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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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10월08일(수) 10시12분13초 ROK
제 목(Title): 참나는 무아로서 있을 뿐입니다.



불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불교에서는 진아를 궁극적인 것으로 설정하지 않습니다.

진아라는 말은 불가에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써온 말입니다.

그러나 역할현상 배후에 진아가 있다.
혹은 진아위에 역할현상이 있다와 같은 말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불가에서 문제를 삼는 것은 배후에 있다와 위에 있다라는 말입니ㄷ.

다음과 같이는 말할 수 있습니다.
생각 사이를 관하여라.
그러나 이것도 생각과 생각의 틈새를 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각에서 한 틈도 떠나지 않고 생각에서 공간적 시간적 이동없이
거슬러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역할현상의 배후도 아니고
배경위에 떠도는 것이 생각인 것도 아닙니다.

진아위에 역할현상이 있다는 말 자체로 이미 진아와 역할현상은
만날 수가 없는 것일 뿐입니다. 역할현상의 배후에 지켜보는 자가 있다는
것 역시 만날 수가 없는 말일 뿐입니다.

불가에서는 그와같은 말은 외도의 말이라고 합니다.
진아가 외도인 것이 아니고 지켜보는 자가 외도인 것이 아니라
역할현상의 배후에 지켜보는 자가 있고
진아위에서 역할현상이 있다는 말이 외도의 말입니다.

외도란 불교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진리가 아닌 거짓된 말이라는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진아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
궁극적인 근원을 뜻하는 말로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진아는 그저 가짜의 나라는 것에 대한 반대어로서 사용할 뿐입니다.
진아나 지켜보는 자는 궁극을 의미하는 언어로는
부적합합니다.

그리고 진아위에 역할현상이 있다는 말이나
역할현상의 배후에 지켜보는 자가 있다는 말은
부적합것이 아니라 외도일 뿐입니다.

가령 이것이 주는 외도적인 비진리성을 가리기 위하여
진아를 설명합니다. 진아는 주.객이 끊어진 곳에 있다.
그러나 있다라고 하는 것이 역할현상과 상대하는 말에 불과합니다.
또한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역시
진아는 역할현상의 반대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진아를 공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진아라는 말 보다는 공이라는 말이 더욱 근원적입니다.

지켜보는 자라는 말도 역시 똑같습니다.
아무리 우겨도 지켜보는 자는 그저 보여지는 대상체의 반대적인
의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불가는 진아나 지켜보는 자를 궁극을 말하는 말로서는
사용을 하지 않습니다.
진아는 가아의 반대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로서만 사용합니다.

불교와 유사한 이야기를 하는 깨달았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교는 아닙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관세음보살이란 이름을 듣고
지성으로 그 이름을 입으로 부르고 생각하면
모든 액난에서 벗어나느리라.

불에 빠진 자도 불이 그를 태우지를 못하고
물에 빠진 자는 물의 고난에서 벗어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은 일체 모든 생명의 괴로움을 건져주고자 하는
인연으로 그 이름을 관세음이라 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거기에 의심이 있거나 혹은 관세음보살이 아닌
나의 노력으로 하는 것을 방지합니다.

예를들면,
정말 불에 뛰어들어도 나를 태우지를 않는지를 보자.
이것은 믿음이 아닌 의심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염불하니 관세음보살이 어떻게 잘 돌봐주겠지.
이겻도 역시 믿음이 아닌 번뇌망상입니다.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관세음이란 근원명과
크로체님이 이름붙인 진아나 지켜보는 자라는 이름이
같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 즉 근본에 대한 명호에는 모두
근원의 힘을 끌어들여서 일체 번뇌망상을 다 불태워 없애는
지혜의 힘과 자비의 무너지지 않는 신력을
불러들이는 참으로 복된 이름들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지성으로 하면
관세음보살의 인연으로 모든 번뇌망상들이 다 소멸됩니다.

그러면 참나가 무아일 수 밖에 없음을
잘 알게 됩니다.

무아가 현상적 특성을 이야기 하기 위한
현상적 표현이 아니라
참으로 그러함을 잘 알게 됩니다.

진아나 지켜보는 자에는 그와같은 인연과 힘이
있지를 못합니다.

부처님은 살아있는 힘입니다.
말씀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석가모니불이 말씀한 말입니다.
관세음보살도 석가모니불이 말씀한 참다운 힘이고
지장보살도 석가모니불이 말씀한 참다운 힘입니다.

그러니 석가모니불을 믿어야지 어찌 크로체님을 믿고
진아니 지켜보는 자니 하는 이름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제 말이 의심스럽겠지만
크로체님도 관세음보살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지성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도록 하십시요.

그러면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거짓이 아님을 아시게 됩니다.

제 말을 믿지 않더라도
석가모니불의 말씀을 믿고 해보십시요.

그러나 석가모니불의 은혜로서 살고 있는 이 사람의
짧은 견해내에서도

진아나 지켜보는 자에는 그와같은 힘을 지칭하는 어떠한 것도
있지를 못합니다.

관세음이란 이름이 적확해서 관세음이란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거기에 적확치 않은 지켜보는 자를 붙이면
지켜보는 자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관세음의 힘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크로체님이
진아교나 지켜보는 자교 혹은 크로체교를 만드는 것은
크로체님의 자유입니다.
그러니 저의 말에 너무 개의치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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