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4월 29일 목요일 오전 01시 44분 04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본래 성취된 정토 번호 : 15/3827 입력일 : 99/04/27 15:21:24 자료량 :63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본래 성취된 정토 정토교는 불교의 다른 사상들과 합쳐지기도 한다. 유식 천태 밀교 선등과 결합하거나 그 사상들을 정토쪽 으로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정토교라고 해서 다른 불교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접사상과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천태사상과 결합된 정토의 맛은 특별히 두드러 진다. 우리가 이미 공부한 바 있는 천태의 핵심을 다시 한 번 간략히 되짚어 보자. 〈반야경〉은 공을 가르친다. 모든 사물에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주체가 없다고 한다. 어느 것 하나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다른 것과 의존관계에 있다. 이것을 텅빈 상태 즉 공의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의존 관계에 있은 것을 텅비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꽉 찼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 쪽에 있는 것이 다른 것으로 나가서 텅비었다는 것은, 반대로 다른 것들이 내 쪽에 들어와서 꽉 차 있다는 것도 된다. 천태에서는〈법화경〉이 바로〈반야경〉의 공사상을 뒤집어서 꽉 차 있는 것을 가르친다고 풀이한다. 이것을 천태는 성구(性具) 즉 본래부터 모든 것을 포함해서 갖추어 있다는 용어로 압축해서 표현한다. 모든 것이 나에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부처가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부처가 되려면 우리에게 부처 또는 부처가 될 불씨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편품과 여래수량품을 비롯한 〈법화경〉 전체는 우리가 무량겁전에 성불한 부처님 또는 그 상속자라고 가르친다. 우리에게는 본래적으로 부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래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뜻에서 한문으로 본각(本覺)이라 표현한다. 성구사상이 보장된 수행의 성취를 강조하다 보니 본각사상을 동반하게 된 것이다. 법장비구의 48원 가운데 제18원인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염불하는 이가 극락왕생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 법장비구가 성불해서 아미타불이 된 지 벌써 10겁이 지났다. 법장비구의 원이 성취되어서 아미타불이 되었으므로 지성으로 염불하면 누구나 극락정토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염불하는 이가 극락정토에 가거나 갈 자격을 얻은 시점점이 언제냐는 것이다. 일반 정토의 입장이라면 지심으로 염불하는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천태에는 성구에 입각한 본각사상이 있다. 우리가 이미 무량겁전에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사상을 정토교의 염불수행에 적용하면, 법장비구가 아미타불이 되었을 때, 모든 중생들은 이미 정토에 왕생했거나 왕생할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이 된다. 중생들이 정토에 왕생하는 시점은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10겁 전의 과거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미 정토에 왕생했다면 왜 다시 극락에 가기 위해서 염불수행을 해야 하겠냐는 것이다. 천태의 성구사상은 수행이 성불을 포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불도 역시 수행을 동반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정토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확인하려면 염불수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극락에 가기 위해서 염불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극락에 도달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염불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천태의 성구에 입각한 불이(不二)사상은 수행과 성불을 하나로 본다. 그래서 한 시간 수행하면 한 시간 부처요, 열 시간 수행하면 열 시간 부처다. 마찬가지로 천태사상을 채용한 정토교의 본원 염불 사상도 한 시간 염불하면 한 시간 정토를 맛보고, 열 시간 염불하면 열 시간 정토를 맛보게 될 것이다. 물론 영원히 염불하면 영원히 극락정토를 확인할 것이다. 법장비구의 본원은 염불자가 정토에 이른 것을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미모와 건강을 비롯해서 온갖 성취를 다 확인할 수 있다. 스님들이 목적과 근기가 천차만별인 신도에게 염불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발행일(1716호):1999년 4월 27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