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11월07일(금) 10시30분22초 ROK 제 목(Title): 전생이야기... 예전에 춘성 스님이란 선지식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만해 스님의 제자이시기도 합니다. 이 분은 욕쟁이 스님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욕을 잘했는데 대통령 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법문을 들으러 왔을 때에 육영수 여사에게 "야! 너 나하고 Sex 한번 하자!!" 라고 다짜고짜 말해서 경호원들을 경악케 한 분입니다. 6.25가 끝나고 의정부 망월사가 폐허가 되어서 춘성 스님이 중창불사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재목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의정부 경찰서에 끌려가셨습니다. 그때 취조하던 형사가 조서를 꾸리기 위해서 물었습니다. "당신 본적이 어딥니까?" 그때에 춘성 스님 말씀이… "우리 아버지 X요…" 그래서 형사가 화가나서 "아니 그것 말고 당신이 태어난 곳이 어디냔 말이요" 그러자 춘성 스님 말씀이… "우리 어머니 Y 요…." 전생이 어찌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본적이 아버지 X고 나온 곳이 어머니 Y인데 전생이 없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아버지 어머니 없이 나온 사람이 있다면 전생이 없다고 말해도 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자꾸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전전생은 그럼 어디인가 하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전전생입니다. 전전전생은 그럼 어디인가 하면 이것도 그 다지 어렵지 않게 증조부, 증조모, 할머니의 아버지, 할머니의 어머니, 외할아버지의 아버지, 외할아버지의 어머니, 외할머니의 어버지, 외할머니의 어머니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어머니 뱃속에서 뚝 떨어진 그 사건만 두고서 전생을 이야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만일 제가 여기에서 저의 전생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오늘부터 시작해서 저의 육신이 썩기 시작할 때 까지 이야기를 해도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은 무지막지한 전생의 인과로 지금의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느낄 때에는 언제인가 하면 자신의 현재가 전생의 결과라는 사실을 납득하지 않을 때에 고통에 휘말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윤회의 고통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자신에게 지은 결과로서 지금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자신이 지은 것을 돌리면 다 해결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은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전생이 없다고 하면서 지은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핑계와 상황론 운명론 노예론 종속론에 돌리기 때문에 윤회의 고통인지도 모르면서 윤회의 고통을 맞이합니다. 윤회의 고통인지를 알면 다행인데 그것 조차 모르기 때문에 정신없이 윤회의 고통에 휘말리는 것입니다. 알고 윤회하는 것 보다 모르고 정신없이 윤회하는 것이 고통이 더욱 심한 법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윤회가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에서 보면 그대로 열반입니다. 월산 스님의 열반송을 소개합니다. 월산 스님은 만주의 마적단 출신이니 강도 출신입니다. 강도 출신의 선지식이 입적하면서 남긴 마지막 이야기가 참으로 단촐 하면서 소박합니다. 일생을 돌고 돌았으나 한 걸음도 옮긴 바 없나니 본래 그 자리는 하늘 땅 보다 먼저이니라. 하늘 땅 보다 먼저이신 부처님이라는 우리 생명의 자리에서 일생을 돌고 도는 윤회가 윤회가 아닙니다. 윤회를 믿지 않고 또한 윤회가 끊어 지는 큰평화를 믿지 않고 윤회의 고통을 모르고 당하던지 아니면 당하지 않던지 그것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