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리) 날 짜 (Date): 1998년 7월 4일 토요일 오전 05시 53분 00초 제 목(Title): 도올 벽암록 제 5강화/신동아,중략되었음 도올 『碧巖錄』 講話 제5화 우주가 좁쌀 한 톨 도올 김용옥 철학자·한의사 第五則 雪峰粟粒 垂示云 : 大凡扶梏宗敎, 須是英靈底漢, 有殺人不鄂 眼底手脚, 方可立地成佛. 所以照用同時, 卷舒齊唱 ; 理事不二, 權實竝行. 放過一著, 建立第二義門. 直下截斷葛藤, 後學初機, 難爲湊泊. 昨日恁匿, 事不獲已 ; 今日又恁匿, 罪過彌天. 若是明眼漢, 一點 壹他不得. 其或未然, 虎口裏橫身, 不免喪身失命. 試擧看. 제5칙 설봉의 좁쌀 한 톨 【수시】 대저, 으뜸가는 가르침을 자기 나름대로 수립하려고 한다면, 아주 영령하고 뛰어난 인물이 아니면 안 된다. 필요에 따라선 사람을 죽이고서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을 그런 담뽀와 수완이 있어야 그 자리에서 성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시 이론과 실천이 동시적인 것이요, 조임과 풂이 같이 아우러지는 것이요, 본체와 현상이 둘이 아니요, 방편과 구극적 실재가 같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한발짝 물러나 제2의적인 언어방편을 세우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만약 언어갈등을 단칼에 베어내버리기만 한다면 후학 초심자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허나 어제 그렇게 한 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 치더라도, 오늘 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은 그 죄과가 하늘을 가득 메우는 것이다. 아주 눈이 밝은 놈이라면, 그런 놈은 이 따위 공안으로 조금도 속여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명철한 눈을 가지지도 못한 녀석이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와 가로눕는 만용을 부린다면, 그놈은 뒈지기 딱 좋은 것이다. 내 또 설봉의 이야기를 들어보리라. 이 수시도 정확히 해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비약이 심하기 때문이다. 허나 내가 풀어놓은 말과 원문을 잘 대조하여 보면 그 논리의 흐름에 필연성이 있음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宗敎」란 역시 여기서 궁극적으로 禪의 진리를 가르치겠지만, 현대어의 宗敎라는 말과 혼동하면 안된다. 「宗敎」란 원래 「으뜸가는 가르침」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종교란 예수의 말씀을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집단이란 뜻이다. 종교를 수립하는 사람들은 똑똑하고(英) 영적인(靈) 인간이 아니면 안 된다. 예수도 똑똑한 사람이었고 영적인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원오는 이 영령함을 표현하는데 「사람을 죽여도 눈하나 깜박 않는 수완(有殺人不鄂 眼底手脚)」이라 했다. 불교는 살생을 금하는 종교인데 이 무슨 말인가? 살다보면 「사람을 죽여야 할 때」가 있다. 이 말을 내가 설명 안 해도 영명한 독자라면 체험적으로 쉽사리 알아차릴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죽여야 할 때는 눈 깜빡 않고 죽일 담뽀가 있어야 한다. 미적미적 꾸물꾸물 수물수물대면 안된다. 「手脚」이란 우리말로 「手腕」과 동일한 표현이며, 力量, 재능, 담력의 뜻이다. 「照用」이란 관조와 활용, 내면의 心機와 외면의 실천을 의미한다. 「卷舒」란 두루마리를 마는 것과 펴는 것이다. 수렴과 전개를 말하는 것이니 語默, 與奪, 活殺과 통하는 것이다. 「理事』는 화엄에서 말하는 바 그대로고, 「權實」은 權敎·實敎니 權大乘·實小乘이니 하여 불교 경전의 가르침이나 지혜를 분류할 때 쓰는 말로 權이란 방편(upa-ya)을 말하며 實이란 眞實·究極을 의미한다. 「放過一着」이란 『한 걸음 양보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宋代백화의 상투어다. 