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blueyes (魂夢向逸脫)
날 짜 (Date): 2010년 06월 08일 (화) 오후 06시 16분 50초
제 목(Title):   죽기 전에



내게는 나보다 대여섯살이 어린 고종사촌이 하나 있었다.
과거형으로 얘기하는 이유는 그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고모댁의 1남2녀중 막내이자 아들이었는데, 고모가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명절이면 모여서 노는 친척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그가 죽은 것은 그가 여섯살 무렵의 설날이었다.
명절이었기에 고모부의 본가에 방문한 그는 어른들이 한창 정신없는 틈을 타서 
동네 개울가로 썰매를 타러 나갔고, 얼음이 깨지는 바람에 익사하고 말았다.
그게 내가 전해들은 전부였다.

나 역시 어릴적의 일이었기에 슬픔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다만 분위기에 눌려서 
평소처럼 까불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까지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일은 그 다음이었다.
유독 아들을 사랑했던 고모부는 그 일 이후로 식을 전폐하고 음은 알콜로만 
대신하셨다. (이것도 전해들은 얘기지만.)
그 결과로 간이 심하게 손상되어 바로 이듬해인가 고모부도 가족을 남긴 채로 
돌아가시고 말았던 것이다.
불행히도 돌아가시기 직전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서 임종하실 때의 
괴로와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버렸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의 나는 가끔 그 일을 생각하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남은 가족이 세명인데..
자식이야 또 낳으면 되는데..

가끔 TV를 보거나 책을 읽어 주며 무릎에 아이를 앉혀 놓고 있으면서 문득 
고종사촌의 일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고모부의 심정에 깊이 공감이 된다.
가끔은 얘가 나쁜 사람한테 유괴라도 된다면, 길에서 놀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하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칼이 솟구치고 만다.
(내가 어릴적 집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택시에 치인 적이 있었다.
울 엄마는 어떻게 그 소리를 듣고는 맨발로 뛰어 나와서 난리를 쳤는데, 그때도 
나는 고작 이깟일로 뛰어나온 엄마를 창피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아이를 꼭 안고 "고마와"라고 얘기를 하고,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말똥말똥 쳐다보며 "괜찮아" 그런다.

이러다 보면 부모인 내가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무너무 슬플 테니까.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해 망가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높은 확률로 내가 아이보다 먼저 죽겠지만, 그게 또 기대한 것보다 훨씬 
일찍이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전거도 가르쳐 줘야 하고..
장기도 같이 둬야 하고..
캐치볼도 하고 싶고..
함께 스노보드도 타러 가고 싶고..
공부가 얼마나 재밌는 것인지 알려 주고 싶고..
나중에 여친이 생기면 함께 평을 하고 싶고..
그리고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너도 꼭 이랬노라고 얘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난 그 중에 어디까지 함께 해 줄 수가 있을까.
문득 되도 않는 이런 생각이 머리 한켠을 차지하기 시작하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을 맞게 된다.
부모로써 해줘야 하는게 뭐가 있을까?
내 존재가 없어지더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나중에 내 생명의 끝을 느끼게 되었을 때에, 조금이라도 더 안도하며 눈을 
감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아이에게 하고 싶은 얘기들을 책으로 엮어 보고 싶어졌다.
물론 이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소망이었는데, 포도청 덕분에 손도 못대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여유로이 키즈질을 하면서도 말이다.

아마도 평소의 내 행태,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 그 
대로라면 누군가 내게 남아있는 시간을 말해줄 때까지 움직이진 않을 듯 싶다.
그때가 되면 난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줄까?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