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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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gureumi (▷◁구름)
날 짜 (Date): 2003년 4월 13일 일요일 오후 06시 33분 38초
제 목(Title): Re: '촌지'에 대한 단상



나도 이제 서른이 훌쩍 넘었으니 구세대가 되었겠지만 여기 촌지 애기 보니까
생각이 난다. 우리집은 애들은 많고 가난해서 근근히 먹고 살기에도 바빠
촌지란 촌지는 그 누구에게도 줘 본적은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섬과 시골 산간에서 평생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신 분이라
촌지라는 봉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 후 아버지가 평소 사시는 소흑산도의 작은 학교 관사에
갔을 때 난 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5-6시간 걸려 도착한 작은 섬, 전기는 섬 자체에서
돌려지고 있었고 수도물은 정말 없었다.
관사에 가 보니 지붕에서는 비가 샌 흔적이 보이고 방 안 벽에는 군데 군데
곰팡이가 끼여 있었다.
라면과 김치, 밥은 직접 아버지가 해서 드시고 계셨다.
교육때문에 엄마은 우리랑 광주에서 사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2주에 한 번 정도
집에 오셔서 밑반찬등을 가시고 가셨다.
국민학교(이건 내 시대의 언어니까..),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식, 졸업식때
부모님 한 번도 오신 적이 없다. 누가 담임선생님인지 우리 부모님은 한 번도
모른다. 글쎄 모르겠다. 내가 어쩌면 그런 문제로 담임선생님께 차별을
당했는지도..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는 그런 문제로 치명적인 차별을 받은
경험은 없다. 나는 선생님들도 그냥 똑 같은 직업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직업인처럼 소명을 다해 대부분 아이들을 지도하신다고 생각한다.
수고하시는 선생님들께 나는 나중에 내 아이가 크면 감사하다는 표시는 하고
싶다. 특별히 잘 봐달라는게 아니라 자기 자식을 가르쳐주고 보살펴주는 분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자식이 촌지 아니면 인정 못 받을 애라면 차라리 인정 못받으며 크는게
낫다는 생각이다.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성공할 수도 모두 다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살 수는 없다.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능력이며 선생님께 귀여움을
받는 아이또한 자신의 노력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 중에서 촌지로 아이를 대하고 평가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다수의 선생님들은 자신의 소신껏 교육에 전념하시고 계시다는 믿음이다.
내 친구도 그렇고 우리 조카 담임선생님도 그렇고.....
한 부분에 대한 것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일은 항상 위험한 편견과 잘못된
판단에 이르게 한다. 비판은 항상 신중하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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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옛 생각이 불현듯 흑백 활동사진을 보는 듯 ..

앗 제 선친께서도 교대를 졸업하신 직후부터 작고하실때까지 28년동안 평생
섬을 포함한 시골 초등학교에서 평교사생활을 하셨습니다. 평생 태어나서 자란 곳은
광주시였는데 광역시로 행정구역이 전라도와 분리되면서 시골로만 전전하시게 되었죠.
저희 가족도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광주로 옮겼고 아버님은 주말에
집에 오시곤 했죠. 광주에 전학온 학교는 치마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었죠.
바로 그 "촌지"문제때문에 없어졌던 가정방문도 다시 시작하게 되던 게 그 즈음이
었던 듯..

선친께선 시골 학급도서관을 만든다거나,청소도구를 마련하기위해 사비를 사용하서야
했던 적도 있고, 한때 완도군 생일도(금일읍)에 계실때는 학부모들한테서 김이나 미역을
사오시기도 하셨죠.. 어머님이 한때 가셔서는 하룻내내 바닷가에서 돌김을 캐고 나서 
일당 천오백원짜리 전표를 받아오신적도..

결국 제가 대학을 들어간후 경기도로 전근을 신청하셨죠. 전라도와는 달리 경기도에선
도시와 시골을 번갈아 발령을 내더군요. 김포,가평,동두천 에서 교직생활을 하셨죠.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에는 학교 옆 사택에 살았었는데
초가집에 보일러같은 게 없어서 어머님이 나뭇짐을 해오시곤 했죠.
초가집 앞뒤로 감나무가 세그루, 조그만 앞 마당에는 오이,가지,토마토,생강,파,배추,
토란,무우 등을 키우셨고 집 뒷켠에는 고구마,감자,고추,깨,호박 같은 거를 심었던 듯.

아직도 어머님은 앞뒤에 약간의 마당과 밭을 일굴 공간이 있는 시골 집에서 살고
싶어하십니다.

엄마나 누나야 강변살자.. 흑흑..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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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雲心如水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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