. 양무제는 지식을 원했었지요. 딱부러지게, 달마의 "나는 부처요"라든가 "나는 부처의 법맥을 이은 제자요"라든가 하는 대답을 원했던 겁니다.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라고 하는 것은 주어진 육신의 성별과 동일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시하지 않는 경우에는 不識이 됩니다. 나는 크로체다/ 나는 쏘울맨이다라고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름과 스스로 보는 자기의 이미지와 남들이 그렇게 볼 것이라 생각하는 이미지와 기대같은 생각덩어리에 동일시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과거의 기억들도 덧입혀져 있지요. 소설같은데 보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간혹 있지요.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들이죠. 나는 누굴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고 <원래>의 나를 찾으려 하지만, 사실 그 찾으려는 나가 원래의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의 그 내가 원래의 나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자신이 설정해놓은 한계, 성격상의 특성, 결점들이 과거의 조건화로, 지식적 테두리로서 현재의 <나>를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에이, 내가 어찌 그런 일을! 하는 것들도 그러한 지식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그런 규정이 약해서 어른들이 볼 때, 하지 말아야할 일, 부끄러운 일들을 서슴없이 저지르지요. 남자/여자 구별도 그리 가리지 않고 재미있게 놉니다. 직업도 없고, 규범이나 지식도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