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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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02월03일(금) 18시24분47초 KST
제 목(Title): 참선.. 질문하신 분께..


참선에 대하여 질문한 분이 있었는데,
제가 근무하는 곳의 메일 환경이 아직 완성형 한글을 제대로
제공하지를 못하고 있어서 부득이 이곳에다 올립니다.

1. 참선은 집중명상이 아닙니다.

 명상 특히 집중명상은 불교에서는 관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전래적으로 대승불교권에서는 관법수행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관법은 큰 번뇌로 작은 번뇌를 가려서 잘못된
현상을 깨달음으로 착각할 수 있는 위험이 많아서 입니다.

 처음에 참선에 입문하면 자세와 호흡법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사실 호흡은 참선과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수식관과 묵조선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참선은 집중명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주시 명상입니다.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주시, 주의를 민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번뇌를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번뇌를 민감하고 자연스럽게 주시하는 것을 익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뇌를 틀어막기 위하여 한 곳에 집중하면
참선은 실패합니다.  

2. 묵조선이란?

 임제 스님 이전인가? 그 때는 화두선이란 참선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선은 모두 묵조선입니다. 묵조선은 번뇌를
주시하는 것입니다. 번뇌가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번뇌는 곧 생명의 동작을 뜻합니다. 번뇌를 주시한다는 것은
"밥 생각이 났을 때"
어 밥 생각을 했네. 참선 잘 못 하고 있네. 이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백지위에 그림이 그려지듯이 모든 생각들이 그림이 그려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번뇌는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내적인
생명 입니다. 그렇게 그 생명을 자연스럽게 쳐다보는 것이
묵조선입니다. 이 묵조선을 하다 보면 눈 앞에 대상이 있으면
금방 마음을 대상에 빼앗깁니다. 그래서 면벽을 하는 것입니다.
선은 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그렇지만 묵조선이
어렵다는 것은 마음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사념이 나왔다
사라졌다 하는 것, 그리고 사념이 끝없이 계속된다는 것은
관찰이 되어도 그 사념의 주인을 알 기가 힘이 들어서 훗날에
화두선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묵조선을 하려면 먼저 경전을
암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야심경이 짧고 불법의 핵심을 말하고
있으니 반야심경을 108독 정도 하고나서 선을 하는 것이
편하실 겁니다. 그리고 좌선을 하는 경우가 아니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도 자꾸 내면을 보아야 합니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수시로 관찰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사념이 일어나는 근원지를 면밀하게 추적을 하여야 합니다.
왜 이러한 생각이 일어나는지를...
그래도 묵조선은 어렵습니다. 사실 일상생활 전체가 묵조선인데도
어렵습니다. 무심히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깨달음이란 것은 단순히 집중하거나 주시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함께 합니다. 그러니 묵조선은 꼭 지혜를 증장시키는
경전의 암송과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화두선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참으로 선은 이 묵조선인데도
말입니다. 선은 대상을 취하지 않으면서 생명을 보는 것입니다.

3. "이 뭐꼬"

 묵조선이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약간의 간접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화두선입니다. 화두는 많지만 화두를 받기 어려우면
묵조선하는 것과 동일하게 하시면서 사념이 일어나는 이것은
도데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하십시요. 이 사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러면서 사념의 시작과 사념의 끝을 추적하면서 사념의 주인공은
무엇일까? 그렇게 의심을 하는 것입니다.

 이럴때도 주의해야 할 것은 의심이 잘 안된다고 강제로 이 의심을
주문외우듯이 하시면 안됩니다. 번뇌가 치성해서 의심이 안되어도
의심으로 번뇌를 누르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의심을 챙기셔야 합니다.

4. 염불

염불을 흔히 복이나 비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염불은 선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견성오도를 정밀하게 해부하여
만든 수행법이 염불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관법이나 고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으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방법들에 대한 미련을 다
버려서 깨달으신 것입니다. 난 도저히 할 수가 없네.
그렇게 포기했을 때, 샛별이 있었고, 그 순간 샛별과 하나라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샛별 뿐만 아니라 그 무엇이 있어도 그 순간
견성오도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나무(南無)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무하는 것이 억지로
되지를 않습니다. 나무하는 "나"가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하신 모든 고행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 고행이 다 무익하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무"하는 그 나가 내가 아니라 무한생명인 부처라는
것을 일러주시고 그 부처의 이름은 "아미타불"이라고 말해주십니다.
"나무"하는 나는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불은 무한생명, 절대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대승불교의 모든 경전은
이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부처님께서 열번만 염해도 극락왕생한다고 말한 것이
이 여섯 글자입니다.

 실제 이 염불이라는 기본 수행법이 그대로 묵조선으로 계승이 됩니다.
육조단경의 내용은 곧 염불에 기반을 둔 묵조선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외는데 또박 또박 평조로 글 읽듯이 합니다.
 "나의 참생명, 부처님 생명!" 이것이 곧 화두의 역활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너의 이름은 아미타불"이다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 염불은 모든 것을 아미타불에게 맡기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염불도 먼저 반야심경 독송을 하면 더 좋습니다.
  
 선을 함께 지도할 사람이 가까이에 없으면 염불을 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5. 참선이 잘 되고 있는 지는 무엇으로 알 수 있나?

 참선이 잘되고 안되고를 우리가 판단하려면 단 한가지 입니다.
번뇌가 갈 수록 많아지면 참선이 잘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이 밝아지면 먼지가 더 잘 보이듯이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면
번뇌가 더 많이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번뇌가 전보다
많아졌고 번뇌때문에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이 들면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번뇌가 많건 적건 간에 상관없이
"주시"할 때는 계속 주시하시면 되고
"의심"하는 경우는 계속 의심하시면 되고
"염불"하는 경우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소리를 귀로 들으시면서
"절대무한"의 의미를 새깁니다.

6. 참선할 때의 두려움이나 장애의 원인

 첫째. 참선이나 염불하면서 결과를 기대하는 경우
       삼매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꼭 병이 생깁니다.
       참선할 때, 한소식을 기대하거나 깨달음을 원하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염불할 때, 아미타불의 형상을 그리면 안됩니다.
       대상을 취하게 되어 내면의 탐색에 실패합니다.
       급한 마음은 큰 장애요소입니다.
 둘째. 믿음의 부족
       믿음이 부족하면 꼭 병이 생깁니다. 믿음의 내용은 앞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세째. 주문외우듯이 의심하는 경우
       백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7. 장애의 극복

 두려움이 생기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주시해야 합니다. 두려움도
번뇌이고 사념입니다. 그렇지만 두려움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중단했다가
다시 또 하면 됩니다. 두려움은 걱정거리가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일 뿐입니다. 그리고 수행은 갑자기 많이 했다가 중단했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10분이라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면 10분을 해도 하루종일 한거와 다르지 않습니다.

 일체 모든 바라는 마음, 구하는 마음, 원하는 마음이 없이
하는 것(깨달음 마져도) 그것이 대승불교의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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