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3월 30일 금요일 오후 07시 18분 57초 제 목(Title): 간화선의 역사적 고찰 * 간화선의 역사적 고찰 * 1. 간화선(조사선) 이란? 잘 아실거 같아 생략합니다. 2. 법맥의 흐름 1) 선의 시작 - 영산회상거염화 잘 알다시피 부처님께서 영위산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갑자기 허공 중에서 꽃잎이 흩어져 내렸습니다. 부처님은 한 송이 꽃을 들어 보이셨는데, 한자리에 모인 많은 대중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 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자, 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선의 시작으로 봅니다. (유의점) : 가섭존자가 어떻게 수행을 해서 부처님의 법을 이어 받을 정도의 깨달음을 얻었나 하는 점을 생각해 봅시다. 부처님께서 참선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에 어느 경을 보던지, '비구여, 항상 숲 속이나 무덤 사이의 한가한 곳에서 선정의 힘을 길러라' 라고 당부하셨지, '어디를 가던지 '이뭐꼬?' 라고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사유하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 자신이 했던 법을 가르치지 다른 법을 가르치겠습니까? 특히 가섭존자는 부처님 생전에도 부처님의 일을 대신할만큼 유능하였고, 제자가운데서도 의.식.주를 극도로 검소하게 하고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두타행 제일 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자이니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그대로 했을거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2) 부처님 가사와 발우로 법을 전하다 이렇게 마하가섭 존자에게 법을 전한 후 그 증표로, 부처님 열반 후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전하는 전례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인도에서 27대 반야다라 존자까지 법이 전해오다가 28대인 보리달마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 오면서 우리가 하는 중국선의 싹이 텄습니다. 3)보리달마의 선 중국으로 건너오신 보리달마께서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숭산 소림사 석굴에서 9년 동안 면벽좌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중국선의 초조가 되셨습니다. ㄱ) 9년 면벽좌선의 의미 당시 중국의 불교는 문자위주의 알음알이 (지식불교)식의 분별심만 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보리달마께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시며, 경전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시면서, 심지어는 염불이나 송주(誦呪)까지도 다 부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 : 오로지 마음을 살피는 한 가지 일에 모든 행이 들어 있다 는 뜻 을 말하시면서 몸소 그 실천을 9년 면벽좌선이라는 행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4) 6조까지 전해진 가사와 발우 보리달마 이후 법은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으로 이어지다가 6조 이후, 가사 발우가 따로 전해지지 않았는데, 이는 5조 홍인의 부촉때문이었습니다. 즉 분란의 씨앗이 됨을 염려 하심이 그 이유의 첫째이고, 불교의 대중화를 위함이 그 둘째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의점) : 부처님 이후 법의 승계표시로 전해 오던 가사와 발우가 6조 이후 더 이상 전해지지 않은 이유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물건도 아닌 부처님의 유품이고, 더구나 법의 승계의 상징이었는데. 단지 6조 혜능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전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후 법은 하택신회, 청원행사, 남양혜충, 영가현각, 남악회양 으로 갈리고 역시 수행법도 갈리면서 간화선이 종풍인 임제종의 싹이 트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좋게 말하는 사람은 그만큼 불교가 더 널리 퍼지고 대중화가 되어서 좋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달마대사 혹은 6조대사보다 근기가 더 크지 않은 이상 부처님보다 수행을 덜 하고도 깨달음을 얻는다는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는 깨달음에도 차이가 있다는 말로도 생각할 수 있는것입니다. 6조대사처럼 단 한마디의 법문으로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을 정도의 최상승 근기가 아니라면 참선을 통한 지혜를 증장 시켜야 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근기에 맞게 인천교에서부터 돈교, 원교에 이르기까지 설법을 하셨습니다. 5) 6조 혜능대사에 대하여 6조께서는 어려서부터 너무 가난하여 글을 배우지 못해 문맹이었습니다. 24살 때 5조를 뵙고, 행자로 있으면서 8개월 동안 방아만 찧다, 교수사인 신수의 게송에 대해, 글 아는 스님께 부탁해 ' 보리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니라,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이 묻을까' 라는 게송으로 5조의 법을 전해 받았음은 잘 아실겁니다. ㄱ. 