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9월 29일 화요일 오전 11시 55분 55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심 불 중생은 하나 번호 : 19/3414 입력일 : 98/09/29 10:14:19 자료량 :70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심 불 중생은 하나 지난호에 우리는 화엄의 성기(性起)와 천태의 성구(性具)사상이 어떻게 완 전 다른 시각에서 즉(卽), 무차별(無差別), 또는 불이(不二)의 아이디어를 이 끌어 내는지 비교해 보았다. 여기서는 화엄경의 유명한 유심게(唯心偈)를 읽 으면서 저 부처와 중생이라는 양극 개념의 무차별과 그 중간에 있는 마음을 살펴보려고 한다. 60권본 화엄경의 야마천궁보살설게품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마음은 그 림을 아주 잘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화 가는 눈에 보이는 그림만 그리지만 마음은 정신적인 것까지도 만들어 낸다. 마음은 혼자서 그림을 그리듯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마 음은 부처와 중생에 속해 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아무런 차별이 없다. 이것을 아는 이가 바로 부처이다. 유심게 가운데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차별이 없다’는 ‘심불급중생시 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의 구절은 스님네들의 법문 가운데서 너 무도 흔히 인용되기 때문에 절집에 인연이 있는 이들은 적어도 한 두번 이 상은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부처와 중생이라는 양극 사이에 마음이 끼어 있다. 마음이 세상의 일체 사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여실히 보고 알면 그는 부 처요, 보지 못하고 모르면 중생이다. 세상이 아무리 넓고 복잡해도, 그것들 은 모두 내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내가 넓고 복잡하게 본다. 세상을 본다는 것은 마음 밖의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내 마음을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훤히 알게된다. 마음이 지어내는 삼라만물을 있는 그대로 보면, 이는 바로 마음의 움직임 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마음을 보는 이는 부처요, 그렇지 못한 이는 중생이다. 한마음이 부처가 되기도 하고 중생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부처와 중생의 중간에 있다고 할 때, 그리고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셋이 아닌 하나 라고 할 때, 우리는 본래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 하는 물음을 또 다시 만나 게 된다. 먼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마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선과 악이 겸해 있는가, 아니면 선도 악도 없는 백지 상태인가. 불교는 기본적으로 마음의 본성이 맑고 깨끗하다는 심 성본정설(心性本淨說)의 입장에 선다. 그러나 본성이 깨끗하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안에 악 거짓 추함은 없고 오직 선 참다움 아름다움만 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중생이 경험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천상 부처등이 있다. 중생에게는 선, 악, 선악, 백지의 상태가 다 있을 수 있다. 단지 어떤 이는 선만을 다른 이는 악만을, 또 다른 이는 선악을 동시에 행할 뿐이다. 약 우 리의 마음에 모든 종류의 지옥과 부처가 있지 않다면 부처와 중생은 하나가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마음의 본성이 깨끗하다는 것은, 또는 마음의 본성이 그대로 진여요 여래 법신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선악미추를 동시에 갖고 있을뿐만 아니라 또 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뜻한 다.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악은 가라앉히고 선만 활동하게 할 수 있는 능력 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미혹 쪽으로 기울어져서 세간의 선악업에 매달리거나 악업만을 행 한다면 그는 중생이요, 깨달음의 지혜 쪽으로 기울어서 선악업을 초월하고 중생을 위하고 살리는 보살원력을 실천하면 그는 부처이다. 밖에 있다고 생 각되는 모든 사물이 실제로는 내 마음의 화가가 그려낸 것일 뿐이라고 깨치 면 그는 부처요, 그렇지 못하면 중생이다. 밝음은 지혜요 어둠은 무명이다. 중생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무명 때문이다. 무명을 지우고 지혜를 얻으면 마 음과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의 지혜는 밖에 있는가 안에 있는가. 화엄경은 이 마음 안에 있다고 한다. 마음이 등불일 수도 있고 암흑일 수도 있다고 한다. 등불과 암흑도 외부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 니지만 아무렇게나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등불을 들었을 때만 하나이다. 미 혹 속에서는 둘로 오인되기가 쉽다. *발행일(1691호):1998년 9월 29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