「第二義門」이란 언어·사유를 초월한 究極적 세계인 第一義門과 대비되는 것으로 언어·방편을 의미한다. 「一點壹 他不得」의 「不得」은 壹(속이다)이라는 본동사 뒤에 붙는 조동사적인 표현으로 영어로 「cannot」에 해당한다.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의 뜻이다. 제5칙의 주인공은 雪峰이다. 설봉은 제4칙에 나온 주인공, 「임제할 덕산방」의 그 유명한 德山의 法嗣다. 雪峰이라 함은 그가 大悟하고 德山의 法을 嗣한 후에 雪峰山에 주석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雪峰山은 코끼리 뼈처럼 생긴 기암이 山中에 있어 예로부터 象骨山이라고도 했는데 福州府(복건성) 侯官縣 서쪽 1백80리에 자리잡고 있는 승경이 넘치는 아름다운 산이다. 설두가 제4칙에 德山을 놓고 제5칙에 雪峰을 놓고 제6칙에 雲門을 놓은 것은 바로 설두 자신의 법통을 존중하여 그렇게 『벽암록』 冒頭에 차례로 놓은 것으로 사료된다. 龍潭崇信 ― 德山宣鑑 ― 雪峰義存 ― 雲門文偃 ― 香林澄遠 ― 智門光祚 ― 雪竇重顯 德山의 제자 중 걸출한 두 인물로 우리는 巖頭全 (828∼887)과 雪峰義存(822∼908)을 꼽는다. 그 禪機의 예리함으로 말한다면 설봉이 암두를 따를 수 없을 것이다. 암두의 인격은 그의 호 그대로 깎아지른 듯 거대한 암벽과도 같고 그 날카로움이 塵世의 느긋함을 추호도 허락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雪峰은 문자 그대로 눈덮인 푸근한 봉우리 같고, 백설의 깨끗함 그대로 자만이나 과시가 없는 근면, 인자, 정직, 성실, 인내, 공평무사함 등의 덕성으로 스며 있다. 우리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 『나무는 그늘을 지어야 사람이 쉬어가고, 물은 흐림이 있어야 고기가 모여든다』 암두는 그 나뭇가지의 앙상함과 물의 청명함 때문에 제자가 배출되지 않았다. 허지만 雪峰의 門下에서는 운문(雲門)·현사(玄沙)·보복(保福)·장경(長慶)·경청(鏡淸)·취암(翠巖) 등 40여명의 용상들이 쏟아져나왔고, 中國禪宗 五家七宗 중에 雲門宗·法眼宗 二大宗門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설봉의 탁월한 두 제자로 우리는 雲門과 玄沙를 꼽는데, 雲門(864∼949)이 곧 雲門宗을 개창하고 玄沙의 二代門下에서 法眼文益(885∼958)이 나와 法眼宗을 개창한 것이다. 사실 石頭계열의 준령은 德山이 휘어잡았지만, 德山의 門下에서 별로 기대되지 않았던, 아둔한 듯 보이는 雪峰이 그 준령의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가 되었고 그 봉우리에서 雲門·法眼 二宗의 찬란한 꽃이 핀 것이다 『五燈會元』에 『설봉의 법석에는 대중이 1천5백명 이하로 주는 법이 없었다(師之法席, 常不滅千五百衆)』라 한 유명한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도 참으로 설봉의 인품과 감화의 광대함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설봉은 나이로 보면 암두보다 위지만 암두를 꼭 사형으로 대했다. 설봉의 득도는 암두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설봉은 참으로 지근이 우직한 困知의 人物이었다. 이에 반해 암두는 그의 스승 德山이 되었던 같은 石頭계열의 거봉, 曹洞宗의 개창자 洞山良价(807∼869)가 되었던, 이들 고승에 대해서도 선기의 준엄함을 잃지 않았다. 암두가 어느 날 덕산이 있는 곳으로 갔다. 때마침 덕산이 대문 안에서 어슬렁 산보를 하고 있었다. 암두는 그 문지방을 넘으면서 바로 덕산에게 소리쳤다. 『이것이 성스러운 겁니까? 속한 겁니까?(是凡是聖?)』 그러자 덕산이 아무 대꾸 없이 냅다 큰소리로 할을 했다.(「喝」이란 「할」하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소리나 크게 내지르는 것을 말한다. 할이란 근원적 부정의 외침이요, 절대 언어다.) 그러자 암두는 덕산 앞에 무릎 꿇고 절을 했다. 그리고 물러났다. 그 뒤 어느날 어떤 스님이 이 얘기를 洞山良价에게 전했다. 동산은 이 얘기를 듣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산은 암두보다 나이가 스물한살이나 위다.) 