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2002년 8월 18일 일요일 오전 06시 23분 04초 제 목(Title): 히딩크 냄비들은 이제 조용하군. 한 때, 정몽준이 히딩크를 국대 감독이 끝나면 보내려 한다는 둥, 히딩크를 귀화시켜야 한다는 둥, 히딩크는 남고 싶은 데, 조중연이니 정몽준이니가 보내려 한다는 둥, 떠들던 인간들... 이젠 조용하군. http://www.hani.co.kr/section-021017000/2002/08/021017000200208130422010.html [ 스포츠 ] 2002년08월13일 제422호 히팅크 그늘에서 ‘원격축구’? 대한축구협회의 총감독 영입설 뒷말 무성… 인기영합 행정에 ‘축구대계’는 요원 사진/ 축구협회가 히딩크에 집착하는 데는 대선출마를 저울질하는 정몽준 회장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지적된다. 월드컵 4강신화를 축하하는 퍼레이드 모습. (한겨레 김봉규 기자) ‘국민영웅’에서 ‘뜨거운 감자’로. 한국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거취문제가 한국 축구계 전체를 한바탕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최근 대한축구협회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히딩크 감독을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재영입하겠다는 뜻을 대놓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발단은 대한축구협회의 살림을 책임지는 남광우 사무총장의 발언이다. 남 사무총장은 지난 8월5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사무실에서 기자들에게 ‘히딩크 감독 재영입’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전에도 히딩크 감독을 차기 월드컵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할 것이라는 보도는 있었지만, 축구협회의 책임 있는 관계자가 공식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술위원회 무시한 발상이라는 비난 남 사무총장은 그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한테 해마다 계획된 7∼8차례의 A매치(대표팀 간 경기) 가운데 3∼4차례를 벤치에 앉도록 하고, 다음 월드컵 때도 한국 대표팀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또 차기 대표팀 감독과 계약할 때는 ‘히딩크 감독이 올 경우 기존 감독은 수석 코치로 내려앉는다’라는 조항을 넣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사람이 대표팀 감독이 되든 ‘총감독 히딩크’라는 자리는 만들어놓겠다는 뜻이다. 축구협회의 이런 발상은 축구인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체계도 없고 명쾌하지도 못한 축구협회의 행정 스타일이 비난 대상이 됐다. 신문선 SBS 축구해설위원은 “대표팀 감독 선임문제는 전적으로 기술위원회 일인데, 기술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대표팀 감독 운운하는 것은 축구협회 행정이 매우 후진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진국 기술위원회 위원장도 “대표팀 감독과 관련한 말은 기술위원회나 기술위원이 하는 게 원칙”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공식적 브리핑도 아니고 우연한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 재영입설’ 같은 중대한 문제를 가볍게 흘리는 것도 고약한 일처리다. 남광우 사무총장은 히딩크 재영입설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다음날 “히딩크와 감독을 연결짓는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다. 언론이 쓴 내용은 오보다”라며 하루 만에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말을 바꿔버렸다. 여기에는 아무 말이나 쉽게 내뱉은 뒤 그대로 거둬들여도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축구협회 특유의 오만한 언론관이 깔려 있다. 그러나 개인의 부도덕성이나 조직의 아마추어적인 일처리 문화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축구협회가 과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책임 있는 기구인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히딩크 감독을 2년 뒤 감독으로 앉히거나 중간에 대표팀 경기에 불러들이겠다는 발상은 한국 축구의 백년대계를 기획해야 하는 축구협회가 인기에 영합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실 히딩크 감독은 지도자로서 성공했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허름한 국숫집이나 빵가게에서부터 거창한 레스토랑에까지 근엄한 표정의 히딩크 포스터가 걸려 있는 게 요즘의 풍경이다. 월드컵이 끝난 지 한달이 넘었지만 히딩크 열기는 여전하다. 혹자는 5천년 역사상 이렇게 국민에게 기쁨을 준 인물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히딩크의 상품성과 한국 축구는 별개다. 김호곤 부산 아이콘스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역량은 이미 검증된 바 있지만 2년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히딩크 감독의 재영입을 벌써부터 얘기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2002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대표팀과 2004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박항서씨나 앞으로 성인 대표팀 감독으로 뽑힐 지도자는 히딩크라는 그늘을 의식해야 한다. 이들이 팀을 장악하고 자기 식대로 선수들을 조련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 대표 감독인 허정무 감독이나 차범근 감독한테도 히딩크 감독에게 보여준 전폭적 지지가 있었다면 한국 축구가 달라졌을 거라는 얘기가 나온 것이 엊그제 일이다. 