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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1997년07월17일(목) 12시31분30초 KDT
제 목(Title): 졸업식때..



 저녁을 먹은 후 이곳에 있는 다른 대학원생과 같이 오게 되었다. 그 사람 말이,
요즘 서울서 교수 하나가 방문을 왔단다.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연구실
에 근무하는 유일한 한국 학생이기 때문에, 집 구하고, 라이드 도 좀 해 주고,
지금 연구하는 내용 과 그 랩에서 쓰는 프로그램 들에 대해서도 얘기 하고 한단다.
뭐 그냥 듣기엔 좋은 얘기지만, 실상은 밤에도 집에 못가고 같이 앉아서 물어보는거
대답 해 줘야 하고, 여기 저기 다닐때 같이 가 줘야 하고 하니까, 보통 피곤할
일이 아니다. 온 사람이야, 이왕 온거 되는 만큼 많이 하고 가자 하겠지만, 있는
사람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짜 화나는 일은 그게 아니란다. 그렇게 자기가 할때, 상대방이 고맙다
는 얘기도 하고, 잘 해주면, 화 날 건 아니지. 그런데, 마치 자기 학생 다루듯,
함부로 하고, 남들한테 전화 하면서, 아.. 뭐 여기 학생이 하나 있어서, 별
문제는 없다. 마치 학생이니까 당연히 교수를 모셔야지. 하듯 생각한단 것이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자식 있는 어른에게 말이다.

 이 얘기를 듣고, 내가 졸업식 할때 생각이 났다. 졸업식을 하니까, 가운 을
빌리러 갔다. 그땐, 석사 학생증을 내고 빌린다. 보통 그러듯, 빌려 주는 사람은
얘, 쟤.. 이놈 저놈 까진 안하더라도, 그냥 막 부른다. 나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항상 그렇게 부르는거 귀어 거슬린다. 어쨌든, 거슬리지만, 빌려서
졸업식을 했다. 식이 끝나고, 반납 하러 가는데, 받아 올땐 그냥 상자에 들어
있었지만, 가져다 놓을 땐 그냥 옷을 손에 들고 가서, 줄을 섰다. 그런데,
후드 가 다르니까, 이 아자씨가 알아 보고선, '박사님 여기 주시죠' 하고 내 옷을
받아다가 걸었다. 그리고 나는 나왔지. 어깨에 힘을 주면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역시.. 그래도 박사니까 사람들이 알아 주는군..' 그리고, 확실히 많은 부분이
변했다. '박사' 란 호칭을 달고 다니니까, 세상이 많이 편해진 것이다.

 그 후로 이 생각 할 때마다, 난 얼마나 창피한지 모른다. 거기 있던 후배들이
뭐라고 생각 했을까. 내 욕을 했을까. 아니면, 나도 빨리 박사 따야지 서러워
살겠나.. 그렇게 했을까. 그때 그렇게 새치기 해서 나와서 그렇단거 보다도,
어느새 내가, 평소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있단 걸 깨달아서이다. 

 잠시동안은, 그 아저씨가 잘못했다는 생각도 했다. 난 엉겁결에 그랬지만,
그 아저씬 그런,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박사 땄다고 강해 졌단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람이니 나쁘다. 그렇게 생각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게, 학교 전체가
아니 사회 전체가 그렇다. 그 아저씨는 학교 말단 직원 에게도 쩔쩔 맨다. 그
직원은 다른 교수, 교수는 보직 교수, 보직 교수는 총장, 그리고 총장이라도
교육부 실무 국장한텐 택도 없다. 물론, 그것이 어떤 업무의 종적 관계에 기인
하는 것이겠지만, 단순한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 인간 자체에 까지 종적인 관계
가 있는 양 하는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한참 동안은 이 사회가 큰 문제인 양 떠들기도 했다. 하나, 지금
가끔씩, 그런 그릇된 제도의 달콤함을 즐기는 나를 발견 하기도 한다. 무리하게
학생을 괴롭히는 교수 욕을 하지만, 어쩐지 내가 나중에 교수나 상사가 되었을때
그렇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슬그머니 목소리를 줄이고 한다. 사회가 어떠니
남들이 어떠니 하기 전에, 내 자신 추스를 수 있을까 자신이 없기도 하다.
내게 함부로 하는 윗 사람들 흉을 보면서도, 내 '아래' 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나도 모르게 목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래서.. 이곳은 어나니 가비지니까.. 주제가 있는건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존중' 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얘기다. 지위, 학벌, 재산, 그런거
가지고 쓸데없이 싸우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단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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