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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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wwww (DD15러셀)
날 짜 (Date): 2000년 12월 18일 월요일 오전 10시 14분 44초
제 목(Title): 견성(돈오)과 구경성불(돈오돈수)


문 : 요즈음 돈오돈수(頓悟頓修)에 대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주장

      으로 시비가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수행자들이 

      그릇된 길에 집착되거나 의심을 일으키는 분이 많습니다. 

      바른 돈오돈수의 이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답 : <금강경>에는 네 가지 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만 여의

      면 곧 중생이 아니라는 말이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런데 

      제구 일상무상분(第九 一相無相分)을 보면 다툼이 없는(곧 모

      든 상을 여읜) 삼매인(三昧人) 가운데 제일인 아라한도 구경지

      (究竟地)가 아니니 보살도를 닦아 등각(等覺)을 거쳐야 구경성

      불(究竟成佛)인 묘각지(妙覺地)에 이르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

      으며, 제이십삼 정심행선분(第二十三 淨心行善分)을 보면 부처

      님께서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고, 중생(衆生)도 없고, 수자

      (壽者)도 없는 가운데 모든 선법(善法)을 닦아야 곧 아뇩다라삼

      먁삼보리를 얻는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부처님께서 '네 가지 상(四相)이 없는 경지에서 모든 선법을 닦

      아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성불의 경지를 얻는다.'고 하신 것

      은 다름이 아니라 견성(見性)한 후에 견성을 한 지혜로써 항상 

      체성을 여의지 않고, 남은 업을 모두 닦아 본래 갖춘 지혜덕상을

      원만하게 회복시켜야 구경 성불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돈수인가?

      '돈'이란 시공이 설 수 없는 찰나요, '수'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닦는 것이다. 단박에 마친다면 '돈'이면 그만이고, 견성 이전이

      든 이후든 닦음이 있다면 '수'라고만 할 것이지 어째서 돈과 수

      를 함께 놓아 돈수라 했을까?


      그야말로 물의 차고 더움은 그 물을 마셔본 자만이 알듯이 깨달

      은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무쳐 깨닫고 보니 시공(時空)이 서지 

      않고 시공이 서지 않아 이러-히 시공을 초월한 경지에서 닦아

      도 닦음이 없는 것이 네 가지 상이 없는 가운데 모든 선법을 닦

      는 것이요, 단박에 깨달으니 번뇌 그대로 보리(菩提)요 보리 그

      대로 번뇌여서 버려서는 버린 바 없고 얻어서는 얻은 바가 없어

      색(色)과 공(空)마저 서지 못하여 항상 이러-한 경지에서 닦음 

      없이 닦는 것이 네 가지 상이 없는 가운데 모든 선법을 닦는 것

      이다. 또한 네 가지 상이 없는 가운데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 곧

      견성 후의 보림(保任)이다. 

      왜냐하면 네 가지 상이 없다는 것은 네 가지 상 뿐만 아니라       모든 상이 
없다는 것이요, 견성하지 않고서는 모든 상이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닦아 남음이 없는 구경지인 

      성불에 이르는 과정을 돈오돈수라 하는 것이다. 이러-하여 깨달

      아서는 깨달은 바 없고 닦아서는 닦은 바가 없는 것이다.

      요즈음에 견성이 곧 돈오돈수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 견성이 곧 

      구경지인 성불이라면 돈오면 그만이지 돈수란 말은 왜 해 놓았

      겠는가? 


      다시 한 번 밝히자면 돈오란 자신의 체성을 단박에 깨닫는 것이

      요, 돈수란 깨달은 체성의 지혜로써 시공이 존재하지 않는, 네 

      가지 상이 없는 함이 없는 함으로 닦는 것을 말한 것이다. 견성

      하면 마음 이외의 다른 물건이 없는 경지인데 어떻게 닦음이 있

      을 수 있는가 하고 의심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것은 견성

      했다 하나 헤아릴 수 없는 겁(劫) 동안에 길들여온 업(業)으로 

      인하여 경계를 대하면 깨달아 사무친 바와 일치하지 못하기 때

      문이다. 

      그래서 - 견성한 지혜로써 항상 체성을 여의지 않고 억겁에 익

      혀온 업을 제거하고 지혜 덕상을 원만하게 회복시키는 것 - 이

      것이 돈수요, 오후 보림이며 수행자들이 퇴전하지 않고 구경성

      불할 수 있는 바른 수행의 길인 것이다.


      이것은 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금강경>에서 밝힌 부처님의 

      말씀이요, 또한 바로 돈오돈수를 주창하신 육조대사님의 말씀

      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 돈황본(敦煌本) 이십칠 상대법편과 이십

      팔 참됨과 거짓편을 보면 육조 대사님께서 당신의 설법언하

      (說法言下)에 대오(大悟)하고도 슬하에서 삼, 사십년간 보림한

      십대 제자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떠난 뒤에 너희들

      은 각각 한 곳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종지(根本宗旨)를 잃지 않도록 해

      주리라. 나오고 들어감에 곧 양변(兩邊)을 여의도록 하라." 하시

      고 삼과(三科)의 법문과 삼십육대법(三十六對法)을 설하신 것을

      볼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삼개월 후 다시 십대 제자들을 모아놓고 '팔월

      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은 의심이 있거든 빨리 물

      어라. 내가 떠난 뒤에는 너희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 하시

      며 진가동정게(眞假動靜偈)를 설하시고 외워 가져 수행하여 

      종지를 잃지 않도록 하라고 거듭 당부하시고 있다. 


      이것을 보아서도 육조께서 주창하신 돈오돈수를, 위에서 이 사

      람이 주장한 것과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원선사 문답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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