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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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10월17일(금) 11시27분02초 ROK
제 목(Title): 사랑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이것이 사랑이라는 생각이 없이
사랑을 줍니다.

사랑을 받아본 것 이상으로 사랑을 주려고 할 때에는
주려고 하는 사랑에서 받아본 사랑을 뺀 것 만큼
계산이 작동하여 배신의 고통에 휩싸이게 됩니다.

사랑을 받는 것은 사랑을 준 쪽과는 아무 관계없는 
순전히 사랑을 받은 사람의 느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주는 쪽에서 사랑을 주고 있음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준다는 것도 모르고 주기에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자비라고 합니다.

자식이 기쁘면 부모도 함께 기쁘고
자식이 슬프면 부모의 마음은 더욱 슬퍼집니다.
자식이 기뻐하기에 부모의 역할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자식이 슬퍼하기에 부모의 역할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은 같아도
자녀들이 느낀 사랑은 다릅니다.

사랑이란 이해하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말이나 생각으로 따져서 사랑은 이런 것이구나라고
해석하고 논단하는 것은 참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이란 형체를 표현할 수 없는
생명력이 작용됨을 느낍니다. 그리고 끝내 벗어나려고 하더라도
돌아와 부모님에게서 편히 쉼을 그리워 찾아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이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은 무한한 사랑을 받았음에 받고 있기에 
준다는 생각 없이 사랑을 행합니다.

사랑은 주는 쪽의 느낌이 아니라 받는 쪽의 느낌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말은
그러므로 진실하지 못합니다.

주는 쪽은 준다는 느낌이 없어야 만이 사랑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숨을 쉬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그 본질은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숨 쉬고 말하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표현 불가능한 사랑이 숨 쉬고
표현 불가능한 사랑이 말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나는 사랑을 주겠다고 하는 분들에게서는
언제나 계산이 뒤따르는 미움의 씨앗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무한한 사랑 속에 있음을 느끼고
사랑에 보답할 뿐이지
받지 않은 사랑을 억지로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동등하게 한 없는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 스스로 빈곤감을 갖고 있는 마음의 틈을 열기 위하여
그리고 오히려 마음을 더욱 닫아 버리게 하는 결과에 조심하기 위하여
세심함을 기울임을 따라 가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불교입니다만

우리 몸의 세포 하나 하나 마다에
따뜻한 태양의 느낌을 받아들여 세포를 편히쉬게 하는
일광욕의 느낌과 같은 사랑이
몸과 마음의 본질로서 항상하는 사실을 향하여 생각을 열때에
세상에서 가장 쉬운 당연함이 불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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