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12시 23분 15초 제 목(Title): 퍼]세계불교문화유산-앙코르유적 번호 : 11/3335 입력일 : 98/08/31 13:26:32 자료량 :88줄 제목 : 세계불교문화유산-앙코르유적 캄보디아 현대사는 혼란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힘든 역사’였다. 프랑스 식민지배, 왕정복귀, 군사쿠데타, 뒤이어 등장한 크메르루즈의 ‘킬링필드’, 베트남 침공, 다시 격화된 내전 등 끝없는 살상과 파괴로 아롱졌다. 어려운 역사 속에서도 캄보디아 국민들은 끝내 ‘삶의 의지’를 상실하지 않았다. 앙코르 유적들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머니처럼 캄보디아 사람들의 고통을 달래 온 앙코르 유적은 크 메 르족(현재 캄보디아인 대부분이 크메르족이다)이 남긴 “문화·종교 활동의 결정체”이자, 9세기초에서 12세기말까지 동남아시아에서 최고의 번영을 누 렸던 크메르 왕조(802∼1434)의 영화를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기념물이다. 세 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 유적은 크게 앙코르와트(이하 와 트)와 앙코르 톰(이하 톰)으로 구분된다. 수야바르만 2세(재위 1113∼1150) 때 2만5천명이 동원돼 37년만에 건립 된 와트는 동서 1천5백m, 남북 8백50m 크기로 세계 최대 사찰이다. ‘왕성’ 을 의미하는 앙코르와 ‘사원’을 뜻하는 와트가 결합된 앙코르와트는 수야 바르만 2세가 자신의 유해를 안치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한다. 곁에서 보면 사원의 거대한 규모에 먼저 놀란다. 과연 이렇게 큰 돌들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벽과 기둥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은 어떤 사람들의 작품일까 등 궁금증은 끝없이 이어진다.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보다 더 웅장한 자태에 감탄을 금할 수 없게되는 것이다. 오랜 세 월 자연과 인간에 의해 참으로 많이 손상됐지만 참배로에서 바라본 와트는 험한 세월을 이겨낸 거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방추형의 중앙탑과 십자형으로 동서남북에 뻗어 있는 회랑, 그것을 둘러싼 삼중의 회랑과 네 모서리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4기) 등으로 이루어진 건 축구성은 입체적이다 못해 장중하다. 세계의 중심이자 수미산을 의미하는 중앙탑(높이 65m) 끝에서 주변 4기의 탑 끝을 선으로 연결하면, 사각뿔의 피라미드 모양이 된다. 이점이 바로 와트를 감상하는 핵심중의 하나다. 7백60m에 이르는 회랑벽의 부조, 제2회랑 안의 돌로 조성한 우물, 제3회 랑 내부의 화려한 십자형 수랑 과 탑, 여러 개의 머리를 부채처럼 치켜들 고 사원을 지키는 나가(뱀) 등도 물론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회랑 벽에는 특히 춤추는 천녀(天女) 압사라 가 2천여 점이나 조각돼 있다. 사원 전체가 불교미술의 보고인 셈이다. 자야바르만 7세 재위기간(1181∼1225) 중 극에 달했던 건물 축조열이 수그 러지고, 소승불교로 대표되는 새롭고 보다 절제된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13세기부터 와트는 점점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때 서쪽에 세워진 타이왕조의 군대가 크메르의 심장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격화된 침입 속에 도시는 폐허로 변했고, 점차 밀림에 파묻혀 갔다. 1860년 프랑스 탐험가 헨리 모하트에 의해 바깥세계에 알려질 때까지, 스님 들이 한때 거주했지만 ‘그렇게’ 정글 속에 와트는 잠자고 있었다. 앙코르 왕조 가 종교적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것이 와트라면 ‘톰 (거대함이라는 의미)’은 국가적 역량을 보여주기 위해 축조한 것이다. 앙코르 왕조의 2대 왕인 야소바르만왕(재위 889∼900) 때 건립되기 시작 한 톰은 시대적으로 와트보다 반세기 뒤에 세워졌다. 한 변이 3km의 정 방 형 도시로, 와트의 북쪽에 위치한 톰의 주위는 성벽으로 에워싸여 있고, 중 앙에는 대표적 불교 사원인 바욘사원이 웅장한 자태로 서있다. 바욘사원에 서 동서와 남북으로 뻗은 두 개의 도로가 도시를 넷으로 나눈다. 문은 두 도로가 성벽과 교차하는 곳에 4개, 왕궁으로부터 동쪽으로 뻗은 대로상에 있는 ‘승리의 문’ 등 모두 5개가 있다. 바욘사원은 당시 불교가 얼마나 성했는지를 보여주는 톰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로케슈바라(관세음 보살)’처럼 환상적인 장식으로 꾸며졌다. 사원에는 중심 탑과 그 둘레에 8 기의 소 탑, 45기의 부속 탑이 늘어서 있으며 2중의 회랑이 두르고 있다. 각 탑에는 거대한 관세음보살 얼굴이 조각되어 있고, 회랑에는 당시의 모 습을 엿볼 수 있는 부조가 한치의 공간도 남기지 않고 빽빽하게 새겨져 있 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바욘사원의 관음상은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 는, 자애스런 눈과 미소 띤 얼굴을 가지고 있다. 중생계를 굽어보며 감싸는 듯한 자태는 절로 신앙 심을 솟게 한다. 아마도 캄보디아 인들은 바욘사원의 관음상에서 삶의 희망을 찾았으리라. 현재도 끝없이 기도객들이 찾아오는 데서 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적”인 앙코르도 다른 유적들처럼 탐욕에 찌든 인간에 의해 무 참하게 파괴돼 왔고, 되고 있다. 제국주의 침략과 내전, 무분별하게 자라난 수목으로 대부분 복원할 수 없을 만큼 부서진 것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70% 이상이 복원불능 상태라고 한다. 복원 공사를 맡았던 사람들이 강산성액을 부어 수백 미터의 회랑을 시뻘겋 게 부식시켜 놓은 것, 잘못된 복원공사로 원형을 잃고 돌무더기로 변해있는 유적의 모습 등은 국가를 떠나 통탄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이방인인 나로서 는 가슴에 산 같은 아쉬움을 안고 돌아서야만 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생각하며 캄보디아 시엡렙 상공의 비행기에서 앙코 르 유적을 내려다보았을 때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숨이 턱 막혔다. “아! ” 하는 탄성이 절로 목에서 흘러 나왔다. 정방형의 거대한 도시, 거기에 세 워진 장대한 사원, 점점 작아져 가는 관음상에 어느 누가 감동되지 않겠는 가. 〈趙炳活기자〉 *발행일(1687호):1998년 9월 1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