최상승 법기 이렇게 6조께서는 법을 전해 받기 전까지는 참선은 커녕 경 한 줄 읽지 않으셨고 그 전에도 단지 산에서 나무를 해다 장에 파는 생활을 했으며, 이런 생활 중에 장에서 스님이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마음을 내어 그 스님의 지시로 5조 홍인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5조의 가르침 한마디에 단박에 깨달음을 얻으실 정도로 최상승 법기이셨습니다. ㄴ. 6조대사의 가르침 육조단경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오로지 불법의 근본자리로 단번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최상승 법문을 하시고 또 하시고 했다는 겁니다. 즉, 제자가 혹시라도 잘못 들어갈까 염려하여 그렇게 하신겁니다. 이처럼 6조대사의 가르침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상승법문밖에 없습니다. 대사께서 언하(言下)에 깨달음을 얻으신 것처럼 모든 제자가 그렇게 되길 원하기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얼굴 생김새가 다른만큼이나 근기도 다릅니다. 6조께서는 이것을 간과하신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근기에 맞게 설법을 하시어서 처음에는 낮은 근기의 사람을 위해 5계와 십선을 중심으로 인천교를 말씀하신 것을 시작으로 담박 깨달음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는 대근기들을 위해서는 돈교(頓敎)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6조께서는 이러한 구분없이 돈교를 설하셨으니, 후세의 하열한 근기들에 의해서 가르침이 호도되고 심지어는 막행막식하는 무뢰한까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육조단경 어디에도 화두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며, 대사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 사냥꾼들과 어울려 사실때에도 막행막식을 하지 않았음은 잘 아실겁니다. 6조의 법을 이으신 회양선사께서도 제자이신 마조스님을 가르치실 때에 '집착이 없고 취하고 버릴 것이 없는 것이 선이다' 라는 말로 깨달음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6조의 가르치심은 어디까지나 지혜가 구족되어진 최상승의 대근기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다음에는 경을 비롯한 '선가귀감' 등에 나타난 근기에 맞는 깨달음의 단계와 참선에서의 화두의 위치에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3. 근기의 다름과 깨달음의 차이 1)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보면 '이 마음이 평등하여 본래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다. 이치는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어두운 이와 깨친 이가 있고, 범부와 성인이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다 문득 참 내가 부처와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깨치는 것은 이른바 '단박 깨침'(頓) 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굽히지 말 것이니 저 '본래 아무것도 없다' 고 한 말이 그것이다. 깨친 뒤에 익힌 버릇을 끊어가면서 범부를 고쳐 성인이 되는 것은 이른바 '오래 닦음(漸 ) 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높이지도 말 것이니 저 '부지런히 떨고 닦으라' 고 한 말이 이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후학들의 근기에 대하여 하신 말씀으로 다음과 같이 더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라는 것은 첫마음 낼 때에 벌써 씨 안에 열매가 다 갖추어 있는 것을 대강 들어 한 자리 뿐인 것을 믿어야 하겠지만, <보살의 열매가 씨의 근원에 사무친 것을 널리 들어>, 말하자면 五十五位가 분명히 있는 거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널리 통하여 걸림없는 이치로 본다면 처음 발심할 때에 벌써 정각을 이루었으므로, 씨를 심기도 전에 바다와 같은 부처의 넓고 큰 열매가 그 씨안에 다 같추어 졌으나. 근기의 자리로 볼 때에는 보살이 수행을 통하여 오십오위의 과정을 낱낱이 밟아 올라가 비로소 성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십오위는 경에 따라서는 오십이위라고 한데도 있으나, 능엄경에는 건혜지에서부터 10지까지 낱낱이 거쳐 올라가야 성불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2) 조사들의 가르침과 깨달음 조사들의 가르침은 6조의 가르침대로 대부분 단박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역시 위에서 본바와 같은 근기에 맞는 가르침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조사들마다의 깨달음을 얻었을때의 경계가 다르고,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위신력을 보여 주신 조사들은 한 분도 계시지 않을뿐더러, 다음과 같이 큰 깨달음 작은 깨달음도 생깁니다.(이는 위의 오십오위의 과정이 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ㄱ, 조사들의 큰 깨달음 작은 깨달음 6조이후 다섯갈래로 갈라진 종파들의 조사들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과정을 보면 천차만별입니다. 