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10월07일(화) 13시10분42초 ROK 제 목(Title): Re: 다시 원점이군요. 동일한 진아에서 서로 다른 역할현상이 나온 이유를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업과 역할현상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그렇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니 보편하게 잘 말씀하셨습니다. 진아만 설정되지 않았으면 무척 쉽고 보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아 즉 참된 나라는 것에는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그리고 읽는 사람들이 진아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참되다는 것, 동일하다는 것, 그것 밖에는 풀어나갈 수 있는 어떤 것이 없습니다. 오직 현상적인 역할현상이라는 것이 가아라는 말을 던져 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오랜세월동안 불교계의 선각자들이 참나를 이야기하면서 진아를 생명의 근원처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하지 안은 것은 "진아"라는 말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어렵게 만들고 크로체님이 상대방을 어리섞다고 몰아붙이게 되는 근원지가 "진아"라는 명사이고 지켜보는 자라는 명사입니다. 이름도 붙일 수도 없는 것에다 이름을 붙일 수도 없음을 쉽게 이끌어 내기가 어려운 명사를 붙였으니 어리섞고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 곧 "진아"인 것입니다. 석가모니(석가족의 성자)는 죽었으나 석가모니불은 죽지를 않았습니다. 불이란 곧 영생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역할현상에 의지해서 불교도들이 생사를 마주대하게 할 만큼 불교계가 다 그렇게 무식한 것이 아닙니다. 절에서 기도하고 예경하는 사람들이 가르침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비를 달라고 하는 것이고 역할현상으로 죽었다면 죽은 자에게서 어떻게 자비가 나올 수가 있겠고, 불교계는 다 무식해서 그런 뻔뻔한 행위를 강요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