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3월 19일 월요일 오후 06시 23분 20초
제 목(Title): 방생


불성과 방생 

[항상 放生을 행하고 남도 방생을 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세상 사람이 축생을 
죽이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마땅히 방편을 써서 구호하여 괴로움에서 풀어 
주어야 한다] 불교 
경전중 하나인 [법망경]의 방생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같은 가르침에 따라 한국 불교에서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일체 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고 불살생계를 몸소 체득키 위해 음력 3월 3일(삼짇날)과 8월 
15일에 방생법회를 봉행해 왔다. 특히 고려시대에 이르러 방생법회는 
팔관연등회와 함께 국가적 행사로 까지 치뤄질 만큼 한국불교의 중요 의식으로 
발전했다. 그후 방생법회는 抑佛崇儒의 이조시대를 거치고 호국불교 말살정책을 
편 일제에 이르게 되면서부터 그 본래 의미를 잃고 기복신앙으로 변질 타락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21세기를 맞는 현재에도 한국불교내 기복적 방생법회가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와 달리 정월 대보름부터 시작해 부처님오신날인 4월 
8일까지를 그 기간으로 하고 있는 방생법회는, 신도들의 여행놀음으로, 사찰 
경제의 구세주로 변질.타락된 채 한강 광나루 근처, 여주 신륵사 부근의 남한강 
일대, 임진강 주변, 아산만-삽교 방조제, 부여 백마강, 충주호 등지를 주무대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수입된 거북이나 물고기 등을 환경이 전혀 다른 
국내 하천에 무차별 방류하여 폐사시킨다거나 방생시의 음식찌꺼기나 촛농으로 
하천을 오염시키는등 심각한 폐단을 낳으면서 까지 방생법회라는 미명아래 
미신적 작태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최근 방생법회의 폐단을 자각한 일부 사찰과 신행단체들이 새로운 형태의 
방생법회를 봉행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긴 하다. 지금까지 하천, 
저수지등에서 각 
종 어류를 놓아주던 기복적 형태의 방생법회를 탈피, 고아원 양로원 교도소등을 
찾는 [人間放生]법회를 봉행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바람직한 
일이다. 적어도 복을 받기 위해 제비다리를 부러뜨리고 치료해 주는 놀부식 
방생보다는 백번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고아원 양로원 교도소등을 찾아 
봉사하는 [인간방생]이라 해서 무조건 올바른 방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참다운 방생법회란 무엇인가. 어류방생이 됐던, 인간방생이 됐던 
참불자가 봉행하는 방생법회가 바로 참다운 방생법회인 것이다. 
참다운 佛者란 누구인가. 세상의 모든 인연과 업으로부터 벗어나 무애자재한 
삶을 영위하는 불자, 즉 불법을 깨달아 파란고해의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생한 불자가 참불자인 것이다. 따라서 방생법회의 주최인 불자들 각자 각자가 
불타는 세상으로 부터 방생되지 않은 채 어류방생에서 [인간방생]으로 그 
형태를 바꾼다 한들 달라질 것이 무엇이 
겠는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방생의 대상만이 어류에서 
주변의 불우한 사람들로 바뀌었을 뿐, 결국 자기자신을 위한 이기적 마음이 
방생법회의 발로란 점에 
선 하등 달라진게 없다. 

방생법회에 참석, 공덕을 쌓으므로써 복을 받으려는 자체가 바로 지극히 이기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공덕을 쌓고 북을 받기 위해서 방생법회라는 
의식절차가 필요했고, 방생법회를 봉행하기 위해서 거북이, 물고기등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주변의 불우한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이 아닌 가족의 
무사안위나 국가의 안녕을 기원키 위해서 방생법회에 참석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 자기자신을 위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족의 무사안위를 빈다는 것은 가족의 불행으로 인해 정작 
자기자신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 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기자신이 
편안하고 괴롭지 
않기 위해서 가족의 무사안의를 기원했던 것일 뿐, 별다른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또 순수하게 어류나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어류방생및 인간방생을 행했다고 
해도 아상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라면 결국 자기자신을 위한 이기적 행위일 
수 밖에 없다. 
자신만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어류나 이웃등 일체의 생명체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자비를 실천하는 참다운 불자라는 아상을 극대화 시키며 고도의 
자기만족을 즐기기 위한 차원높은 이기적 행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참다운 방생법회를 봉행하기 위해서는 불자 자신이 먼저 불타는 
사바세상으로 부터 벗어나 진정한 불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않된다는게 필자의 
결론이다. 자기자신 조차 
도 세상으로 부터 방생하지 못했으면서 무슨 어류를, 축생을, 불우이웃을 
방생하겠다는 말인가. 
이는 마치 오물이 잔뜩 묻어 있는 지저분한 걸레로 깨끗한 마루바닥을 
청소하려는 어리석움과 다를바 없다. 제대로 청소하기 위해선 먼저 더럽혀진 
걸레를 깨끗이 빨아 
야 한다. 마찬가지로 참다운 방생법회를 봉행하기 위해선 불자들 자신이 먼저 
마음속에 찌든 세속의 때를 털어내야만 한다. 그리하여 온갖 망상에 의해 
가려져온 본래의 순진무구한 마음이 햇살처럼 눈부시게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태초부터 여여하게 빛나고 있었으나 아상에 의해 가리어 져 온 찬연한 
불성이 오롯이 나투어 지도록 해야 한다. 즉 참다운 불자가 되기 위해서 각자 
각자가 불성방생법회를 봉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금년은 양력으로 3월27일이 방생법회가 시작되는 삼월 삼짇날이다.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오는 삼월 삼짇날 모든 불자들이 불성방생법회를 봉행, 
생사에 걸림없는 
대자유인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며, 마음의 때를 씻는 길을 보여준 옛 선사의 
법문을 떠올려 본다. 

{전라도 광주에 한 목욕탕이 있었다. 스님들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 대신 입구에 
들어서면 곧 예를 갖추며 "겉때는 물이 닦거니와 속 때는 무엇이 닦습니까?" 
묻곤 하였다. 
하루는 月山스님이 이 목욕탕에 왔다. 주인이 예외없이 
"스님의 겉때는 물이 닦거니와 속때는 무엇이 닦습니까?"하고 묻자, 스님께서 
잠시 머뭇거렸다. 
이를 전해들은 수덕사 방장 惠菴스님(85년 5월 입적)께서 
"迷瀾倒侵玉浮屠"(흐린 물결이 거꾸로 옥부도를 침로한다)라 대 하셨다.} 

님들께도 묻습니다. 몸의 때는 물로 닦거니와 마음의 때는 무엇으로 닦습니까? 
이 봄에 깊이 참구해 볼 일이다. 
-혜각- 


출처:다음카페 무이선원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