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Enlight (D.S.) 날 짜 (Date): 2001년 1월 12일 금요일 오전 04시 00분 31초 제 목(Title): Re: 퍼옴] 하심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왜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먹을거리와 잠잘곳, 수행할 곳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까? 왜 스님들은 행자와 함께 일어나서 함께 절간을 치우지 않는 것입니 까? 깨우쳤다는 선사들은 왜 제자들이 가져다 주는 밥을 먹고 살았습니까? 깨 우치고 싶다는 사람들은 왜 속세를 떠났으면서 속세에 손을 벌리는 것입니까? 분노를 덧붙여말하자면 적어도 아내와 자식을 돌보지 않을 뻔뻔함이 있어야 깨 우칠 수 있는겁니까? ----------------------------------------------------------------------- 1. 같은 질문 저도 가집니다. 우리 사회 내의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혹은 가지려는 자), 교수와 학생, 전문의와 수련의, 의 관계처럼, 스님들과 행자들간의 관계도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스님들이 꼭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들은 바로는 재산이 적은 절에는 수도승들이 적다더군요. 불교의 본질이 아닐지라도, 불자를 빙자한 사람들에게 붙어있는 "위선"이 아닌가 가끔 의심이 듭니다. 사람들만의 위선이 아니라, 만약 저런 수행제도가 불자세계에서 흔한 것이라면, 불자세계에 흔한 위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 위의 두 질문을 요약하면 첫째는 왜 행자들만 고생시키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수행자들이 왜 재가자들에게서 보시물만 받아 먹느냐 하는 것이고 세번째는 가족들을 버리고 자기만 해탈하겠다고 가는 것이 잘한 짓이냐 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 질문들은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들이라 제가 감히 답할수 없는 것들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가까운 스님들께 질문해 보심이 좋을 것같습니다. 저도 같은 질문을 법사스님들과 잘 아는 주지스님들께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왜 출가하셨습니까? 라고 물으니까, 백명의 스님이 백가지의 다른 답을 하더군요. 행자들만 고생시키는 문제는 게스트분께서 답하신것처럼 수련과정이기 때문이랍니다. 쓸데없이 아무나 출가해서 스님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2년 고생을 시킵니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탈락하게 되죠. 제가 본 행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수행을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수행자는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출가하자 마자 자유를 즐기는 법부터 배우면 수행이 되지 않기때문에 마음의 때를 벗기기 위해, 절에서는 속세의 때를 벗기기위해 행자생활을 시킨다고합니다. 그래서 행자기간동안 초발심자 경문을 읽고 신도들과 대화하는 것은 금지되어있으며, 아직 선방에 들어갈수 없습니다.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큰 스님들은 제자들의 그릇을 보고 바로 선방에 제자를 들게 한 경우도 있습니다. 두번째 왜 수행자들은 자기들이 밥벌어 먹지 않고 보시물만 받아 먹느냐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이르길,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내 옷을 꾸며 입고 부처를 파아 온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라고 통탄셨다고 합니다 (61). 불자여, 그대의 한 그릇 밥과 한 벌의 옷이 곧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고야 어떻게 삭여낼 것인가 (62). 한 수도인은 다섯 낟알 좁쌀 때문에 소가 되어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고 빚을 갚았다. (63, <지도론>). 그러므로 도인은 음식을 먹을때에 독약을 먹는 것같이고, 시주의 보시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 같이하라.(65) 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장대사의 좌우명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말라.' 라고 합니다.(라즈니쉬 백장과 대주) 백장은 일과 명상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승려들도 노동으로 수확한 모든 곡물에 대해 세금을 매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보수적인 불교인과 승려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도법스님이 쓴 '청안청락하십니까'라는 책에 보면 오늘날 수행자들의 돈타령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워낙 내용이 많아서 글을 올릴수는 없고 직접 읽어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세번째 가족들을 져버리는 문제또한 사람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고 답할문제가 아니라 봅니다. 이 문제는 처음에 말한 왜 출가했는가와 연결되는 질문이라 하겠습니다. 가족들을 져버리면서까지 출가하는 것은 수세기를 걸쳐 인간의 도리 특히 유교에 의해 불교가 엄청나게 반박을 받았던 부분입니다. 인도의 힌두교 수행자들은 전통적으로 가족들을 다 부양하고 은퇴후에 수행자의 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스님들, 특히 제가 만난 스님들은 제각기 출가한 동기는 다르지만 공통된 점은 도저히 출가하지 않고는 못견디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스님들은 가족들 먹고 살것을 다 장만해 놓고 출가하는 분들도 계시고, 어떤분들은 이것때문에 아직 출가하지 못한 분들도 계시고 또한 파계한 분들도 계십니다. 라즈니쉬의 책중에 보면, 인도의 어느 수행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자네 가족들이 파키스탄과의 분쟁 지역에 있으니 가서 돌보는 것이 옳지 않으냐?' 그러자 그 수행자는 '그 또한 환상입니다.' 라고 답합니다. 깨달은 사람들의 절대 자유의 경지는 이 처럼 이해하기 어려운듯 싶습니다. 가족도 버리고 출가했으면 반드시 깨우쳐야 겠지요. 그러지도 못할것이면 업을 두배로 짓는 결과가 아닐까하고 생각됩니다. '불본행집경'에 보면 시탈타 태자가 출가하는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출가자들도 시탈타 태자의 출가의지를 본받아 출가의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 2. 불교보드들 글을 잘 읽고, 실제 저의 생각하기와 생활에 가끔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 점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가끔씩 "넌 아직 몰라. 그러나 난 알어. 네 속을."라는 투의 글들은 저항감을 느끼게 합니다. "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데, 네가 그렇게 읽고 있어..." 라 하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있을지도...) --------------------------------------------------------------------- 실날한 지적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인격수양이 덜 된 파편들이 글에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부끄러워하는 데에 장부의 기상이 있고, 허물을 고쳐 새롭게 되면 죄업도 마음과 함께 없어진다 (선가귀감 69) 고 했습니다. 앞으로 만약 글을 올리게 되면 철저히 레퍼런스를 적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은 완전히 배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해인 또는 수인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런 관점에서 글을 읽으신다면 다른 글들을 읽으실때에도 저항감이 줄어들것이라 여겨집니다. -------------------------------------- Show me your smil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