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blueyes (魂夢向逸脫) 날 짜 (Date): 2010년 05월 25일 (화) 오후 02시 40분 50초 제 목(Title): 비오는 대학로 엊그제 일요일. 비오는 날이었다. 집사람이 모 사이트에 응모한 것이 당첨되어 대학로 소극장에서 있었던 유소년용 "키득키득 실험실"이라는 공연에 다녀왔다. 공연 시작 시간은 12시. 12시면 이미 반나절이 지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들이 그 시간에 맞추려면 무척 경황이 없어진다. 8시쯤 일어난 아이를 데리고 놀아주다가, 아침을 먹이고, 정확히 10시 20분에 집사람을 깨웠다. 12시까지 대학로에 가려면 11시 20분에는 나서야 했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을 정확히 1시간을 준 것이다. 하지만 태고적부터 그랬듯이 여자들의 시간약속은 지켜지는 법이 없다. 나가야 하는 시각 30분전에 얘기하든, 1시간 전에 얘기하든, 2시간 전에 얘기하든 항상 출발하는 시각은 예정보다 10분이 늦는다. 비록 공짜 표이기는 하지만, 계획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시간에 늦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탓에 나는 안절부절 하면서 운전을 했다. 이미 이런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기 때문에 별로 화가 나지도 않고, 늦는 사람도 아무렇지도 않게 늦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행여나 서둘러 운전을 하다가 사고라도 날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예민해져서 운전을 하게 된다. 하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하러 가는 것이 마냥 즐거운 아이는 도착할때까지 내내 쉬지 않고 내게 뭔가 말을 걸고, 질문을 한다. 운전을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대답을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운전을 하며 줄곧 같은 생각을 한다. "12시부터 1시간 공연이면, 나는 주차를 하고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을 수 있어." 그렇다. 높으신 분들의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운전기사의 역할을 그날도 해야 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시간이 인파가 붐비지 않는.. 오히려 새벽의 한산함이 느껴지는 그런 시간대여서 살짝 늦을 수 있었던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이제 차를 어디다 댄다? 10년전만 하더라도 대충 붙여두면 되었는데.." 유료주차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골목마다 "불법주차단속"이라는 팻말이 붙은 카메라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주최측 사정으로 2시간 연기됐대. 데리러 와." 이런. 또다시 내 계획이 죄다 무산되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12시에 공연 시작, 1시간은 자유시간!!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식사, 3시까지는 집에 귀가. 4시까지 본가에 가서 새로 샀으나 동작하지 않는다는 팩스 연결. 그 후 본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유있게 축구구경. (이 대목도 허탕이었다. 평가전이 일요일인줄 알았는데..) 아무튼 높으신 분들을 다시 차에 태웠다. 그래봤자 12시 10분. 이 분들은 이 시간이 아침식사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점심은 더더군다나.. 우선 주차를 하기로 했다. 아까 대충 둘러본 골목길을 이젠 샅샅히 뒤져 보지만, 역시 카메라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한때 대학로 죽돌이였던 데다가 잠시 사귄 여친이 살던 동네라서 이화장 근처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언덕 중턱에 차를 주차하고는 아이를 안고 우산을 쓰고 다시 내려와서 몇몇 문을 연 식당 중의 하나를 골라 식사를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아이한테 아이스크림을 먹이며 쉬려고 하겐다스를 찾아 들어갔다. 아직 아이스크림을 몇번 먹어보지 못한 아이는 되도록 아껴 먹으려 하고 있었다. 마치 내 어릴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아껴 먹느라 거진 녹은 다음에야 먹었으니까.. 추적추적 비는 처량맞게 오고 있었다. 난 타임머신의 존재 가능성이 믿어지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비가 오는 것을 보고 있자면 과거로 훌쩍 시간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첫사랑과 엮인 곳이 대학로였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낙산가든. 혼자 끙끙 앓다가 될대로 되란 식으로 이름을 숨기고 편지를 보냈는데, 그게 일요일 오후에 대학로 낙산가든 앞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던 거다. 그날도 마침 비가 왔었고, 나는 바람맞는 줄 알고 한참을 기다리다 그녀를 보고 기뻐했던 생각이 났다. 그로부터 7년쯤 뒤인가 만났던 여인은 대학로에 있던 사택에 살았는데, 공주병만 빼면 어느모로 보나 훌륭한 사람이었다. 특히 요새라면 인터넷 인기인이 되었을 외모와 몸매가 말이다. 사택에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거의 남친 집에서 기거를 했던 덕분에 모텔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더랬다. ^_^ 그로부터 몇년 뒤에 지금의 와이프를 두번째로 만난 곳이 대학로였다. 첫번째 만남은 우연이었고, 두번째 만남은 의도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와이프는 종로의 영어학원을 다녔고, 그래서 대학로에서 저녁을 먹고 학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만났던 거였다. 아직도 생각난다. 낙산가든에서 저녁을 먹는데, 괜히 새침을 떠는 것인지 밥을 남기는 여자와 뜬금없이 그걸 먹겠다고 달라는 남자와 아무렇지도 않게 주는 여자. 맥주 한잔에 얼굴이 벌개서는 고기 냄새가 밴 옷을 탁탁 털면서 강의실로 들어가는 여자와 그걸 웃으며 보고 있는 남자. 어느덧 2시 45분이 되었다. 차를 극장 앞에 대야 비를 맞지 않고 차에 태울 수 있다. 다시 골목 골목을 돌아서 극장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린다. 그 공연을 보고 나오는 듯한 사람들이 꽤 있는데 아직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좀 전까지의 분위기를 즐겨볼까 하고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무는데.. "아빠다" 하며 다다다다 달려오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혹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들켰을까 싶어 슬그머니 버리고는 안아 올렸다. "아빠. 담배 길에다 버리지 마요. 경찰 아저씨가 잡으러 와요." 흑. 들켜 버렸다. 실수로 떨어뜨린 거라고 극구 부인을 하고는 둘이서 차를 몰고 집으로 가라고 내준다. 집에까지 갔다가 본가에 가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아예 나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이별을 했다. "오늘은 선데인데 왜 같이 안 놀아요?" 아이가 세상을 많이 알아갈수록 설명하고 변명해야 하는 것들도 함께 늘어간다. 슬픈 표정을 짓는 아이에게 깜깜해지기 전에 들어가기로 약속하고 빠이빠이를 한다. 차가 멀어질 때까지 지켜보는 나를 아이는 뒷창문으로 손을 흔들며 보고 있다. 그렇게 타임머신은 다시 나를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