『아마도 암두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그렇게 당해내기 어려웠을 것일세』(若不是 公, 大難承當.) 이 말을 전해들은 암두는 다음과 같이 뇌까렸다. 『그 동산늙은이는 말야, 좋고 나쁨을 가리는 견식이 부족해. 그래서 엉터리 언어들을 막 낭비한단 말야. 날 너무 깔보고 하는 얘기지. 난 그때말야, 한 손으로는 덕산의 엉덩이를 들어올렸지만 또 한 손으로는 그 놈의 방뎅이를 호되게 꼬집고 있었단 말야!(洞山老人, 不識好惡, 錯下名言. 我當時一手擡, 一手四.)』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어찌보면 너무도 평범한 것 같지만 도무지 그 배면에 흐르는 논리적 맥락이 확연히 잡히질 않는다. 선지식의 해설 없이는 . 허나 그러한 해설조차 정말 그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인지는 영원히 알 수가 없다.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학자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가 말하듯이 성(the Sacred)과 속(the Profane)의 문제는 모든 종교적 사유의 이원성의 디프 스트럭처다. 암두가 문지방을 넘으면서 『이것이 성이냐 속이냐?』라고 외쳤을 때 물론 암두가 의도한 것은 성과 속의 대비나 일자의 택일이 아니다. 성과 속의 이원성을 근원적으로 초월하는 곳에 禪境의 第一義가 있었던 것이다. 덕산은 이러한 암두의 논리적 물음에 논리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큰소리로 할함으로써 그러한 암두의 근원적 물음에 근원적인 답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화두의 오묘한 곳은 바로 이어진 암두의 행위에 있다. 그 제스처에 숨은 배면의 논리가 우리 일반독자들에게는 쉽사리 전달되지 않는다. 암두가 무릎 꿇고 절을 한 것은 바로 그 순간 덕산을 聖化한 것이다. 聖스러운 대상으로 만들고 절을 한 것이다. 이때 덕산이 평범한 예의로 그 절을 받아들였다면, 암두의 깨달음을 가상히 바라보는 성스러운 성자의 모습을 취했다면, 이미 그 순간 덕산은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덕산은 그 「禮拜」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 예배를 無化시키는 어떤 제스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덕산이 방심한 틈을 암두는 예리하게 찔렀다. 그런데 洞山은 암두의 이러한 제스처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단지 암두가 대단하다고 모호하게 칭찬한 것이다. 이에 암두는 동산을 다시 찔러 「不識好惡, 錯下名言」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절을 했을 그 당시 난 덕산을 모셔올린 것이 아니라 그를 내동댕이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암두의 禪에는 근원적 초월주의가 있다. 암두와 설봉 그리고 흠산(欽山)은 아주 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들 셋이서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이었다. 설봉이 갑자기 마알간 청수가 담긴 대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흠산이 말했다 : 『물이 맑으니 달이 나타난다(水淸月現.)』 그러자 곧 이어 설봉이 말했다. 『물이 맑으니 달이 나타나지 않는다(水淸月不現.)』 그때였다. 암두는 아무 말 않고 대야를 발로 툭 차 엎어버리곤 가버렸다.(師稷却水椀而去.) 이제 우리의 독자들은 이러한 공안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답이나 제스처는 상투적이다. 흠산의 「水淸月現」은 긍정의 논리다. 설봉의 「水淸月不現」은 부정의 논리다. 허나 암두의 행위는 이러한 긍정과 부정을 근원적으로 초월하는 中論的 해체다. 그가 물이 담긴 대야를 발로 차서 엎어버렸다는 것은 바로 긍정과 부정을 낳는 언어 그 자체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龍樹의 中論과 禪은 하나로 通한다. 