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fdragon (rudals) 날 짜 (Date): 2000년 3월 25일 토요일 오전 09시 23분 23초 제 목(Title): 문경 봉암사 한국의 선원/ (1) 문경 봉암사 47년 성철 스님등 20명이 "결사"...총무원장 6명 배출 한국 불교의 주류는 선이다. 그리고 선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터전은 선원이다.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3개월씩 수행자들이 함께 모여 하루 10시간 이상 뜨거운 구도 정신을 불태우는 선원은 법맥을 이어가고, 불교에 활기를 불어넣는 현장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선원들의 역사와 현황, 특징을 몇 차례로 나누어 살펴본다. (편집자) ------------------------------------------------------------------------------- - 사진설명 : 문경 봉암사의 경내 모습.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이며 조계종 특별선원이다. ------------------------------------------------------------------------------- - 해방 직후인 1947년 경북 문경 희양산 남쪽 골짜기에 위치한 유서 깊은 고찰 봉암사(봉암사)에는 20명의 젊은 스님들이 모였다. 성철 청담 자운 향곡 월산 혜암 법전 스님 등 이후 한국 불교를 이끌어가게 되는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수행하다 해방을 맞아 봉암사로 집결한 것이었다.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고 다짐한 이들은 법당에서 부처님과 제자들 상만 남기고 칠성, 신중 등 토착신앙과 결합된 요소들을 모두 치웠다. 또 일제시대를 거치며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가사, 장삼, 발우를 새로 만들어 사용했고 오늘날 조계종은 이를 계승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밥하고 하루 두 짐 나무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으며 마을로 탁발을 나가 양식을 조달했다. 또한 신도들로부터 개인적으로 시주를 받지 않음으로써 생활상의 평등을 실천했다. 신도들이 스님에게 절을 하는 풍습도 이때 만들어졌고 성철 스님 때문에 유명해진 3000배가 시작된 것도 이곳에서였다. ‘봉암사 결사’는 6.25 때문에 3년 만에 중단됐지만 이때 함께 수행한 사람 중에서 4명의 종정, 6명의 총무원장이 나왔고 이들의 수행 기풍은 불교계의 전설로 남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6.25 이후 황폐화됐던 봉암사는 1970년대 들어 서암 스님의 노력에 의해 다시 한번 선 수행의 전당으로 떠올랐다. 향곡, 서옹 스님에 이어 1980년부터는 서암 스님이 직접 선원의 큰 어른인 조실을 맡아 봉암사의 선풍을 이끌었다. 조계종도 봉암사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1982년 6월 종단 특별선원으로 지정했으며 모든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봉암사 경내에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자동차 등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철저히 금지되고 있다. 현재 봉암사에서 본격적인 참선이 이루어지는 곳은 태고선원, 성적당, 관음전 등 세 곳. 관음전에서는 하루 22시간, 성적당에서는 14시간, 태고선원에서는 10~12시간씩 참선을 한다. 또 봉암사는 다른 선원과는 달리 봄, 가을에도 반 결제를 하기 때문에 사시사철 참선이 행해지는 셈이다. 1999년 여름 봉암사 하안거에 참여한 비구 스님은 모두 84명. 이는 조계종의 비구 선원 43곳 중 단연 으뜸이며 가장 큰 사찰인 해인사 선원(40명)의 두 배가 넘는 수자로 봉암사 선원의 위상을 보여준다. 일면 조계종교육원장은 “봉암사는 당대의 고승들이 침체에 빠진 한국 불교를 한번 일으켜 보자고 힘을 모았던 곳으로 커다란 상징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 이선민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