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4월 14일 화요일 오전 11시 41분 12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식 속의 무한 순환 번호 : 16/2963 입력일 : 98/04/14 10:30:43 자료량 :68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 식 속의 무한 순환 지난호에 아뢰야식이 종자가 분열해서 주관과 객관, 사람과 환경을 만든다 는 유식의 주장에 대해서 몇몇 독자가 이의를 제기해 왔다. 사람이 보거나 말거나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체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있고, 한가지 실재하 는 사물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공통된 의식을 가지게 되는데,사람의 인식 과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저 실재를 어떻게 식의 분열로 설명하느 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서 전에 살짝 언급한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선 불교는 인간존재와 관련이 없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이 다. 만동자가 석존에게 세상의 시간적 공간적 끝, 정신과 육체의 동일 여부, 사후의 존재에 대해서 물었을 때 석존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독화살을 맞은 사냥꾼과 불의 비유를 들었다. 사냥꾼이 독화살에 맞았을 때 그 화살을 쏜 사람, 화살의 재질, 독의 종류, 날아온 방향 등을 철저히 조사한 다음에야 화살을 뽑으려고 한다면 그 조사 가 끝나기 전에 사람은 죽고 말 것이다. 또 켜져 있던 촛불을 꺼지게 했을 경우, 그 불이 있느냐 없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연료가 있으면 언제라도 불은 살릴 수 있고, 또 연료를 제거하면 불은 다시 숨기 때문이다. 독자의 질문은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있다 '는것은 사람의 가정일 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상태에 있아뢰야식 속에 저장돼 있던 `업'종자가 현실의 행위를 낳고 현실에서 짓는 업이 다시 `식'종자를 낳는다. 봄과 가을이 다르고 10년전과 1백년후가 다르다. 한 순간도 동일하게 존 재하는 것은 없다. 변하는 상태에 있는 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일 뿐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자기의 시점에 서 어느 한 때를 중심으로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서울 방향 경부고속도로가 끝날 지점 양재동 오른편에 윤봉길의사 기념관 이 있고, 그 옆에 수십 그루 집단으로 흐드러지게 핀 목련꽃이 보인다. 며칠 전에 온 비를 맞아 꽃잎이 많이 떨어졌었다. 저 꽃은 피고 있는가 지고 있 는가. 사람은 저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핌과 짐, 있음과 없음, 아 름다움과 추함, 좋아함과 싫어함, 살아있음과 죽음, 선과 악 등으로 의미와 가치를 붙여서 본다. 사람의 마음을 제거한다면 저 꽃들은 자연의 흐름 즉 끊임없는 변화일 뿐 이다. `있다'와 `없다'가 없는 상태에 있다. 사람이 자기가 정한 이름과 개념 을 붙여놓고는 실재의 객관 세계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꽃에 대해서도 다겁생래로 축적해 온 자기의 업을 따라 이름과 개념을 붙 이는데 사랑, 미움, 만남, 이별, 젊음, 늙음, 건강, 병, 태어남, 죽음, 행복,불행 등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의 분별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유식은 바로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식이 주객으로 분열해서 자기가 지어낸 것을 자기 가 본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인식과 관련없는 객체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현실의 행위가 식종자에 게 영향을 미치는 훈습에도 연결된다. 아뢰야식 속에 저장되어 있던 업 종 자의 습관이 현실의 행위를 낳게 되는데, 현실에서 짓는 업은 다시 아뢰야 식을 훈습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행위는 아뢰야식을 벗어나지 못 하고 결국 그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 나온다. 그렇다. 아뢰야식이라는 식종자가 고정체로 있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연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편의상 식종자가 현실의 업을 낳고, 현실의 업이 식종자를 훈습하고, 다시 훈습을 받는 식종자가 새로운 식종자 를 낳는다고 구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우 리는 아뢰야식의 속에서 맴도는 셈이다. 한 발자국도 아뢰야식 밖으로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어떤 이는 마음 밖의 존재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할 지 모른 다.최근에 탐사한 화성이나 수많은 별들을 떠올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역시 우리가 정한 이름일 뿐이다. *발행일(1669호):1998년 4월 14일 , 구독문의 (02)730-44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