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2007년 9월 22일 토요일 오후 11시 47분 10초 제 목(Title): 영화 1408 감상 후기 1408호라는 방을 배경으로, 좁고 닫혀진 공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을 극대화 한 스릴러 영화 1408.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공포에 떨기는 커녕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1. 호텔 지배인이 그렇게 들어가지 말라고, 가면 무조건 죽는다고, 시체 치우기 싫다고.. 윽박도 질러보고 달래도 보고 심지어 뇌물로 양주까지 안겨주면서 그렇게도 들어가길 말리는 1408호에 끝끝내 들어가고야 마는 주인공을 보며, 가족들과 선생님들 친지들 인터넷 상의 수많은 이공계인들의 만류도 모른척 하고, 심지어 부모님이 몰래 써 놓은 의대 원서까지 찾아내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공대로 가는 의지굳건한 꼬꼬마들이 떠올랐다. 아...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2. 들어가기 전에 주던 공포분위기와는 달리, 아무 특이한 점이 없는 방 안을 보며 "하! 역시 별 거 아니었군!" 하며 득의양양해 하는 주인공을 보며, 입학하자마자 각종 퀴즈들의 만점 행진을 잇고,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을 받고, 동기들 심지어 선배들의 질문 러쉬를 받으며 장난끼 반 짜증 반의 말투로 "아이참~ 벌써부터 이러다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노벨상 받는 거 아니야~?" 하고 꿈에 부풀어오르는 공대 상위권 꼬꼬마들이 떠올랐다. 아...하지만 나에게 그런 시절은 없었지 하며 눈물 한 방울 흘렸다. 3. 갑자기 오동작하는 시계, 열었다 하면 닫히는 창문, 고장난 온도계 등, 방 안에서 슬슬 이상 징후가 발생하자, 슬슬 제대로 겁을 먹은 주인공은 방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문도 고장이 나 열리질 않는다. "제발 날 내보내줘~~" 하며 미친듯이 문을 두들기는 주인공을 보며, 뭐.. 무슨 생각했는지 알겠지? 하지만 공대 (특히 P) 꼬꼬마들의 위기의식은 보통 저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위기 징후를 감지하면서도 "아 뭐 설마 모두가 다 좆되겠어? 교수님이 그랬잖아 상위권은 잘 먹고 잘 산다고~ 나만 잘하면 돼~"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불안감을 묻어버리는 편이다. 뒤늦게 정신차리고 취업을 생각해 보지만 아직 군 문제도 해결 못했다. 지금은 못빠져 나간다...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원으로 고고싱하는 꼬마들. 여기서 눈물 좀 닦고... 4. 온갖 공포스런 환상이 보이고, 넘어지고 깨지고 다치고 난리가 난다. 창문으로, 환기구로 탈출을 시도해 보지만 어떻게 해도 결국 다시 1408호 안으로 돌아오게 된다. 돌아오고 나면 전보다 더 극심한 고문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보며... 대학원에서 교수에게 깨지고, 간신히 졸업해서 내 이공계 때려치고 만다 하고 공기업이다 SK다 금융권이다 DEET다 하며 이 길 저 길 알아보지만 결국 아무 것도 성공하지 못하고 삼전에 입사한다. 입사하고 나면 월화수목금금금 세븐일레븐 식스시그마 등등 전보다 더 극심한 고문에 시달리는... 이제 더 이상 꼬꼬마라 불릴 수 없는, 키뚱대에 씹창난 피부만 남은 공돌이 아자씨들이 다이렉트로 떠오른다. 그나마 영화 주인공이 겪는 건 환상이지, 씨발 우리들은... 하고 생각하니 여기서 슬픔의 눈물 대신 분노의 피눈물이 샘솟는다. 5. 결국 지옥같은 한 시간이 지나고... 이대로 죽는가 했더니 방이 다시 멀쩡해져 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받으니 안내양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만 체크아웃 하시겠습니까(= 자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한 시간 더 묵으시겠습니까?" ..."이대로 갈 수야 없지. 한 시간 더 묵겠소" 라고 말하는 주인공을 보며... 지옥같은 프로젝트 일정이 끝났다. 거지같은 아웃풋이지만 이제 비로소 휴식인가 했더니 갑자기 부장이 찾는다. 가보니 새 프로젝트가 나왔다면서 "이거 할래 아니면 나갈래?" (나 홀몸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때려치겠다만 재민이 유치원비도 내야 하고 융자도 갚아야 하고 하다못해 치킨집 차릴 돈이라도 벌어야지 않겠는가?) ..."하하하 부장님 농담이 과하십니다 맡겨만 주십쇼!!" 6. 한 시간 더 묵기로 한 주인공은 결국 일을 저질러 버린다. 방에 불을 질러서 다시는 자기같은 피해자(근데 ㅅㅂ 얘가 피해자냐?)가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방과 같이 최후를 맞이하겠다는 행위였는데, 결국 방은 불타 망가지고 주인공은 무사히 구조되어 병원에서 깨어난다. 이제야 비로소 현실이다.... 억지로 떠맡은 프로젝트.. 결국 일을 저질러 버린다. 아웃풋이 안 나온 것이다. 워낙 큰 프로젝트여서 삼전 주가도 폭삭 주저앉고 건사마께서도 사업부를 다 물갈이하겠네 어쩌네 노발대발 하신다. 나름대로 다시는 나같은 노예가 재창출되지 않도록 나도 짤리고 삼전도 무너뜨리겠다는 행위였다며 자기 합리화를 해보지만, 결국 피해액은 세금으로 막고 나와 부장은 뒤지게 욕처먹고 짤렸다. 짤리고 나오면서 부장에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이제 백수다. 7. 이 사건을 겪으며 주인공은 죽은 딸과 이혼했던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고, 아내 또한 주인공의 진심을 받아들여 다시 같이 살기로 한다. 주인공의 집으로 아내가 짐을 가져오는데, 짐 중에 소방서에서 남편이 방에 떨어뜨린 물건인 것 같다고 하며 건네준 녹음기가 있다. 녹음기를 틀어보니 그때 방에서 겪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재생된다. 1408호에서의 경험은 환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현실세계에 온 주인공. "그게 환상이 아니라면 뭐? 지금 그 방에 있는 것도 아닌데 상관없지 ㄲㄲㄲ" 하며 쳐웃는다...<엔딩> 회사에서 짤리니 그간 시간이 없어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지만, 아내는 무능한 남편과 같이 살 수 없다며 갈라서자고 한다. 아내가 이것 저것 짐을 싸는데, 짐 중에 내가 젊은 시절 선물로 준 박사학위 논문이 있다. 논문을 펴보니 그 시절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아 그래 교수 똥 치우느라 피곤했지만 꿈과 열정과 학문의 즐거움이 있었던 것도 같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환상과도 같이 행복한 추억이군" 하지만 이미 백수에 이혼남이라는 현실세계에 있는 나. "할 것도 없는데 다시 환상을 찾아 떠나볼까? 나이 서른 다섯에 초끈 공부하러 유학가면 막장인가효?" 라고 키즈에 글을 쓴다...<네버 엔딩 공돌이 라이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