이는 모두의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백장회해선사께서는 스승이신 마조도일대사께서 코를 잡아 비트실 때 처음 깨달음을 얻으시고, 나중에 유명한 마조의 '할' 소리에 크게 깨쳤다고 하며, 약산유엄선사 같은 분은 처음에는 석두희천선사께 깨달음을 얻었으나, 다시 마조도일선사에게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또한 동산양개선사는 운암선사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바 있으나, 나중에 강을 건너다 물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고 다시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리고 천황도오선사는 국일도흠선사의 가르침에 5년만에 깨달음을 얻었으나, 다시 석두희천선사의 가르침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천황선사는 열반하시기 전에 원주스님을 불러 큰 소리로 "알겠는가?" 라고 물었는데 원주스님이 '모르겠다'고 하자 나무베개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대로 입적하신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설봉의존선사는 유명한 덕산선사의 방망이에 깨달음을 얻었지만, 후에 암두선사의 가르침에 다시 깨달음을 얻습니다. (암두선사는 설봉선사의 사형이기도 합니다) 위와 같음을 볼 때 위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오십오위의 과정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근기가 다른것처럼 깨달음의 과정도 다르고 따라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의 경계도 다릅니다. 즉 그 차이점은 첫째 : 그 누구도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위신력을 보여 주신 분은 안계십니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방법으로 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말씀드리겠지만 참선을 통한 선정의 힘이 없으면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위신력은 생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둘째 : 조사들의 행장을 통해 그 경지가 다름을 볼 때 더욱 확실해 집니다. 이는 초조이신 달마대사로부터 조선시대의 서산대사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일화를 통해서 확실히 아실 겁니다. 3) 깨달음에서의 화두의 위치 위에서 본바와 같이 초기에는 화두는 깨달음의 과정에서 거의 비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6조 이후 종파가 갈리면서 경산종고선사에 의해서 크게 강조가 되면서 객이 주인노릇을 하게 됩니다. 4. 종파(宗派)의 갈림 가섭존자 이후 일관되게 내려오던 부처님 법은 6조 혜능이후 갈리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수행법도 갈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스승은 자기가 깨달음을 얻은 방식대로 제자에게 가르치는 법입니다. 6조 혜능 역시 그러해서 기존의 수행법과 달리 자신의 수행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근기가 다름은 위에서 본바와 같이 잘 아실겁니다. 작은 그릇에 많은 물을 부으면 넘치듯, 6조의 최상승 법문의 후대로 내려 오면서 변질이 되고 맙니다. 5. 6조의 다섯제자 6조 혜능대사에게는 남악회양, 영가현각. 남양혜충, 청원행사, 하택신회 등의 다섯의 뛰어난 제자가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현 간화선의 맥이 닿는 임제종의 법맥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6조의 상수제자 6조스님의 인가를 받고 맨 처음 법을 받은 제자는 청원행사 대사입니다. 청원스님은 이처럼 6조의 상수제자로 있었고, 후에 조동종의 뿌리가 되나 후에임제종이 가장 흥성했던 관계로 임제종이 '우리가 정통이고, 다른 종파는 곁가지다' 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통이니 곁가지니 하고 구분짓고, 경원시하는 풍토 자체가 수행자의 본분이 아님은 잘 아실 겁니다. 2) 임제종의 법맥 6조의 다섯 제자 중의 한 분이신, 남악회양 대사부터 시작하여 마조도일 - 백장회해 - 황벽희운 - 임제의현(임제종의 종조) - 홍화존장 - 남원도옹 - 풍혈연소 - 수산성념 - 분양선소 - 자명초원 - 양기방회 - 백운수단 - 오조법연 - 원오극근 - 경산종고 등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분은 경산종고 대사입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간화선이 수행법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다른 종파의 수행법 즉 쌍벽을 이루던 묵조선은 격파 되었기 때문입니다. ㄱ. 경산종고 스님은 처음에는 조동종의 큰스님들을 많이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법을 얻지 못하자, 결국은 임제종으로 가셔서 원오선사의 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경산스님은 상당히 정치성을 가지고 계셔서 나라일을 비방했다는 혐의로, 무려 17년 동안 형주에서 매주로 귀양을 다니셨습니다. 그 뒤 귀양에서 풀려 나셔서 평생을 힘을 쏟으신 일이 바로 조동종의 묵조선을 격파하고 간화선을 강조하신 점입니다. 왜 이렇게 하셨는지는 당시 정치상황도 있겠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겠으므로 미루어 짐작하시기 바랍니다. ㄴ. 과연 마조도일 이후 참선은 무시 되었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제종의 법맥을 이어 받으신 분 중, 풍혈연소 같은 분은 지관법을 닦으셨고, 수산성념 같으신 분은 오로지 참선에만 힘 쓰셨습니다. 오직 경산종고대에 와서 묵조선 격파에 힘쓰고, 간화선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이 때부터 간화선이 임제종의 종풍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입니다. 5. 우리나라에 건너온 임제종 임제종이 우리나라에 들어 와서 지금의 조계종으로 이어지며 세력을 떨치게 되기 시작한 것은 종조의 19세이신 평산처림의 법을 고려의 나옹선사가 받아 오셨고, 역시 종조의 같은 19세이신 석옥청공의 법을 태고국사께서 받아 오셔서 왕권의 보호 아래 정착, 조선시대에는 완전히 임제종의 법맥으로 되었고, 지금의 조계종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만약 다른 종파의 법맥을 받아 왔다면 수행법이 간화선 위주가 안되었겠죠. 