긍정과 부정이 모두 부정(中論的 입장)되거나 모두 긍정(華嚴的 입장)되는 그 경지를 암두는 「말후구(末後句)」라 불렀다. 그리고 암두는 대부분의 선사들이 일상적 삶에서 이 말후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가 대야를 엎어버린 그 행위는 바로 그의 말후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암두와 설봉의 가장 큰 차이는, 암두는 그 말후구를 자기 혼자 독점하고 타인에게 허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설봉의 후덕함과 우직함은 말후구를 자기는 말하지 아니하고 남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날카로운 암두에 비해 아둔한 듯이 보이는 설봉의 교육자적 위대성이 있다. 설봉의 이러한 우직함과 후덕함이 禪宗의 二大門을 낳게 만든 것이다. 설봉은 위대한 교육자였다. 본칙의 주인공 雪峰義存(822∼908)은 泉州(福建省) 安南사람이요, 속성은 曾氏다. 長慶 2년에 태어났다. 그 집안이 世世로 부처님을 모시는 독실한 불교집안이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설봉은 태어나 강보에 싸여 있을 때부터 고기 냄새를 맡으면 코를 씰룩거리며 싫어했고, 범종 소리를 듣거나 걸린 탱화를 보면 감동을 받는 얼굴을 지었다고 한다. 불과 12살의 어린 나이에 出家했고 17살에 落髮을 하였고, 후에 幽州 寶刹寺에 가서 受戒하였다. 24세 때 會昌의 破佛을 당하였다. 설봉의 삶을 묘사하는 말에 「삼상투자, 구도동산(三上投子, 九到洞山)」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投子山에 세 번 올랐고 洞山에는 아홉번이나 갔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投子란 舒州(안휘성)의 投子大同(819∼914)을 가리킴이요, 洞山이란 瑞州(강서성)의 洞山良价(807∼869)를 일컬음이다. 그가 스승을 찾아 헤매는 구도의 행각이 그만큼 진지하고 집요하고 아둔했다는 뜻이다. 원오도 이를 가리켜 그의 구도의 자세가 「不妨辛懃」하다는 표현을 썼다. 「신근(辛懃)」이란 말은 매우 고생스러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설봉은 어디를 가든지 큰 나무밥통(漆桶)과 나무주걱(木杓)을 지고 다니면서 남이 하기 싫어하는 식사당번 노릇을 도맡았다(到處作飯頭). 후에 말하지만 그의 언어에 인간을 가리켜 「새카만 밥통」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새카만 밥통이야말로 그에게는 무명(無明)에 갇힌 인간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바로 그의 기나긴 반두(飯頭)행각은 바로 이 밥통의 어두움을 깨치는 대각을 위한 구도의 신근이었다. 우리가 요즈음 쓰는 말에 아둔한 녀석들을 불러 이 『밥통 같은 새끼』라 하는 것도 아마 이러한 선종의 언어의 영향일 것이다. 설봉이 동산에게 와서 식사당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동산이 쌀을 씻고 있는 설봉에게로 와서 물었다. 『뭘 하고 있는가?』(作什匿?) 이에 설봉이 대답하기를 : 『쌀을 씻고 있지요』(淘米.) 『돌을 일어 쌀을 내버리는 게냐, 쌀을 일어 돌을 내버리는 게냐?』(淘沙去米? 淘米去沙?) 『돌과 쌀을 함께 내버리고 있습니다』(沙米一齊去.) 『그럼 대중은 뭘 먹는단 말이냐?』(大衆喫箇什匿?) 이때였다. 설봉은 씻던 쌀 그릇을 확 엎어버렸다.(峰便覆盆.) 그러자 동산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인연은 덕산에 있다』(子緣在德山.) 그리고 설봉으로 하여금 덕산을 찾아가 뵙도록 했다. 사실 이 장면의 대화도 실제로 어떠한 의미의 고리들이 연결된 것인지 솔직히 말해 나도 아는 바가 없다. 허나 이 장면에서 드러나고 있는, 대선사들의 번뜩이는 기지는 참으로 우리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감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돌을 씹는다는 것은 참으로 김새는 얘기다. 그런데 밥과 돌, 그것조차 선가에서는 언어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요, 분별의 소치다. 