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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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01월12일(목) 12시58분49초 KST
제 목(Title): 불법승은 자유.평등.평화


삼보(佛:자유,法:평등,僧:평화)

불교에서는 불.법.승을 삼보(세가지 보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삼보가 단지 불교라는 교단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된다는 것은 곧 생사에서 해탈하여
대 자유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부처란 자유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깨달음은
없던 것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발견한 것
입니다. 흔히 선가에서 말하는 돈오(단밖 깨달음)는 바로
깨달음이 성취가 아니라 있는 것의 확인이기 때문에 돈오라는
말이 성립이 됩니다. 성취라면 돈오가 아니라 차례차례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점오가 깨달음이겠지만, 불교의 깨달음은 돈오 즉
이미 있는 것을 확인하여 아는 것입니다. 이외에 단계적으로
올라갈 경지를 설정하는 가르침은 불교의 입장에서는 모두
외도라고 말합니다. 그 외도설이 하도 많아서 거기에 대응한 내용이
와전되어서 마치 불법이 점차로 올라가는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착각되기도 하지만 불교는 돈오의 깨달음만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돈오의 깨달음을 통하여 자유인이 되고 보니까
석가모니 부처님만 부처가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다 부처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 내용이 法(진리)이라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은 곧 평등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평등한 세계에서
모든 중생들이 평등을 알고 지내지를 못하고 언제나 상대적인
불평등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기에 진리에 어긋나는 고통의
윤회고를 반복을 합니다. 언제나 싸움이 그칠 날이 없고 본래의
대 자유의 생명을 스스로 제약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평등한 진리를 확인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 僧입니다.
승은 곧 다툼과 싸움을 중지하고 평화를 통하여 평등을 회복하고
대 자유의 해탈인으로 만끽하면 살기 위하여 수행 모임을 만들었고
그 모임의 특성이 곧 평화입니다.

이렇게 자유.평등.평화를 상징하는 불법승의 내용은
우리들의 인식 한계속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절대성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라서 절대적인 인식으로의 전환이 없으면
이미 이루어져 있는 자유.평등.평화의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곧 자유.평등.평화입니다.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추구하지만 어디 지금까지 이 세가지를
공통적으로 함께 얻은 적이 있을 까요.
인류는 이러한 가치를 얻고자 무척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보장하려는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담보로 해야 했고
평등을 보장하려는 공산주의는 부자유를 담보로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시대에 따라 서로의 영역 주장을 위하여
평화가 없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여기서 수정자본주의나 수정사회주의가
발생했어도 자유.평등.평화가 함께 인류에게 제공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붇다 석가모니는 자유.평등.평화를 모두 함께 얻었습니다.
얻었다기 보다 이미 자유.평등.평화속에 살고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불.법.승 삼보...
이것은 우리 인류의 최대 가치의 확인입니다.

불.법.승 삼보가 자유.평등.평화를 의미한다는 것
상식적으로 알아두어도 좋겠습니다.

한탑스님 법문을 듣고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젊은 사자님들 주저하지 마시고
대각성의 절대 삶으로 뛰어들어 영원하고 무한한
자유.평등.평화를 누리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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