일본에서 지금 융성하여 세계선을 주도하는 조동종이나, 남방의 위빠사나처럼 말입니다.) 6. 간화선의 요체 이상 간화선의 법맥에 대하여 대략 살펴 보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펴본 이유는 도대체 막행막식도 불사하는 간화선이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나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간화선 자체도 강점은 있습니다. 첫째는 행,주,좌,와 구분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와전되어 여자와 뒹굴어도 의식만 성성적적하면 된다는 식으로 까지 변질이 된 것입니다. 행,주,좌,와 구분없이 수행하는 간화선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참선을 통한 선정의 힘이, 참선을 하지 않는 중에도 사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참구하는데 있습니다. 즉 처음에 간화선을 가르치셨던 조사들께서도 언하에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참선을 통하여 지혜를 키우고, 이렇게 키운 지혜가 퇴보하지 않고 항상 수행의 자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활구참선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런 수행의 자세로 생활을 해야 다시 참선을 했을 때 지혜가 증장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와 뒹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을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물론 몇몇 사례이므로 일반화 시킬 의도는 없습니다) 임제종의 법맥을 받으신 분중 조선시대의 위대한 선사이신, 서산대사께서는선가귀감에서. '걸림없는 청정한 지혜란 다 선정에서 나온다'(원각경에 있는 말입니다) 범부에서 초월하여 성현의 지위에 들어가며, 앉아벗고 서서 가는 것(좌탈입망 : 선정의 힘이 충실하면 육신의 생사를 자유로이 할 수있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개 앉아서 죽고 고통없이 고요히 가는 것은 오로지 이 선정의 힘이다.)이 모두 선정의 힘이다. 그러므로 옛어른이 이르기를 "거룩한 길을 찾으려면 이 길(참선) 밖에 없다" 고 한 것이다. 마음이 선정에 들면 세간의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든 일을 다 밝게 알 수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즉, 생사에 자유로운 바른 지혜는 오로지 선정의 힘을 통해서 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임제종의 종조이신 임제의현선사와 동시대의 분이셨던, 동산양개선사는 대중을 모아 놓고 자리에 앉아 입적을 하셨는데, 대중이 하도 서럽게 통곡을 하자, 다시 살아 나셔서, '일주일만 더 있다 갈란다' 하시면서 일주일동안 설법을 더 하시고 가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선정의 힘이 없는 마른지혜로 깨달음을 얻어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임은 이제는 잘 아실겁니다. 1시간 앉아서 참선하면, 그만큼의 지혜가 생기고, 두 시간 앉아서 참선하면 그만큼의 지혜가 생깁니다. 유치원 수준만 몇 년을 공부한다고 대학수준으로 오르지 않는 법입니다. 참선은 1시간 앉아 있을 때 나타나는 경계, 한나절 앉아 있을 때 나타나는 경계가 다릅니다. 30분 앉아서 참선할때와, 1시간 앉아서 참선할때도 확연히 다르므로 당장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절집에도 좀 더 신선한 수행의 기풍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청정종단 조계종의 만 이천 스님 중에서 안거에 들어가신 분이 겨우 천오백명이라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나머지 스님은 다 깨달았던지, 아니면 .......?)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출가를 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출가자의 본분인 수행을 게을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재가불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다운 불자가 되려면 불교지식만 쌓으려고 하지말고, 지혜를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이 1시간 참선입니다. 1시간만 여법하게 참선하는 생활이 되면 저절로 찾아서 하게 됩니다. 7. 참선의 수승한 경지 초기 원시경전으로 우리에게는 금과옥조같은 명문장으로 더 알려진 법구경 중 유념품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유념품(惟念品)이란 무엇인가? 이는 수미(守微 : 즉 참선하여 본 마음을 구함을 뜻함)의 처음으로 안으로 안반(安般 : 안나와 반나의 준말, 즉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을 말함. 이에 관한 안반수의경에 대하여는 전에 말씀드렸습니다.)을 생각하면 반드시 도의 본체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이 뜻은 참선하여 본 마음을 구할 때에 날숨과 들숨을 고루게 하여 마음이 안정을 얻어 맑고 고요하면 도의 본체를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 이어서, '들고나는 숨을 생각하며, 맑고 고요한 마음으로 참된 이치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통달하여서 내가 말한 바 안락을 얻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 즉, 참선을 하면서 호흡을 관하면 맑고 고요한 마음(성품자리)이 드러나고, 이렇게 드러난 성품자리에서 참된 이치를 통달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치를 실제로 체험하시는 과정을 불전을 보면 자세히 나와있지 않습니까? 