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7월 1일 목요일 오후 01시 30분 27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언어의 한계 번호 : 19/4009 입력일 : 99/06/26 15:14:13 자료량 :65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 87 선에서는 언어를 초극한다. 언어를 불신하거나 언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 고 초월하려고 한다. 그래서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 즉 “문자에 기대어 서거나 언어로 된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마음과 마음으 로 이어지는 비선을 통해서 법이 전해진다”고 주창한다. “영산회상에서 석존이 꽃을 들어 보이니 가섭이 빙그레 웃었다”는 염화미 소의 이야기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대표적으로 잘 나타내 준다. 선문답(禪 問答)에서의 상식으로 소화할 수 없는 표현, 소리치기, 때리기, 괴상한 몸짓 등도 언어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마음속의 것을 바로 전해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왜 언어가 문제인가. 말이 있으려면 먼저 그 말이 나타내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자주 드는 구름의 예를 보자. 구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름이 아니다. 물에서 수증기로, 구름으로, 비나 눈으로, 물로, 얼음으로 변해하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우리가 구름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수증기가 죽고 구름이 태어나며, 구름이 무거워져서 비로 떨어질 때, 구름은 죽고 비가 태어난다. 세상에 모든 사물은 변하는 과정에 있는데, 어느 한 단계로 고정된다. 어느 것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고정화된 개념은 사물이 존재하는 그대로의 여실 한 실상을 제대로 전해 줄 수 없게 된다. 성공속에는 이미 실패가 들어 있 고, 삶 속에는 이미 죽음이 들어 있다. “있다” 와 “없다”, “좋다”와 “나쁘다”와 같은 상대적 개념으로 가를 수 없는 것들의 경우에도 언어는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어떤 것이든지 개념과 언어에 묶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본래의 그것이 아 니다. 선 뿐만 아니라 불교 전반은 예로부터 이와 같은 언어의 문제점을 알 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 왔다. 먼저 석존의 침묵을 보자. 만 동자가 석존에게 세상의 시간적 공간적 시작과 끝, 사후의 존재, 육체와 정 신의 동일성 여부를 물었다. 석존은 이에 침묵으로 답했다. 단지 침묵의 의 미를 알도록 한 힌트만을 주었다. 불은 언제든지 켜고 끌 수 있다. 연료가 있을 때 불을 붙이면 불이 존재하 고, 연료나 산소 공급을 중단하면 불은 바로 꺼진다. 그렇다면 불은 꺼지고 켜짐과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고, 또 연료가 없으면 언제든지 불 은 꺼지므로 불은 존재하기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세상사를 있다와 없다 로 묶어 둘 수 없는 마당에, 우주의 시작과 끝이나 사후의 존재를 언어로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것이다. 〈유마경〉의 침묵도 유명하다. 입불이법문품(入佛二法門品)에서 유마거사 의 질문을 받고 많은 보살들이 상대적인 것의 예를 들며 그것들이 둘이 아 니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문수보살은 일체의 언어와 개념을 떠나는 것이 진 정으로 불이(不二)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유마거사의 생각을 묻는 다. 유마거사가 침묵하자 문수보살은 유마거사가 불이에 대해서 기차게 잘 설명했다고 감탄한다. 〈화엄경〉에서도 부처님은 침묵을 지키면서도 많은 언어를 쓰고, 말을 많 이 하면서도 언어에 묶이지 않으려고 한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은 직접 설법하지 않는다. 많은 대리자가 나타나서 부처님의 생각을 전한다. 석존이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화신으로서의 석존이 아니라 법신 으로서의 석존이 〈화엄경〉을 설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침묵과 관련지어서 달리 풀이할 수도 있다. 석존은 〈화엄 경〉을 설하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했고, 한 마디도 내지 않으면 서도 저 방대한 분량의 가르침을 펴낸 것이다. 〈법화경〉 즉 〈묘법연화경〉의 “묘(妙)”자도 진리를 언어로 잡을 수 없 음을 나타낸다. 언어의 한계를 직접 간접으로 드러내지 않는 불교경전은 없 다. 부득이 언어를 쓰면서도 그 문제점을 알고 초극(超克)하려는 불교 전체 의 전통을 선이 이어 받은 것이다. *발행일(1724호):1999년 6월 29일,<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구독신청:(02)730-4488-90 기사제보:(02)733-1604,FAX:(02)3417-0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