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8월  3일 월요일 오후 03시 59분 49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이와 사



번호 : 15/3274                 입력일 : 98/08/01 10:18:26      자료량 :61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이와 사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눈앞의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 눈앞에 벌어지는 것이 
전체적인 것과 어떻게  통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또 원리나 이상에만  머물어서 
만족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을 현실화해서  보고 싶어한다. 현실의 사물 쪽에서는 
원리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하고, 원리쪽에 있으면 현실의 사물로 내려오고 
싶어하는 것이다.

 가령 어떤 이가 나에게  이유 없이 호의를 베푼다고 치자. 내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끊임없이  나에게 접근해 
오고 나에게 무엇이든지 주고 싶어하면  나는 상대가 왜 그러는 지를 알고 싶어  
할것이다.
 반대로 상대는 나에게 호의를 표시한다. 권력과 재력을 갖고 있고 나는 그것이 
필요하다.

 상대가 마음으로만 나를 위한다면 나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다. 나를 위하는 
마음과 함께 현실적으로 나의 손에 확실하게 잡히는 것을 받고  싶어한다. 이렇게 
눈앞의 일에 서는 마음의 근원으로 들어가고 싶어하고, 이상이나 원리의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현실
로 나오고 싶어하는 양면적인 성향을 사람은 갖고 있는 것이다.

 화엄사상에서 사(事)와  이(理)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현상과 본체, 사물과  
원리, 현실과 이상의 어느  한쪽만 본다면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요,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물과 원리를 다 
같이 보게 하고, 아울러 사물 속에서 본체를 본체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는 경계로 
유도하려고 한다. 

 사(事)는 현상적, 현실적, 구체적, 개별적인  일, 사건, 물건, 실태, 조건, 처지, 
상황 등을 뜻한다. 반면에 이(理)는  본체적, 궁극적, 보편적, 근원적, 총체적, 
추상적, 이상적  원리,  원칙, 법칙, 진리, 도리, 판단근거 등을 의미한다.

 우리가 몸을 받고 태어나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직장을 가지고, 남녀가 
접촉하고, 가족을 가지고, 늙고, 병들고, 죽는 현상, 사건,  물건, 물체들은 모두 
사에 속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산, 강, 들, 하늘의  세계, 귀로 듣는 소리의 
세계, 코로 맡는 냄새의 세계, 혀로 맛보는 맛의 세계, 육체로  느끼는 감촉의 세계 
등도 역시 현실의 사물에 속한다.
이 사의 세계에서는 모든 현상들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것 같다.

 그러나 현상 뒤에는 이 개별적인 것들을 연결시켜서  총체적으로 꾸미는 원리가 
있다.
지구, 달, 태양이 회전하는 원리,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 원리, 
삼라만물
이 변하는 원리, 억천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 무엇보다도 우주 전체를
조화롭게 정리해서 읽는 마음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 궁극의 원리를 공(空) 무(無) 
성구(性具) 성기(性起) 진여(眞如) 일심(一心)등으로 표현한다.

 화엄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와 이를 구분하여  연결짓기 위해서 두가지 비유를 즐겨 
쓰고 있다. 하나는 금사자의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파도와 바닷물의 비유이다. 
왕궁에 금으로 만든 사자가 있다고 할 때  사자라는 형태를 갖춘 것을 위주로 
본다면 그 금덩이는 사가 되고, 얼마든지 다른 것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을 
위주로 본다면 그 사자는 이가 된다.

 같은 금사자를 사자라는 사의  측면과 금이라는 이의 측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파도와 바닷물도 마찬가지이다. 바닷물이 없이 파도가 있을 수 없고, 
파도를 다 퍼내고 나서 바닷물을 찾을 수는  없다. 파도가 바닷물이고 바닷물이 
파도이다. 파도를 위주로 보면 사가 나타나고, 바닷물을 위주로 보면 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타종교 계통 대학에서 근무하는 이가 찾아 온 적이 있다. 그의 문제는 이러하다. 
고교 시절에 여자를 사귀기 위해서 일요학교에 나갔고, 학업을 마친  후에는 같은 
계통의 학교에서 행정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강한 신앙심과 그 
표현을  요구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불교적인 사고가 꿈틀거리고 있다. 뒤늦게 
직장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신념과 이반되는 생활을 계속하기도 괴로우니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다. 

 이 경우 직장이라는 사를  바꿔서 문제가 풀릴까. 현실의 파도 속에서  바닷물을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불교식으로 타종교를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선 
사의 그 자리에서 이를 볼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발행일(1684호):1998년 8월 4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