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Old0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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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2002년 8월 18일 일요일 오후 04시 05분 49초
제 목(Title): Re: 독일의 학위과정



음... 독일의 학위과정이란 것이 박사가 3년정도만 걸린다 소릴 듣고

한국보다 효율적이라고 단정하기엔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그려. 

전공분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독일에서 박사 혹은 교수가 되기위해서는

어떤 코스를 밟아야 하는지 한번 이야기해 보죠. 

독일은 우리와 같은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러고 나면 

초등학교 4년 -> 김나지움 9년의 교육과정을 거칩니다.

(김나지움은 사실 대학정도 공부할 사람이 가는 곳이고 초등 4년을 마친후 

실업고등학교-기술학교로 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음)

여기서 벌써 한국보다 초-중등 교육과정이 1년더 길어지기 때문에 

(한국: 초등 6년 + 중고교 6년 = 12년, 독일: 초등 4년 + 김나지움 9년 = 13년)

독일 대학의 신입생들은 대부분 한국보다 1살이 더 많습니다. 

대신에 독일대학은 한국과 달리 교양교육이 없고 입학하자마자 바로 전공을

시작하긴 합니다. 하여간 한국보다 1살 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한 독일대학생

들에게 주어진 대학교육기간의 `원칙'은 한국과 똑같이 4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공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만 학부에서 시키고 심화과정은 대학원에서

공부시키는 한국-미국-일본 대학원과는 달리, 독일대학은 학부졸업생들에게 

이미 전공에 대해서 expert가 되기를 요구하는 이상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업으로 가르쳐야 하는 과목은 아무리 수준이 높아도 모두 학부에서 

가르치고, 졸업논문도 한국대학처럼 간단한 프로젝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도교수 랩에서 1년 내지 1년반동안 상주하면서 저널에도 한두편 퍼블리쉬하고 

논문 심사도 빡세게 받아야 통과되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이렇게 대학졸업생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너무 높다보니 학생들이 대학을 

4년만에 졸업하지 못합니다. 짧아야 6년이고 보통 7년 길면 8년이상까지도

대학 학부생으로 남아있습니다. 학위종류에 따라 조금 다릅니다만, 독일대학

에서 이공계를 전공했을때 주는 학위인 디플롬(Diplom)의 경우에 6.5-7년 

정도가 보통입니다. 따라서 독일대학의 디플롬 학위자들은 그 공부한 기간이나

졸업을 위해서 해놓은 일들 - 수업으로 배울 것은 모두 배웠고, 저널에 논문도

한두편 발표했고, 학사논문도 1-2년간 실험해서 준비 - 을 생각해보면 

한국-미국 대학과 비교해 봤을때 최소한 석사졸업자 이상이고 박사수료자 

정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합니다. 졸업생의 나이도 이미 대부분 27세전후의

늙수그레한 나이들이 됩니다. 

이렇게 디플롬 학위자체에 워낙 시키는 것이 많다보니, 정작 박사과정은 

한국이나 미국 대학원생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듯이 보입니다. 

수업도 거의 없고 (디플롬때 다 했으니까) 실험이나 논문연구만 3년정도

하고 저널에 두세편 논문 발표한다음에 박사논문 제출하면 끝입니다. 

그러니까 독일의 학부는 한국의 대학 2학년부터 박사수료전까지를 모두 

뭉뚱그려 놓았고, 박사과정은 한국대학원으로 치면 박사수료후 3년정도 

논문준비하는 기간에 해당될 뿐입니다. 

이런과정을 거쳐서 배출되는 독일인 박사들은 대개 나이가 30이 넘습니다. 

대학입학후 박사학위까지 걸리는 시간도 평균 10년이고 (한국보다 1년 늦게

입학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짧기는 하지만 독일은 징집제라서 군대도 

갔다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표준적인 남자독일박사는 나이가 30대초반이고

대학에 몸담은지 10년이 넘은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이랑 대충 비슷하죠?

따라서 독일대학의 박사과정이 수업도 없이 3년이라고 해서 독일대학박사가

빨리 졸업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교육에 들어가는 기간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비슷합니다. 

그리고 독일대학에는 박사위에 학위가 또하나 있습니다. -_-;;;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알기쉽게 번역한다면 

`교수자격'입니다.  운좋으면 박사받고 1-2-년 포닥하다가 바로 조교수되는

한국이나 미국과 달리, 독일대학에서는 박사를 받고 몇년간에 걸쳐서 

한분야에 대해서 일가를 이루어서 하빌리타치온 학위를 받아야만 교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빌리타치온은 박사학위처럼 어느 랩에서 일해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학교에 등록하거나 학생일 필요도 없고, 그냥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 싶을때 자기가 그동안 일관성 있게 연구해온 업적들을

모아서 하빌리타치온 논문을 독일대학 한곳에 제출하고 (자기가 학위받은

대학이 아니어도 됩니다) 심사를 받으면 됩니다. 다시말해서 박사학위후에

딴짓하지 않고 꾸준히 학계에 남아서 연구를 계속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빌리타치온 심사란 것이 또 거창해서, 논문제출 시작부터

최종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가까이 걸린다더군요. 물론 시원찮으면 떨어지기도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박사(Doktor)보다는 하빌리타치온이 훨씬 더

권위있습니다. 독일 교수들의 프로필을 잘 보세요. 박사학위와 더불어

하빌리타치온을 어느 대학에서 인정받았는지가 나와있습니다.

물론 하빌리타치온은 자격증일뿐 교수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교수가 될려면 많은 하빌리타치온 학위자들끼리 또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같이 일했던 독일인 포닥이 마침 하빌리타치온 과정 중이라서 

독일의 학제에 대해서 자세히 들을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의 경력을 보시면 

독일인 박사들이나 교수들이 얼마나 지겹게 오래 공부해야 하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독일인은 그래도 꽤 우수한 학생이었고 미국서 포닥을 

마친 후에 미국서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주립대학에서 교수자리를 

얻었습니다. 


20세에 김나지움 졸업, 뮌헨대학 입학 

대학재학 도중에 1년반동안 군복무 (의무)

28세에 뮌헨대학 졸업 - 디플롬 학위 (재학기간 6.5년. 빠른편임)

31세에 뮌헨대학 박사과정 졸업 - Ph. D.

이후 프랑크푸르트 대학, 쾰른 대학에서 Mitarbeiter (우리식으로는 

연구조교 = research associate)로 5년간 근무. 

36세에 미국 모 주립대학에 포닥 겸 시간강사로 임용.

38세에 쾰른대학에 하빌리타치온 신청제출 

39세에 하빌리타치온 학위 획득 (이제서야 교수자격을 취득)

       독일로 돌아가지는 않고 미국 주립대학에서 테뉴어트랙 시작. 


미국인 지도교수는 이렇게 시간 많이 걸리는 독일의 학제를 낭비라고 

그러더군요. 흐흐흐. 실제로 이렇게 지루한 과정을 밟을 자신이 없는

독일학생들이 상당수 미국으로 진출하기도 한답니다. 

하여간 각설하고, 독일대학의 디플롬, 톡토어, 하빌리타치온 학위는 

시간 엄청 잡아먹습니다. 박사과정때 수업없고 논문만 쓴다고 널럴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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