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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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7월 17일 토요일 오전 04시 33분 36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본각의 세계


번호 : 16/4053                  입력일 : 1999/07/16 17:21:02    자료량 : 71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본각의 세계                   



 전호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선에서 우주 전체와 그 안의   삼라만물 하
나  하나를 각기   진실한 존재의 궁극점을  나타낸다고 볼  때, 우리에게는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삼베  옷감이나 화장실의  휴지가 부처님의  알몸이
나 진여 (眞如)의 얼굴이 된다는 것을 교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
다.

 물론 선에서는 선사들의 궁극점 표현에 대한 교리적 풀이를 용납하지 않으 
려 할 것이다.   교리를 통한 숨바꼭질식의 해석을 선이 가장   싫어하는 말
장난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선의  직관적 체험  세계를 설
명하고 있지 않다.

 단지 선 일반에서 공유하고 있는 궁극점에 대한 표현을 교리와 연결시켜서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선의 심오한 체험 경지는  높이 올려놓은 상태에서,  
선에서 세상으로 흘러나온 말들을  교리와 맥이 통하게 하는 방법으로 교리  
공부를 할 뿐이다.

〈열반경〉은 모든  중생들에게는 부처가 될  성품이 있다고  가르친다.  또 
많은 불경들은  중생이 바로 부처를 낳을  모태라거나, 때가  되면  부처가 
될 태아라고 가르친다.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사상이 한결같이   모
든 중생 에게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미래의 가능성”으로  불성을  풀이하면, 〈열반경〉이나  〈법화
경 〉에서의 본래 성불한 부처님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짐짓 태어나고 죽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연결되지 않는다.

“가능성”은 “없는  것을  새로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고,   “본
래  성불한 부처님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 변장해서  출현한다”는 것은 “
본래  부처님이 본래의 자신을 알아본다”는 말이다.

〈열반경〉의 “법신상주(法身常住)” 즉   “부처님의 법신은 항상 이   세
계에  머문다”는 가르침과   “실유불성(悉有佛性)” 즉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가르침을 한 줄기로 엮으려면, 저   “불성”이라는 말에
서의 “ 가능성”을 “ 중생이  새롭게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
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인 이가 본래의 자신을   알아볼 가능
성이 있다”는  것으로 풀이해야 한다.

 모든 중생이  본각자(本覺者) 즉 무량겁전에 이미  깨달은  본래  부처라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 세상의 모든 것은   부처님
이 변장해서 보여주는 얼굴이요 몸짓이다. 삼베 옷감이  우주에  충만한 법
신 부처님의 손바닥일 수도 있고, 변을 닦는  휴지가 부처님의 얼굴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나무나 돌이 부처님의 발톱일 수도 있다.

 우리가 천태사상과  화엄사상을 공부할 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본각(本覺)의  입장에서  불성과 여래장을 풀이하려고  
했다. 먼저 천태의  성구(性具)사상이 있다. 천태가(天台家)는 〈반야경〉이 
성공(性空)을 가르치고 〈법화경〉은 성구를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반야경〉은 부처와 지옥을   모조리 지우려고 한 반면,   〈법화경〉은 지
옥 속에 부처가,   부처 속에 지옥이   갖추어져 있음을 설명하려  한다고  
이해한  것이다.  여래수량품의  무량겁전에 성불한  부처님으로  모든 중생
의  본각을  보이려고 한다.

 화엄가(華嚴家)도 본각에 관심을  갖기는 마찬가지이다. 화엄사상의 기초가  
되는 성기(性起)설은   바로 〈화엄경〉  여래성기품(如來性起品)에  근거해
서,   온 세상을  여래성이  일어나서 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 미혹과   
죄업과  고통의  세계가 그대로 여래성의 움직임  또는 부처님 그 자체라는 
것이다. 

 불성, 여래장,  성구,  성기 사상이  본각을 설명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선은  저 설명을 생략한 채 수행에  의해서  직접 체험하라고 
가르친다. 본각에 대한  교리적인  설명이 수박의 맛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선수 행의 체험은 그 수박을 먹어 보는 것과 같다.

 자신이 바른 수행   코스로 가고 있느냐 마느냐를 알려면,   본각의 입장에
서  세상사를 보느냐 마느냐로 기준을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발행일(1726호):1999년7월13일,<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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