그런데도 축구협회가 ‘감독 따로 총감독 따로’라는 식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히딩크 감독의 성공 교훈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일본이 청소년·올림픽·월드컵 감독을 트루시에 감독으로 단일화해 맡기고, 이번 월드컵 뒤에는 재빠르게 브라질의 지코를 영입해 차기 월드컵에 대비한 일관된 전력향상을 꾀하는 모습과도 대조적이다. 이젠 체력 축구에서 기술 축구로 가야 사진/ 감독 따로 총감독 따로? 히딩크 사단에서 코치로 활동한 박항서(오른쪽에서 두번째)씨가 아시안게임 대표감독팀을 맡았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히딩크 감독이 ‘체력 축구’로 한국 축구를 끌어올린 만큼 이제는 ‘기술 축구’로 한국 축구를 더욱 완성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인 주장도 묻혀버렸다. 조광래 안양 LG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기술적으로 부족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체력 축구를 넘어 기술 축구를 하는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을 비쳤다. 히딩크에 대한 축구협회의 ‘짝사랑’을 두고 월드컵 성공의 밑거름이 됐던 프로축구 감독들이 느끼는 소외감도 눈에 띈다. 국내 한 명문 프로팀 감독은 “(히딩크의 축구와 비교할 때) 우리는 ‘촌놈 축구’를 하는 게 아니냐”며 비아냥댔다. 외국 감독이 좋은 팀을 만들 수도 있지만, 자꾸만 외국 감독한테 의지하면 국내 지도자들의 입지가 위축된다는 점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는 얘기다. 히딩크 감독이 2006년 월드컵을 다시 맡으면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있을지도 매우 불투명하다. 실업팀의 한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장점은 선수들을 하나로 뭉쳐서 뛰게 한 데 있고, 이번 월드컵에서는 상대가 우리를 분석하지 않고 덤비는 등 운도 따랐다. 이번 월드컵과 달리 4년 뒤에는 모든 나라가 한국팀의 전력을 분석해 덤벼들 텐데 히딩크 감독을 부르면 좋은 성적이 나온다고 믿는 것은 한가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축구협회가 국제국장을 직접 네덜란드로 보내 히딩크 감독의 기술자문 구실뿐 아니라 대표팀에 관한 민감한 부분에서도 합의를 얻어내려고 애쓰는 상황도 안타깝다. <스포츠조선>은 네덜란드 현지발로 히딩크 감독이 “대한축구협회 기술자문 몫에만 충실하고 싶다. 더 이상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는 한국 축구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싶고 대표팀 감독도 싫지는 않지만, 당장 중요한 일은 새로 맡은 PSV 에인트호벤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라는 히딩크 감독의 우회적 의사표시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축구협회가 히딩크에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축구계 관계자들은 정몽준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실제 정 회장은 여러 차례 “히딩크 감독을 부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정 회장의 이런 의중은 히딩크 감독의 지도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이들의 추측이다. 대선 출마 여부를 재는 정 회장으로서는 히딩크 감독의 재영입을 여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재료로 평가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축구는 축구고 정치는 정치다. 따라서 축구협회는 축구 이외의 것이 아니라 축구 자체만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축구협회가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축구 권력’은 축구협회가 만든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뛰는 선수와 지도자,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들의 소중한 땀방울로 거둔 성과를 축구협회나 특정인이 독점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전용’하려고 한다면, 단언컨대 한국 축구의 미래는 없다. 축구 내세워 잿밥만 챙기려나 축구협회의 비밀스런 일처리 문화로 다시 눈을 돌려보자. 오는 9월8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축구경기는 스포츠 외적인 측면에서도 큰 사건이지만, 이 경기와 관련해 축구협회는 지금까지 “대회가 어떻게 준비되어가는지 잘 모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축구협회 관계자 누구한테 물어봐도 비슷한 답이 나온다. 이 때문에 축구 기자들마저 남북축구경기가 정말 열리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남북축구경기를 제안했고 실무작업도 추진하는 유로코리아 재단의 관계자는 “지난 5월에 북한과 합의한 뒤 그동안 수시로 축구협회 관계자와 만나 치밀한 준비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축구협회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축구협회는 왜 이것을 공개하지 않을까? 혹시 축구 이외의 다른 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아닐가? 히딩크 감독 재영입설을 흘려 여론을 떠보는 수법도 바로 축구협회의 이런 비축구적인 행태에서 비롯한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김창금 기자/ 한겨레 스포츠레저부 kimc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