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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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 <211.58.144.211> 
날 짜 (Date): 2000년 9월 19일 화요일 오전 01시 32분 17초
제 목(Title): [퍼옴] 나는 제사가 ...


중앙일보 기사에서 발췌했습니다.

▶ 게 재 일 : 2000년 09월 08일 06面(10版)
▶ 글 쓴 이 : 정운영

[정운영 칼럼] 나는 제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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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족의 침공에 쫓긴 게르만의 '민족대이동' 은 476년 서로마제국 정복으로
2세기에 걸친 도도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특히 반달족의 로마 점령에 절치부심의 수모를 느낀 당시의 지배층이 이교도
야만인에게 무릎 꿇은 패배의 분풀이로 반달리즘(vandalism)이란 말을 지어냈다면
나의 괜한 억측일까? 그만 하자. 어쭙잖게 서양의 고대사를 들추려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우리의 민족대이동을 이야기하고 싶다.

*** 귀향, 세계화 시대의 역설

당국의 추산으로는 이번 추석에 2천6백만명이 움직일 것이라고 한다. 나라를
빼앗겨 국경을 넘는 변방 유민의 대열도 아니고, 일과 밥을 찾아 애니깽 농장으로
떠나는 식민지 노예선도 아니다.

누가 꾀지 않는 데도,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이렇듯 스스럼없이 이뤄지는 민족
이동의 굉장한 행렬을 나는 무연히 바라볼 수가 없다.

행여 어느 독재자가 시켰다면 아마도 폭동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엑소더스' 의 핍박도 없고, 반달리즘 따위의 약탈도 없다.

세계가 고향이라는 세계화 외침이 거셀수록 귀향의 대열이 점점 더 길어지는
현실은 정녕 세계화 시대의 역설이다.

하이마트로제(Heimatlose), 고향 잃은 떠돌이를 그렇게 부르던가□ 추석을
빌려서나마 그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원망을 되살리려는 몸짓을 나는 여간 반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1960년대 우리가 모신 국시의 하나가 '근대화' 였고, 그 깃발의 호소력은 오늘의
세계화 합창 못지 않았다.

농업 노동력을 대거 도시로 유인하는 공업화 과정에서 농촌 탈출(rural exodus)은
실로 거역하기 힘든 시대의 명령이었으며, 그 아프고 쓰린 상처의 흔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달동네' 를 기억한다.

세계 최장의 노동과 세계 수위의 산업 재해를 밑천으로 그 혹독한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나면서 우리는 이 메마른 도시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육중한 철근 콘크리트 문명의 속박과 그 황폐한 '인심' 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도시
탈출(urban exodus)의 꿈은 저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꾸겠지만, 그 해방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중당(中唐)의 시인 장적(張籍)은 1천2백년 전에 벌써 이렇게 읊었다.

낙양성에 가을 바람 부는 것을 보고
집에 편지를 쓰려니 마음이 무겁네
급한 마음에 할말을 잊었을까 두려워
나그네 떠나기 전에 겉봉을 열어보네
(洛陽城裏見秋風 欲作家書意萬重
復恐忽忽設不盡 行人臨發又開封).

서둘러 자동차 연료통을 채우고 고속도로 체증을 걱정하는 현대의 도회인에게
'임발우개봉' 따위의 애잔한 소회는 그야말로 계수나무 금도끼만큼이나 하품나는
'시절 첨지' 얘기로 들릴 터이다.

그러나 어쩌랴. 고향을 찾는 우리 마음에 그런 겸손과 정성이 깃들이지 않는다면,
귀향은 도시에서의 출세를 뽐내려는 또하나의 허영인 것을.

추석의 계절적 의미는 단연 결실이고 그에 대한 감사다.

그러나 거기 사람의 도리를 보태야만 이 축제의 내용이 한결 충실하게 되리라.
나를 낳고 길러준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국 어미의 넉넉한 품에 안기는 것이다.

추석 대이동은 이런 귀거래(歸去來) 본심에 대한 내밀한 사죄이고 그 보상의
표현일지 모른다. 그게 비록 선조에 대한 성묘와 제사를 앞세워 후손들이 먹고
떠들며 즐기는 잔치판일지라도, 그 의뭉스런 계책이 밉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꿈에서조차 만난 적이 없는 몇대조 할머니.할아버지께 드리는 제사에 솔직히 무슨
효심이 그리 우러나랴□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조상이 소집한 자손들의 주주 총회, 죽은 이를 빙자한 산 사람들의 '그룹 미팅' 이
바로 제사이기에 우리는 그런 계기와 절차를 마련해준 선인들의 지혜에 감사해야
한다.

*** 산 사람들의 '그룹 미팅'

꽃 한 다발, 찬송가 한 번으로 끝내는 서양식 제사를 나는 굳이 탓할 생각이 없다.
단지 처삼촌 뫼의 벌초 같은 무늬만 성묘를 앞당겨 끝내고 추석 연휴에 질탕한
여행을 계획하는 약삭빠른 세태나, 제사 대행 회사에 '통과급' 메뉴로 - 효성보다
경제가 먼저다 - 2인분 부모 제사를 부탁하는 코미디 프로의 익살에는 더없이
씁쓸한 기분이 스친다.

