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zeo (ZeoDtr) 날 짜 (Date): 2001년 5월 3일 목요일 오후 07시 16분 35초 제 목(Title): neon님, 여여함에 대해서 우연히 들어와서 함 써 봅니다... ... > "여여하게 볼수 있다. " 라는 것은 감각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 > 여여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요즘 과학을 통해 많이 이루어 지고 > 있습니다. 사진기, 녹음기, 비데오, 등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 마음속에 맺힌 상과 정말로 과학적인 기록을 통해 비교해 > 볼 수 있습니다. > > 카메라가 보는 것은 여여한 세상입니다. 카메라가 보는 것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카메라가 본 결과물(=사진)을 보는 것은 역시 (여여하지 않은) 사람의 눈(=감각)이 아니겠습니까? 사진을 통해 마음에 맺히는 상이나, 직접 경치를 보고 마음에 맺히는 상이나, 어차피 그게 그거 아닐까요? 오히려 직접 경치를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불교의 깨달음이란 결국 외부의 정보가 마음에 걸림없이 ( 무심 ) >있는 그대로 ( 여여하게 ) 우리에게 들어 오는 것을 >말합니다. > >따라서 거기에는 집착이 없으므로 >마음의 고통이 없고, 여여하게 보는 것과 아예 보지 않음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걸러지지 않은 것은 정보가 아닙니다. 또한, 물리적으로 '본다'는 행위는, 그 자체가 이미 대상의 모습을 뇌에 저장할 수 있는 형태로 '걸러'서 변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걸른다'는 것은 (그것이 본능이든 그 윗단계의 목적의식이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취사선택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미 '여여함'이란 없는 것이 아닐지요. 가고자 하지 않는데 어찌 땅덩이에서 길을 걸러낼 것이며, 가르고자 하지 않는데 어찌 바다와 하늘을 갈라 볼 수 있을 것입니까? 아마 '그 정도는 기본으로 (여여하다고) 쳐 주는 것이고, '마음의 걸림' 이란 더 윗 수준의 욕망을 뜻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본과 윗 수준을 가르는 경계선이란 또 무엇일까요? 그 또한 가르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물 아니겠습니까? ZZZZZ "Why are they trying to kill me?" zZ eeee ooo "Because they don't know you are already dead." zZ Eeee O O ZZZZZ Eeee OOO - Devil Doll, 'The Girl Who Was...De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