『쌀을 일어 돌을 버리는 것이냐? 돌을 일어 쌀을 버리는 것이냐?』라는 동산의 질문에 설봉이 둘다 같이 내버린다고 하는 것은 차별의 세계를 버린다고 하는 뜻이 있을 것이다. 이에 동산은 다시 묻는다. 그럼 『뭘 먹지?』 동산의 물음은 事事無碍의 철저한 긍정이다. 그런데 설봉은 쌀그릇을 엎어버렸다. 설봉의 엎어버림은 철저한 부정이다. 「버림」이라는 언어의 本位의 深化라 할 수 있다. 이때 대선사 동산은 설봉의 기질이 덕산에게 더 부합됨을 감지한 것이다. 『너의 인연은 덕산에 있다』 만약 이때 동산이 설봉을 덕산에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설봉은 조동종(曹洞宗)의 한 門下生으로 머물렀을 것이다. 동산이 설봉을 덕산에게 보냄으로써, 덕산의 준령이 雪峰이라는 거대한 孤峰頂上을 얻게 되었고 그 봉우리에서 禪門이 크게 선양되었던 것이다. 위대한 인물이 교육되는 과정은 이와 같이 그 재목이 적재적소에 박히는 것이다. 설봉이 덕산에게 이르자마자, 다짜고짜로 물었다. 『초월을 지향하는 우리 으뜸가는 선종의 일중에서 저 같은 학인이 아직 뭐 좀 얻어먹을 게 있습니까?』(從上宗乘中事, 學人還有分也無?) 그러자 덕산은 냅다 설봉에게 한 방망이를 멕였다. 『뭐라고 했지?』(道什匿?) 『모르겠습니다. 내일 와서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不會. 至明日請益.) 『야, 이 미친 놈아 ! 우리 선종에는 해줄 말도 없고, 진실로 사람에게 줄 한오라기의 法도 없나니라』(我宗無語, 實無一法與人.) 이에 설봉은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因此有省.) <--------중략----------->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쇼생크감옥을 탈출하고나서 자유로운 몸이 되어 대지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환희에 몸부림치는 순간에 비유할 수 있을런가? 이것이, 이 순간이 바로 雲門·法眼을 길러낸 설봉이 깨달음에 이르는 최후·최초의 장면이었던 것이다. 오산의 설경에서 설봉은 설욕을 한 것이다. 이러한 장면에 깊이 내재한 의미는 다음의 일화에서도 리얼하게 드러난다. 후에 義存이 설봉에 주석하고 있을 때였다. 슬하에 1천5백명의 학생이 줄지 않을 그런 시기였다. 어느날 한 학생이 설봉에게 물었다. 『스님! 스님은 德山스님에게 가서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설봉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빈손으로 갔고 빈손으로 돌아왔네』(我空手去, 空手歸.) 공수거 공수귀! 나는 이 설봉의 명언을 좋아한다. 사실 스승을 모신다는 것은 世俗의 흔한 연이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타인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학생은 진정으로 선생에게서 배울 수 없고, 선생은 진정으로 학생을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걸출한 개인은, 진정한 覺者는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나의 깨달음이다. 따라서 禪에는 붕당과 학파가 있을 수 없다. 외로운 개인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설봉이 塵世를 초월할 수 있었던 이유였고 설봉이 그 많은 제자를 길러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내가 받은 것이 없을 때 인간은 비로소 남에게 나를 강요치 않게되는 것이다. 암두의 한마디,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가보가 될 수 없다! 그것은 禪宗史에 영원히 남을 萬古의 名言이다. 【本則】 擧 : 雪峰示衆云 : 盡大地撮來, 如粟米粒大. 抛向面前, 漆桶不會. 打鼓普請看.] 들어보자! 어느날 설봉스님께서 대중 법문을 하실 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이 대우주를 모조리 한 손에 움켜쥐어보니 꼭 좁쌀 한 톨 크기구나! 너희들 면전에 던졌건만 이 새카만 밥통 같은 녀석들 도무지 알아보질 못하는구나! 