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맧) 날 짜 (Date): 1998년03월26일(목) 14시31분09초 ROK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무아와 나의 기능 불교신문사(천리안)에 가보았더니 좋은 글이 있어서 퍼옴니다. ------------------------------------------------------------- 번호 : 26/56 입력일 : 97/09/22 11:41:15 자료량 :75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무아와 나의 기능 불교의 기본 교리는 연기법이고, 연기법은 모든 것이 의존 관계에 있다고 가르친다. 의존 관계에 있다는 것은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을 뜻하고, 이것을 나에게 적용시키면 나의 실체가 없다는 것이 된다. 즉 무아라는 말 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생상활에서 "나"라는 말을 쓰고 있다. 나라는 것 때문에 나가 없다는 말도 있게 된다. 불교의 업사상에 의하면 선악의 업에 따라서 육도에 윤회하는데, 만약 나가 없다면 윤회의 주체가 무엇인가. 또 조사스님 들은 "네가 바로 부처이다"라고 가르친다. 일상적으로 부르는 나, 업의 주체로서의 나, 본래 부처로서의 나는 어떻게 다르며, 이 나들이 어떻게 무아의가르침과 공존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떠오 른다.무아를 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나의 실체와 기능을 나누어서 생각해야 한다. 연기의 원칙에서 나오는 무아는 나라고 하는 고정적 실체가 없다는 말이지, 현실에서 움직이는 나로서의 기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가령 불은 고정적 실체가 없다. 연료가 없으면 불이 꺼진다. 연료를 공급하 고 불을 붙이면 다시 불이 생긴다. 불이 타고 있을 때, 그 불에 고정적인 실 체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연료가 다 타고 나면 불은 꺼질 것이기 때문이 다. 또 불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만약 불에 독자적이고 고정적인 실체가 있 으려면 항상 꺼지지 않아야 한다. 연료가 없더라도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불은 연료에 의존해 있 다. 그러므로 불에 독자성은 없다. 음식을 만들고 방을 따뜻하게 하는 좋은 불과 재산과 산을 태우는 나쁜 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불이 좋 게 쓰여지기도 하고 나쁘게 쓰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체가 없다는 것, 즉 연료에 의존해 있다는 것이 불의 기능조차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독자성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불의 기능은 있을 수 있다. 성냥불이 초에 옮 겨 붙어서 촛불이 될 수도 있고, 촛불이 옮겨져서 다른 불이 될 수도 있다. 불에 고정적인 독자성이 없으면서도 불의 기능은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우 리의 "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나라고 하는 고정적인 실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몸 과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동 즉 업은 연속성을 가진다. 악업은 나쁜 결과를 낳고 선업은 좋은 결과를 낳는다. 거지와 어울려서 살아온 사람은 거지처럼 행동을 하기가 쉽고, 귀인과 어울려서 살아온 사람은 귀인처럼 행동하기가 쉽다. 나에게 고정적인 실체는 없지만, 행동을 하고 그 습관은 담아 두고 전달 시키는 기능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적이고 고정적인 주체가 없이도 윤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무아라면 윤회의 주체가 무엇이냐"라는 물음에는 윤회하려면 반드시 어떤 고정적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전제를 바로잡지 않고 바로 "나의 기능"을 말하면, 이것을 다시 고정적이 고 실체적인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윤회의 주체"라는 말을 피해야 하고, 만약 사용한다면 실제 로는 주체가 없는 기능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만약 고정적이고 실체적인 나가 없이 윤회한다면 선악의 업이나 나에 대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하는 것이다. 윤회하는 것이 나가 아니라면, 악업을 짓든지 선업을 짓든지, 또 지옥에 가든지 천상에 가든지 상관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짜 나에 대해서 물을 필요가 생긴다.모든 것이 의존 관계에 있 어서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어서 공하고, 공하므로 나가 없다면, 이것을 뒤 집어서 생각할 수가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독자의 나가 없다는 것은 하나 하나에 자기 이외의 다른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나에 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고 결국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말 이다. 이렇게 보면, 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나 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가 잘못된 것이다. 진짜의 나는 개체가 아니라 우 주 전체인 것이다.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나라면, 나는 악업과 지옥에 대해서 걱정해야 한다. 악업을 쉬게 하고 지옥을 소멸해야 한다. 내 가 개인적으로 지옥에 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나 속에 지옥이 남 아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교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개별의 나와 우주의 나, 거짓 나와 참 나, 작 은 나와 큰 나라는 말을 쓴다. 작은 나는 개체로의 나를 가리키고, 큰 나는 우주 전체로서의 나를 기리킨다. 조사스님들이 부처라고 하는 "나"는 이 큰 나 또는 참 나를 뜻한다. <발행일(1641호):1997년 9월 16일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