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Old0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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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onym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2007년 9월 19일 수요일 오후 06시 40분 03초
제 목(Title): 무조건 일까들아 보아라




준만이가 간만에 옳은 소리를 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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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다혈질 비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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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번역·출간된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한국 전문가 앙드레 슈미드의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은 한국의 다혈질적인 비판문화의 일면을 건드리고 
있다.
'일본 식민주의의 궁극적인 힘은 이러한 민족주의자들의 자기비판을 (식민주의 
사관으로) 흡수하여 결국은 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쓸모없는 지식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에 있다.'

위 글의 표현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쉽게 설명하면 이런 이야기다. 일본이 
한국을 골탕먹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국 내에서 나온 모든 자기비판을 부풀려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애국적인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의 주장을 식민주의 사관이라며 강력 
반박한다. 비슷한 주장을 하는 한국인은 식민주의 사관에 찌들은 사람으로 
매도된다. 일본의 입장에선 손도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 남 미우면 식민사관도 합리화

물론 몹쓸 식민주의 사관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또 그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인 속 없는 한국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건 '과잉'이다.

즉, 적대 세력으로부터 나온 비판은 무조건 부정하고 봐야 한다는 강박이 
문제라는 뜻이다. 일본인 다나카 아키라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어떤가? 무조건 
일본인이 한 말이기 때문에 배격해야 하는가?

'1910년의 망국이라는 굴욕적인 사태를 뒤돌아볼 때, 일본의 
악역무도(惡逆無道)한 행위에 대한 비난과 고발의 글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망국을 가져오게 된 내부적인 요인에 대해선 '오적(五賊)'과 같은 소수의 
매국노를 꼽는 정도로 끝났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해 왔던 것은 양반 계층이었으므로 우리 
외국인의 감각으로 볼 때는 양반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올 것으로 생각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패전 후 일본에서는, 군인이 철저히 얻어맞았다. 패전까지 십수 년간 일본을 
지배해 온 것은 군부였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배자란 즉 
책임자이기도 하니까 실패의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조선 망국의 원인에 대해 '양반 책임론'을 들고나온 건 일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건 식민주의 사관이라며 강력 반박한 끝에 결국은 
양반ㆍ엘리트를 면책 시켜주는 데 성공했다. 

오히려 조선이 얼마나 위대한 왕조였던가를 역설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흥미롭게도 이런 일을 하는 데엔 진보ㆍ보수의 구분은 없었다.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엔 모두가 한 몸이었다.

우리는 실패의 원인을 캐는 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능하거나 무관심하다. 
아니 실패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악행과 음모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며 그 악행과 음모의 주체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데에 익숙하다. 

● 반감 때문에 현실 왜곡해서야

그런 강박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왕성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법칙이 생겨나게 되었다. 누군가를 실패하게 만들려면 적대자의 입장에서 
옳은 말만 해주라. 그러면 그 말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하게 돼 있다.

우리의 비판문화를 성찰해보자는 뜻이다. 비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그 누구건 자신에 대한 비판에 흔쾌히 동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딘가 조금은 부당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비판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물론 이 글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비판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기존의 '편 
가르기' 중심의 비판문화를 성찰해보자는 뜻이지만, 오히려 '편 가르기'가 더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상대편 또는 적대자에 대한 
반감 때문에 반사적 행동을 취하는 것의 이해득실을 따져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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