북을 쳐서 총동원령을 내리니 모두 나와 찾아보아라!』 이것은 아마도 설봉에 주지하고 있을 때, 그의 말년, 그 경지의 완숙함을 나타내는 공안일 것이다. 莊子의 절친한 친구이며 논리학파의 대가였던 惠施의 말에 이런 게 있다 : 『가장 큰 것은 밖이 없고, 가장 작은 것은 안이 없다』 『至大無外, 至小無內』로 알려진 이 명언은 임마누엘 칸트의 안티노미 논쟁을 거쳐 오늘날 천문학의 코스몰로지에 이르기까지 萬古에 부정할 수 없는 논리적 명제다.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의 실체론의 이원론을 부정한 방식도 알고보면 이 惠施의 논리적 구성의 기하학적 운용에 불과한 것이다. 실체를 자기원인(causa sui)적 무한자로 규정한다면 밖이 있을 수 없고, 밖이 있을 수 없다면 유일할 수밖에 없고, 유일하다면 전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神과 같은 절대적 초월실재는 부정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신이 곧 실체요, 실체가 곧 자연 그 자체(Deus sive Natura sive Substantia)라는 아주 기하학적 범신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를 스피노자적 의미에서 범신론이라면 범신론이라 말할 수도 있고 또 기독교적 인격신관의 부정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신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허나 무신론이야말로 유신론의 최고형태요, 무신론이야말로 근대성의 연원이요, 근대적 인간의 일차적 반성 관문이다. 무신론적 반성(atheistic reflection)을 거치지 않고서는 근대인(Modern Man)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맥락에서 禪은 이미 서양의 근대에 앞서 唐에 개화했지만 近代性(Modernity)의 모든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인성의 깨달음이다. 전 우주를 한 손에 움켜쥐어보니 꼭 좁쌀 한 톨 크기만하다는 雪峰의 발언은 문자 그대로 좁쌀과 우주 크기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요, 혜시가 말하는 至大無外와 至小無內의 근원적 동일성, 즉 마이크로의 세계와 매크로의 세계가 하나로 통한다고 하는 어떤 통찰을 말하는 것이다. 화엄적으로 말하면 一이 곧 一切요, 一切가 곧 一이라고 하는 통찰이요, 中論的으로 말하면 크다, 작다 하는 우리 일상언어 개념의 근원적 성립불가능성을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 좁쌀만한 우주를 우리 면전에 던져보아도 漆桶 같은 우리, 즉 무명에 갇힌 밥통같은 우리 인간들은 그 좁쌀을 인식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설봉은 대중에게 외친다 : 「普請看!」 여기 보청(普請)이라는 것은 원래 백장회해(百丈懷海)스님이 禪宗의 절간 생활의 규칙을 만들 때 규정한 法으로, 북을 치면 절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총동원령」을 의미한다. 보청이란 문자 그대로 「보편적으로 청한다」는 뜻인데 위로 큰스님부터 아래 시동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동원돼 절간의 일(공사 등)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설봉스님은 그 면전에 던진 좁쌀을 찾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렸던 것이다. 이 이상 도올이 갈등을 펴는 것은 衆生에게 죄가 되리라! 【頌】牛頭沒, 馬頭回, 曹溪鏡裏絶塵埃. 打鼓看來君不見, 百花春至爲誰開. 소대가리 사라지니 말대가리 돌아오네, 조계의 거울 속엔, 티끌 한점 없어라. 북치고 모두 나와 찾으라 했건만 그대 정녕 보지 못할꼬? 