보리수 아래에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고 앉으셔서, 좌선을 통해 맑고 고요한 마음상태에서 처음에 생각하신 참된이치가 바로 연기(緣 起) 아닙니까? 이렇게 12연기를 관찰하시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다음에는 6근의 욕망에 관하여 관찰하셨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것은 최후의 출생이며, 이제는 다시 생존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라는 지견이 생겼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경지가 부처의 경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례로 관찰을 하시고, 이제는 좀 쉬었다 해야겠다. 하시면서 경행을 하거나, 하셨습니까? 경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지 않습니까? '비구들이여! 나는 참으로 굳건하게 정진했다. 해이함이 없이 주의를 기우려 흩어짐이 없었고, 몸은 경쾌하여 막힘이 없었고, 마음은 조용히 한 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즉, 처음에 결심하신대로, 계속 자리에 앉으셔서 참선을 하신것입니다. 그리하여 초저녁에 전생을 보시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한 밤중에는 중생의 나고 죽는 모습을 보시고, 새벽녘에는 번뇌까지 모두 소멸하여, "청정한 도를 완성했다. 해야할 것은 모두 끝마쳤다. 무지는 사라져 지혜를 낳고 어둠은 사라져 광명을 낳았다" 라고 하셨고 이 때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 나셨습니다. 이상을 통해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 참선을 통한 선정의 힘이 바쳐 주지 않으면, 위에서 보듯이 간화선을 통해서는 마른지혜만 생길 뿐이라는 겁니다.(부처님께서도 선정을 통한 지혜의 증장을 가르치셨지 화두를 통한 깨달음은 언급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6조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위에서 본 바와 같이 후대에 내려 오면서 변질이 된것입니다.) 깨쳐서 지혜가 생겼다 할지라도 선정의 힘이 충실하지 못하면 그것을 마른 지혜라고 합니다. 이 마른 지혜는 생사의 이치를 알았더라도 실지 생사에는 자유자재하지 못하므로 진정한 지혜가 못됩니다. 둘째 : 참된지혜는 앉아있는 참선의 시간에 비례하여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뒷산에 오르면 마을밖에 볼 수 없습니다. 뒷산을 수천 번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산이 백두산처럼 큰 산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힘이 키워졌으면 직접 백두산을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천하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좌선을 하고 앉으셔서 마지막 7일째 되는 날 비로소 여러 가지 일들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이렇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경에 있는데도 '네가 직접 해 보았느냐' '네가 직접 경험하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 고 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경이 거짓말로 쓰여 있던지, 제자들이 거짓으로 기록했다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경에 있는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한 것 뿐이니까요. 이런 분들도 참선을 여법하게 해 보세요. 30분 했을 때 나타나는 경계, 1시간 했을 때, 나타나는 경계, 한나절 했을 때 나타나는 경계가 다름을 아실겁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서울서 수원까지 수 천번을 왔다갔다 해도, 부산은커녕 대전도 나타나지 않는거와 같은 이치입니다. 셋째 : 지금같은 수행풍토로는 불교의 도태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지금 다른 정신 수련단체에서 연구하고, 수련하는 것을 보면 정신수행이 이제는 불교의 전유물이 아님을 절실히 느낍니다. 수행승의 최고 어른이라는 분이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조무래기들하고 어울려 패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 분이 수행을 하지 않았던지, 아니면 잘못된 수행을 했던지 하는 것을 미루어 아실겁니다. 그나마 안거동안 어느 정도 쌓인 선정의 힘도 해제기간에는 만행이라는 이름으로 막행막식을 일삼아, 모두 소진해 버리는 현실에서는 그저 암담할 뿐입니다. 단 1시간이라도 여법하게 수행할 줄 아는 수행자라면 그 때까지 나타난 지혜의 경지가 아까워서도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함부로 하기는커녕 너무나 소중한 진짜 보배구슬 다루듯이 그렇게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참된이치를 알게되는 지혜는 선정의 힘을 통해서만 나오고, 행주좌와 화두를 듦은 이러한 선정의 힘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입니다.다시는 객이 주인노릇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이제 이 인연으로 최소한 좌탈입망할 수 있는 선정의 힘이 길러지도록 모두가 참선수행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http://chamsun.pe.kr/son%2014.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