제상 차리는 집의 부담과 차리는 사람의 수고를 난들 모르지 않으나, 그
야단법석의 소란이야말로 우리네 사람 사는 정리 아닌가.

받을 날이 멀지 않은(?) 녀석의 노망으로 여기겠지만, 글쎄 그래도 나는 제사가
좋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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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 재 일 : 2000년 09월 18일 06面(10版)
▶ 글 쓴 이 : 공지영

[옴부즈맨 칼럼] 나도 제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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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태어난 남편을 둔 덕택으로 명절 때마다 나는 이 땅의 민중과 길거리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하지만 이번 추석, 돌 반이 된 젖먹이까지 세 아이를 동반하는 귀향은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지난해 추석에 9개월 된 아기를 안고 1박2일 만에 부산에 도착한 경험도
끔찍했다.

그런 참에 정운영 논설위원의 칼럼 '나는 제사가 좋다' (9월 8일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눈에 띄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도 제사가 좋다. 우선 나는 제사 음식을 좋아하고
형제들과 부모들이 모여 먹고 이야기하는 문화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제사는 얼마나 큰 축제였던가. 그러나 처음 결혼을 했던 15년 전 나는
시댁 부엌에 서서 망연해 있었다.

누구네 시댁처럼 여자들은 부엌 바닥에 앉아 숟가락만 들고 밥을 먹게 해서도
아니고 누구네 시댁처럼 여자는 제삿상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서가 아니었다.

제삿상이 문제가 아니라 제사 후와 전, 그 며칠 동안 남자와 여자의 성이 이토록
명확하게 휴식과 노동으로 갈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라웠고, 여자라는
이유로 낯선 고장, 낯선 집에 와서 3박4일 동안 다른 사람들의 놀이와 휴식의
시중만 들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남자형제들과 똑같이 집안 일에서 면제돼 자라난 내 눈에 시어머니와 동서들의
말없는 순종과 숨죽인 한숨소리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 낯선 부엌서 징한 3박4일

명절을 앞두고 있는 내 또래의 친구들도 모두 그 칼럼을 흥미 있게 읽은
모양이었다. 그들의 말은 한결 같았다.

더도 아니고 딱 두 번만 3박4일을 부엌에서 보낸다면 그런 글은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왜 두 번인지에 대한 한 친구의 설명은 재미있었는데, 처음에는
이럴 수가 있구나 하는 심정으로, 두번째는 처음에 겪은 일을 또 되풀이해야
한다는 공포를 맛보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시집와서 45년 동안 정성스레 집안의 제사를 도맡았던 나의 시어머니는 당신이
죽거들랑 '이놈의' 음식 많이 차리지 말고 장미꽃 한 다발과 초 두 대, 그리고
향기로운 커피 한잔을 끓여 당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해졌다. 나 역시 내 며느리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잿밥이 아니라 염불이 문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 먹고 즐기는 쪽 입장만 부각

명절이면 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제사를 지내자는 캠페인이 여성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며느리들에게 물어 보라. 며느리가 설사 여성 단체의 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어림없는 일인가를.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는 것이 너무도 어색한 시댁에서 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불러
음식거리를 다듬게 했다.

고향에 내려가 사실 별로 할 일도 없던 그들은 흔쾌히 그 일에 동의했고, 순간
아연해하던 시어머니도 아들 손주들과 음식을 만들며 대화하는 것이 싫지 않으신
듯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부엌에서 진정 함께 하는 가족의 만남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제사가 좋다. 분명 우리 민족이 가지는 아름다운 전통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제사 음식 만드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여자만
일을 하는 그런 제사는 싫다.

더구나 아들쪽의 조상에게만 감사를 드리는 그런 제사도 싫다. 여자인 내가 내
조상에게 음식 한가지쯤 장만해 드려 나쁠 것이 무엇이겠는가.

내가 죽은 후 며느리가 억지로 와서 제삿상을 차리는 것도 싫다.

추석에는 처가에서, 설에는 시댁에서 제사를 지내는 그런 풍습을 만들어 갈 수는
없을까. 아들 딸 가리지 말고 낳자는 구호가 명절이면 얼마나 무색해지는가.
중앙일보에 여성 논설위원이 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어둡게 한다.

한 사단의 사정은 이등병에게 물어야 하고 명절의 사정은 며느리들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여성의 입장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 분명히 있고, 구독자의 절반,
이 땅의 절반인 여성들의 입장은 중앙 정론지에 분명 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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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대표적관점의 차인 것 같군요.

전 개인적으로

공지영님의

"시집와서 45년 동안 정성스레 집안의 제사를 도맡았던 나의 시어머니는 당신이
죽거들랑 '이놈의' 음식 많이 차리지 말고 장미꽃 한 다발과 초 두 대, 그리고
향기로운 커피 한잔을 끓여 당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글에 정말 정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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