봄이 오네 온갖 아름다운 꽃 누굴 위해 피려는고 이 5칙의 송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雪峰스님의 설법과 雪竇스님의 頌사이에 어떤 논리적 연관을 찾기가 심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황당한 것은 바로 첫 구절, 「牛頭沒, 馬頭回」라는 암호적 의미가 너무도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후대의 선가에서는 「우두몰, 마두회」라고 하면 「눈깜빡할 사이에 변하는 경치」라거나 「탁월한 선승의 신속민첩한 出沒自在의 움직임」 즉 우리가 보통 쓰는 「神出鬼沒」과 같은 의미로 새기는 게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꼭 그러한 상투적 의미로 새길 수가 없는 것 같다. 牛頭, 馬頭란 원래 지옥의 문지기로 소대가리 형상을 한 귀신과 말대가리 형상을 한 귀신을 나타낸다. (『首楞嚴經』 卷八에 의거) 그래서 첫구절을 새기는 방식 중의 하나는, 雪峰 禪機의 峻烈함이 지옥 귀신들의 움직임을 꿰뚫어 볼 정도로 무섭다는 식으로 새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 「曹溪鏡裏絶塵埃」는 아주 명백한 해석의 틀을 가지고 있으니 그와 관련지어 첫구절을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다. 「曹溪」란 바로 육조 혜능이 의발을 전수받은 후에 주석한 절이 曹溪山 寶林禪寺기에 바로 혜능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조계의 거울 안엔 진애가 절한다는 말은 바로 혜능이 신수가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使惹塵埃』라 한데 반해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반문한 것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설봉 마음의 거울은 혜능이 「本來無一物」이라 한 것과도 같이 인간의 모든 개념적·도덕적 판단을 絶한 어떤 절대경지에 있었으므로 그 매크로한 세계와 마이크로한 세계가 하나로 융합되는 그러한 인식상태를 노출시켰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려는 설두의 송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우두몰, 마두회』를, 그냥 『소대가리 사라지니 말대가리 돌아온다』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티끌을 絶한 마음의 거울에 비치는 연속되는 事象으로 새기기도 한다. 봄이 가면 가을이 오듯이, 큰 파도가 밀려오다 또 작은 파도가 밀려오듯이, 그냥 의미없이 일어나는 이벤트의 연속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찌됐건 북을 쳐서 총동원령을 내렸어도 그대는 결국 그 좁쌀의 의미를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 다시 한번 묻겠다. 봄이 와서 百花가 怒放하건만, 과연 저 하나 하나의 꽃은 누굴 위하여 꽃을 피우는가? 과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목적론적 세계관이 여기 禪家의 機用에 멕힐 것 같은가? 잘 생각하여 보시게! 개화(開花)의 날을 기다리며… 나는 지금 이 글을 태평양 창공, 雲海를 넘고 넘어 검푸른 허공 위에서 쓰고 있다. 인간의 삶이 고귀할 수 있다는 것은 역시 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다는 기쁨때문이요, 그 창조는 오로지 我의 否定에서만 가능하다는 佛家의 가르침은 참으로 끝없는 깨달음의 여로인 것 같다. 諸法無我! 지난 6월3일 나는 은퇴성명을 했다. 그것은 내 내면적 갈등의 소산이건만, 그리고 굳이 사회화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건이었건만 한국의 言論諸賢께서는 나의 이러한 실존적 결단을 건강한 사회적 에너지로 전위시켜 놓았다.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은퇴성명을 낸 후 곧 뉴욕을 거쳐 하바드대학을 다녀왔다. 나는 9월12일 뉴욕의 퀸즈칼리지 대강당에서 우리 동포님들께 『나는 인류문명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내가 82년도 하바드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후 미주에서 행하는 첫강연이 될 것이다. 이 행사와 관련하여 잠깐 다녀오게 되었는데 교포사회의 여러분들이 나를 너무도 따뜻하게 맞이하여 주셨다. 그리고 나의 은퇴 결단을 내 내면의 고백 그대로 푸근하게 받아들이고 존중하여 주었다. 이 모든 강연계획과 여행을 마련하여 주신 맨해턴 32가 고려서적 최응표(崔應杓)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나의 강연이 IMF한파로 같이 실의에 빠진 우리 동포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과 용기와 선진적 자각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서울대학교 천연물과학연구소,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의 세 교수직으로부터 떠난다. 그리고 아쉬웁지만 장안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도올한의원의 문을 닫는다. 7월2일까지 환자를 보고 의사로서 수업 생활을 일단 마감지을 것이다. 이상의 열정을 불키웠던 수많은 수강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그리고 치유의 믿음을 가지고 침을 든 나의 손을 성스럽게 지켜주었던 환자들의 눈물어린 얼굴들,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사회적 실천의 두 해였다. 진보와 보람의 느낌으로 충만했던, 환영의 동굴을 벗어난 죄수의 찬란한 행보와도 같은, 태양 아래 빛난 리얼한 삶이었다. 만족은 권위를 낳고, 보람은 자신과 자만을 낳고, 도덕적 선업은 선적 가치의 고착을 낳는다. 나는 또다시 無爲로 돌아간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해서 불안과 초조와 기대와 절망으로 가득찬 소년의 로맨스로 나는 다시 돌아간다. 나는 끊임없이 방황하리라. 저 無의 영겁으로! 앞으로 오로지 침술이 작동하는 몸의 원리와, 그 원리의 인식과, 그 인식 구조의 기술에 남은 생애를 바칠 것이다. 오로지 나는 위대한 저술로 내 삶의 위대함과 천박함의 갈림길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한국사회에 행하는 유일한 봉사의 루트는 7월과 1월에 인텐시브코스로 열리는 한양 동숭동 도올서원강의가 될 것이다. 도올서원에는 진리를 갈구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날로 날로 모여들고 있고 그들은 『素麵故新』이라는 잡지도 매월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나는 요번 7월에는 도가의 성전 『莊子』를 강의한다. 자신의 동·서문명 탐색이 외롭다고 느꼈던 많은 젊은이들이 도올서원에 와서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철학적 대화와 예술적 감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삶의 새로운 비전을 발견한다. 동양의 고전뿐 아니라 서양의 고전도 강독되며 셰익스피어 등 고전적 연극이 무대를 펼친다. 나는 도올서원에서만은 끊임없이 열정적인 강의를 할 것이다. 그대들의 자녀들을 (대학·대학원 재학생에 한함) 도올서원으로 보내달라! 나는 그들에게 도덕적 삶의 자세와 명철한 이성과 편견 없는 지식과 흔들림 없는 상식을 심어줄 것이다. 한국의 뜻있는 건아들이여 도올서원으로 오라! (문의는 언제나 통나무출판사로! 744-7992) 모든 주기적 활동을 중단한다는 나의 은퇴계획에 따라 나의 「신동아」 『벽암록강화』도 내달 8월 제6화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시사월간지에 이처럼 방대한 학술언어를 기재하는 파격을 기쁨으로 수용해준 전진우부장 이하 신동아 諸友여러분께 오늘을 같이 사는 지성인으로서 감사와 아쉬움을 전달한다. 오늘의 絶筆이 인류사에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문화의 고유한 휴머니즘의 가치로 다시 개화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자! 아주 조용히, 아주 조용히…. 1998년 6월 9일 KAL기가 날짜변경선을 건널 때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mail.dongailbo.co.kr 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